나이를 먹은 지금도 유난히 어려운 자리가 있다.
얼굴도 잘 모르는 수많은 친인척이 모이는 자리다. 결혼식처럼 축하를 나누는 자리는 서로 하하 호호 웃으며 인사를 건네면 되기에 조금 어색해도 견딜 만하다. 하지만 장례식은 경우가 다르다. 고인을 애도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인사를 나누며 웃기도, 그렇다고 마냥 슬픈 얼굴로 서로를 맞이하기에도 어색하고 작위적이다.
일요일 새벽, 암으로 투병 중이시던 큰아주버님의 부고 소식이 전해졌다. 급작스러운 연락에 당황스러웠다. 새벽 모임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빈소는 준비 중이었고 직계가족들 역시 황망한 기색이었다. 아주버님은 3년 동안 암이라는 병과 치열하게 맞서 싸우며 자신의 일상을 끝까지 지키려 하셨다. 평소 성격 그대로 투병기간 동안에도 주변인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시고,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 꼿꼿하게 유지하다 평안히 주무시다 가셨다. 그 모습을 보며 여러 생각이 스쳤다.
‘마지막에는 어린애가 떼 부리듯 아프다고 투정도 좀 부려도 되지 않았을까.’
‘어떤 죽음의 모습이 이상적인 모습일까.’
‘마지막 순간에는 큰 재산을 남기지는 못해도, 사랑했노라는 말 한마디는 남기는 게 좋겠지.’
나이가 들수록 이런 자리가 잦아진다. 작년에는 아이들의 작은 고모부, 올해는 큰 아주버님이다.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는 말이 이럴 때 실감 난다. 집안의 큰일이 있어야만 만나는 친인척들이라, 나에겐 그분들의 첫인상이 유난히 또렷하다. 17년 전 상견례와 결혼식을 통해 처음 뵈었던 친가 쪽 가족 중 두 분은 가장 오래 사실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만큼 건강하고 자기관리에 철저해 보였기에, 작년에 이어 올해의 부고 소식이 황망할 뿐이다.
삼일장을 치르고 고인은 인천가족공원으로 모셨다. 장지까지 함께한 건 처음이라 모든 절차가 생소했다. 길고 번잡할 것이라 여겼던 과정은 생각보다 짧았다. ‘정말 이렇게 끝나는 건가. 고인과의 마지막 순간인데 뭔가 더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모든 일은 속전속결로 마무리되었다. 평소 불필요한 허례허식은 필요 없다고 말해 온 나조차, 마지막의 순간만큼은 조금 더 길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정말 죽으면 끝이다. 인생이 허무하다”는 말이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삶의 허무함과 아쉬움이 크게 느껴진 장례식이었지만, 그 마지막이 쓸쓸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고인과 가족의 교회 식구들이 장례 내내 함께 해주었고, 친구들, 친인척들, 지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져 아주버님은 외롭지 않은 길을 떠나셨다.
장례식장 앞에 놓인 수많은 근조화환을 나는 평소 쓸데없는 장식쯤으로 여겨왔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 꽃들이, 그동안의 시간을 잘 살아내셨다는 위로처럼 느껴졌다.
떠나는 길이 꽃길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 고인을 향한 애도와 격려.
젊은 시절 비판적이고 비관적이던 시선이 이렇게 또 변한다.
모든 죽음은 아쉬움을 남기고 가슴 아프기에.
장례식장 입구의 근조화환을 바라보며 아들에게 건넨 한마디.
“지후야, 엄마 죽으면 입구에 아티스트들 이름으로 쫙 도배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