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생을 살겠다는 아들

by Balbi


1월 9일 중학교 졸업을 한 아들이 머리를 밀고 들어왔다.

졸업식 며칠 전부터 장난스레 하던 말이라 그냥 그런 가부다, 밀어도 살짝 흉내만 내겠지 했는데 아니었다. 정말 해병대 입대를 하는 헤어스타일로 짧게 밀고 왔다. 처음 보는 모습이 낯설고 뭔지 모를 먹먹한 마음이 들게 했지만 웃어넘겼다.


“나중에 군대 갈 때 엄마 울지 말라고, 예행연습 시킬라고 짧게 밀고 온 거지?”

“나 월요일부터 갓생 살려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동네 한 바퀴 뛰고 공부하고 기타하려고. 월요일부터 일찍 깨워줘!”


비장한 각오다. ‘갓생을 살겠다’는 말이 아들의 입에서 처음 나왔으니, 믿어보기로 했다. 월요일 아침 8시에 깨웠다. 방학이면 열두 시, 한 시에 일어나는 녀석에게는 미라클 모닝이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출근하는 아빠와 함께 나가 동네 한 바퀴를 뛰고 왔다.


“왜 벌써 들어와? 춥지? 옷을 두껍게 입고 나가라니까…….”

“한 바퀴만 뛰었는데 힘들어서 더 못 뛰겠어. 그리고 너무 추워서 땀도 안 나.”

“그래. 운동 안하다 하면 힘들지. 조금씩 늘려봐. 옷도 더 챙겨 입고 나가고.”


후드티 하나만 입고 나간 녀석은 십 분 만에 들어와 샤워하고 아침을 챙겨 먹었다.


겨울 방학 전부터 아이들에게 거실 책장에 있는 오래된 책들을 읽고 버리겠다고 했다. 초등학생 때 읽어야 할 책들이지만, 중학교 3년 동안 책과 담을 쌓고 지낸 녀석에게는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 옆에서 둘째도 함께 하루에 전집 하나씩을 클리어 하기로 했다.


첫 스타트가 좋았다. 둘이 나란히 앉아 전집 하나를 조용히 끝냈다. 내용이 너무 유치하다며 빠르게 마무리했지만, 잠시 쉬고 각자의 수학 공부를 이어 나갔다. 생소하지만 내가 원했던 오전 풍경이다.


중학교를 졸업한 아들은 고등 진학을 앞두고 있다. 우리의 계획대로 결과가 이어졌다면 예고를 거쳐 대학으로 가는 일반적인 코스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고 입시에 실패하며 방향을 조금 수정하고 있다. 실용음악과(기타)로 진로가 분명한 아들은 검정고시를 치른 뒤 대학 조기 입학으로 계획을 바꿨다. 큰 선택이다.


대학은 선택이고 고등학교 교육까지는 그냥 일반적으로 학교를 가는 게 당연한 거라 여겼는데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렸다. 공교육이 반드시 정답이라고 믿지는 않지만, 내가 지나온 길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당연한 과정이라 여겨왔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가보지 않은 다른 길을 고민하고 알아봐야 한다. 아직 최종 결정을 내린 상태는 아니지만, 아들의 마음은 거의 확정에 가깝다. 그 선택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다각도로 생각을 하도록 하고 있지만 그 결정이 크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일반적인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가려는 아들 때문에 모든 게 낯설고, 때로는 무모한 도전 같지만 내버려두기로 했다. 옆에서 내가 해줄 역할은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한 결정을 내릴 때 후회가 남지 않도록 여러 조언을 해줄 뿐이다. 도움을 요청하면 그것의 답을 함께 찾아주고.


이번 결정에서도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로인해 잃게 되는 것과 얻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아들은 잃게 되는 요소들에 대해 약간의 아쉬움은 남겠지만 미련은 없다고 했다. 그보다 얻게 되는 것에 마음이 더 끌린다고 했다.


최종 결정을 내리기 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 그때까지 오늘 아침의 풍경이 이어진다면 희망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아들의 갓생이 오래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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