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란테 김지훈 전쟁기념관 하반기 첫 국군정례행사 후기
‘사랑과 기침은 숨길 수 없다’는 이 말은 진리다. 아무리 세상 도도함을 유지하고, 온갖 시름과 걱정 속에서 무표정을 유지하던 이들도 사랑하는 대상을 보는 순간, 그 표정의 변화에서 마음을 숨길 수 없다.
요즘 덕질을 하며 공연장과 행사장에서 마주하는 팬들의 표정을 보면 그들의 찐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그녀들이 사랑하는 아티스트가 등장하는 순간, 표정은 180도 달라진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눈에서는 무한 하트를 발산한다. 그녀들의 그 표정을 보고 있으면 함께 행복해지는 기분이 든다.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는 나의 솔직함도 그 순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런 순간이 또 언제 있었을까? 한참 연애하던 때나, 아이들이 태어나 이쁜 짓을 하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공연장과 행사장을 오가며 만나는 팬들 대부분은 40~50대 여성들이다. 이들은 아이들의 사춘기와 자신의 갱년기를 지나며 성인이 된 자녀들과 함께 현실을 살아가느라, 무한 하트를 발산할 일이 거의 없다. 무미건조하고 팍팍한 현실 속에서 두 눈 속 무한 하트는 점점 사라져간다. 그녀들에게도 저렇게 반짝이던 눈빛이 있었던가, 새삼 궁금해진다.
하지만, 아티스트의 노래에 빠져 덕질을 하는 순간, 무한 하트는 다시 생성된다.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는 그녀들의 무한 하트. 이런 모습을 보면 덕질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삶에 무한 에너지를 제공해주는 ‘태양’과도 같다. 현실의 고단함 속에서 지치고 무기력해질 때, 덕질은 현실의 피로를 잊게 만드는 강력한 원동력이 된다.
지난 금요일,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하반기 국군 정례행사는 그러한 무한 하트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날이었다. 우천 시에는 행사 취소지만 그날은 한두 방울 떨어지는 비로 취소 여부가 불확실 했다. 오락가락 하는 날씨에 많은 팬들은 아침 일찍부터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 모여들었다. 공연시간이 가까워지며 하늘은 급기야 장마철 폭우같이 많은 비를 쏟아 부었다. 그러한 날씨에도 팬들은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을 떠나지 못하고 우비와 우산에 의지해 비를 피하고 있었다. 찐사랑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팬들의 마음이 전해졌을까? 결국 공연은 최초로 실내공연으로 축소되어 진행되었다. 군악대원들이 실내에 악기를 세팅하고 짧은 리허설을 마친 뒤, 약 20분간의 공연이 펼쳐졌다. 폭우로 무산될 거라 여겼던 행사가 실내에서 예상치 못한 형태로 이루어지자, 팬들은 모두 흥분과 설렘으로 가득 찼다. 상반기 행사와는 다른 곡들로 꾸며진 이 짧은 실내공연은 빗속의 고단함을 한순간에 씻어냈다. 그들의 표정과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 모두의 무한 하트를, 그날 무대에 선 아티스트들은 느꼈을까?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솔직함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무한 하트 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