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스럽다_아이를 가두는 말

by Balbi


아이들에게 별명을 지어 부르거나 ‘어른스럽다’라고 규정짓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규정짓는 말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사람은 그 틀 안에 갇히게 된다. 특히 어린아이의 경우, 자신의 정체성을 그 틀에 가두게 된다. 듣고 자란 말이 내 안에 고스란히 쌓이면서, 그 틀을 벗어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쉰을 넘긴 지금까지도 또렷이 기억나는 것이 있다. 두 살 위 언니에게는 늘 ‘순하다, 착하다, 예쁘다’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고, 나에게는 ‘까칠하다, 예민하다’라는 말이 붙었다. 거기에 더해 내 별명은 ‘못난이’였다. 갸름한 얼굴에 예쁘장하게 생긴 언니와 남동생 사이에서, 동글납작한 내 얼굴이 귀여워서 붙은 별명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별명 때문이었을까. 나는 나 자신을 ‘예쁘지 않은 사람’으로 규정하며 자라왔다.


그 표현을 크게 문제 삼지 않고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조카가 태어났을 때 상황은 달라졌다. 누군가 조카에게 그 별명을 쓰는 순간, 나는 정색을 하고 쏘아붙였다.


“듣는 못난이 기분 나쁘니까 그만해! 누가 못난이로 태어나고 싶어서 못난이로 태어났어? 부모들이 그렇게 낳아놓고 왜 그렇게 불러?”

“아니, 귀여우니까 귀엽다는 표현으로 그렇게 한 거지…”

“귀여우면 귀엽다고 하면 되지, 못난이가 뭐야?”


그날 이후로 친정 식구들이 모일 때 그 표현은 쏙 들어갔다. 조카는 고모인 내게 고마워해야 한다.


딸의 피부는 까무잡잡하다. 나 역시 새하얀 피부는 아니지만, 함께 샤워를 하며 속살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확연하다. 그렇다고 나는 그걸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가끔 둘의 피부색을 비교하며 웃을 뿐이다.


딸이 외모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하얀 피부의 친구들을 부러워한다. 그럴 때면 크면 좀 더 하얘질 거라는 말만 해줄 뿐, 이런저런 말을 덧붙이지 않는다. 반면 남편은 종종 “피부가 까매서 아쉽다, 하얗면 더 예쁠 텐데”라는 말을 한다. 반복되는 말에 딸이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 단호하게 하지 말라고 했다. 당사자가 그 말로 상처받고 싫어하는데, 왜 자꾸 하느냐고.


가족이라는 이유로, 듣기 싫은 표현을 조롱하듯 사용하는 것 역시 언어 폭력이다.

이런 말들이 쌓이면 사람은 스스로를 그 틀 안에 가두게 된다.


‘나는 못생겨서 안 돼.’

‘나는 피부가 까매서 안 돼.’


어른이 던진 말이, 아이의 한계를 대신 정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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