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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덕질이 널 이롭게 하리라

by Balbi


몇 주 전 친구들과 처음으로 K리그 서울과 제주의 경기를 보러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 간 녀석이 경기가 끝나 올 때가 된 거 같은데 연락이 없었다. 또래끼리의 서울외출이 드물었기에 걱정이 되어 전화를 걸었다.


“아들, 경기 끝난 거 같은데, 왜 안와? 어디야?”

“어. 경기는 끝났는데 선수들 나오는 거 보려고 기다리고 있어. 친구들이랑 같이 보고 갈게.”

“아…….선수들 퇴근길 본다고. 알았어. 잘 보고 조심히 와.”


덕질을 하며 경험을 해봐서 그 기다리는 맘이 어떤지 알기에 당장 오라는 소리를 하지 못했다. 만약 내가 덕질을 해보지 않아 ‘퇴근길’이라는 것을 몰랐다면,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들과 통화를 마치고 혼자 실실 웃음이 났다. 내가 생각해도 이 상황이 웃겼다. 다른 때 같았으면 “늦은 시간에 뭐하는 거냐”며 호통을 치고 당장 오라고 했을 텐데, 내가 했던 행동이 있으니 이해가 되고 너그러워진 것이다.


밤 9시가 다 되어 귀가한 아들에게 저녁을 차려주며 물었다.


“선수들 퇴근길 잘 봤어?”

“아니, 우린 사람들 많이 모여 있는 1층에 있었는데 지하 주차장에서 버스에 타고 그냥 슝 지나가서 못 봤어. 같이 기다리기 전에 지하로 내려가 보려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는데지하가 눌리지 않더라고. 그래서 그냥 1층에서 기다렸는데…….”

“이런……. 선수들이 잘못했네. 기다리는 사람들 있는데 팬서비스 차원에서 천천히 지나가며 손이라도 흔들어주지.”


아들의 첫 퇴근길 경험은 그렇게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났다.



몇 년 전부터 약간 깊이 있는 덕질을 하고 있는 나는 덕질 예찬론자다. 어린 시절 덕질의 경험이 없을 때는 덕질을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덕질의 경험이 몇 년간 쌓이며 ‘덕질은 좋은 것이다.’라고 이야기 하며 주변에 권유하고 있다. 특히, 자녀를 양육하는 엄마가 덕질을 하면 좋은 점이 많다.


1. 10대 자녀와 대화가 많아진다.

2. 10대 자녀와 음악이나 취향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가 가능하다.

3. 10대 자녀와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진다.

4. 10대 자녀의 티케팅을 도와 줄 수 있다.

5. 10대 자녀에게 잔소리가 줄어든다.

6. 10대 자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


위의 여섯 가지가 다 연결되는 같은 말 같지만 분명한 건 덕질이 자녀와의 관계를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이다.


최근 읽은 책 ‘도둑맞은 집중력’에서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많은 이들이 집중하지 못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그중 ‘몰임’에 대한 설명이 특히 와닿았다.


“몰입은 하고 있는 일에 너무 푹 빠진 나머지 모든 자아 감각을 잃은 상태, 시간이 사라진 듯 한 상태, 경험 그 자체의 흐름을 탄 상태를 뜻한다. 몰입은 우리가 아는 것 중 가장 깊은 형태의 집중 상태다.” p85
“현재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은 스포트라이트 같은 집중뿐만이 아니다. 딴생각 또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이 두 가지 위기가 생각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딴생각을 하지 않으면 세상을 이해하기 힘들어지며, 그 결과로 불안하고 혼란한 상태가 되면 우리는 그다음에 찾아오는 방해 요소에 더욱더 취약해진다.” p151

-출처 : 도둑맞은 집중력_[요한 하리]


집중, 이 몰입이라는 것은 결국 깊이 있게 생각하고 이해하는 힘을 키우기 위한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찾아 그 행위에 몰입하는 경험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꼭 연예인 덕질이 아니더라도 깊게 빠질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몰입하는 경험은 상대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는 과정이다. 나 역시 덕질을 통해 몰입의 기쁨을 맛봤고, 이를 통해 아들과의 소통이 원활해졌다.


다음 주말, 아들은 엄마의 덕친 덕분에 성공한 티켓을 들고 ‘루시(LUCY)’ 콘서트로 향한다. 이번 공연도 퇴근길을 하려나 궁금하다. 만약 한다면, 이번에는 꼭 성공하기를!


원하는 모든 공연의 티케팅을 해줄 수는 없지만, 엄마의 덕질이 널 이롭게 할 거야.

덕질이 나를 변화시켰듯, 너의 삶도 빛나게 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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