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첫 인상으로 관계의 많은 부분을 결정한다. 첫 인상이 안 좋았는데 시간이 지나며 가까워진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그 비율은 매우 적다. 그렇게 어렵게 좋아진 관계라 해도, 결국 정리하게 되는 순간들은 대개 때와 장소에 맞지 않는 차림새를 마주했을 때였다. 나에게 복장은 상대방과 주변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TPO가 결정적 계기가 되어 마음의 거리를 둔 사례가 몇 건 있다.
첫째 아이의 초등학교 시절, ‘사제동행’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주말에 선생님과 학생들이 학교 밖에서 특별한 활동을 함께 하는 행사였다. 집과 거리가 있는 장소에서 진행되다 보니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부모와 동행했고, 프로그램에 따라서는 학부모도 함께 참여했다. 외부에서의 모임이기에 분위기는 비교적 자유롭고 때로는 야유회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그렇다 해도 여러 학부모와 선생님이 한자리에 모이는 만큼, 나는 복장에 최소한의 격식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지나치게 편안하거나 두드러진 차림새를 보았을 때 개인적으로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차림은 레깅스 의상이다. 많은 이들이 그것을 운동복이나 등산복, 혹은 일상복으로 편하게 입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그 모습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그래서 마음 한편에는 레깅스가 실내에서의 운동복으로 주로 사용되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남아 있다. 특정 의상에 대한 내 선입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본다. 그럼에도 서로가 어색함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나는 배려의 표시로 조금만 더 신중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또 다른 사례는 공식적인 모임에서 집에서 자다 바로 나온 듯한 복장과 헤어스타일을 반복적으로 보았던 경험이다.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학부모들이 모이는 자리는 많은 엄마들이 나름대로 신경을 쓰고 참석하는 자리였다. 대부분은 단정하고 평범한 차림이었지만, 첫째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몇 번의 모임마다 머리가 헝클어져 까치집처럼 흐트러진 모습으로 나타난 한 엄마가 있었다. 처음에는 나도 모르게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같은 모습이 거듭되자 사람들은 그것을 그녀만의 컨셉쯤으로 여기며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신호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었고, 그 사람에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자리에서 깊게 파인 상의나 지나치게 짧은 하의, 유난히 화려한 원색의 옷을 마주할 때도 나는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전혀 모르는 타인이라면 그저 각자의 취향으로 넘기겠지만, 아는 지인일 경우에는 민망함과 함께 주변의 시선이 고스란히 전해져 괜히 몸 둘 바를 모르게 된다. 함께 있을 때 그 사람에게 쏠리는 관심이 공기로 느껴지면, 나는 자연스레 좌불안석이 되고 그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복장 하나로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성급하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옷차림은 그 사람이 세상과 관계를 대하는 태도를 보여 주는 하나의 신호처럼 느껴진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자유를 재단하고 싶지는 않지만, 동시에 나에게 불편함을 안기는 관계 또한 만들고 싶지 않다. 때와 장소에 대한 나의 기준을 존중받을 수 있는 거리, 그리고 서로에게 어색함을 남기지 않는 정도의 관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