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엔 지금처럼 카페가 유행처럼 번지기 오래전부터 개인이 하는 자그마한 카페가 하나 있다. 우리의 신혼집이 있었던 아파트 상가에 있는 카페로 같은 단지에 살던 언니가 언니네 아이들 초등 학교 때 오픈을 해서 아이들이 대학에 간 지금까지 홀로 운영을 해오고 있다.
지금은 주변에 카페가 많이 생겨 손님들이 분산된 듯 하지만 오픈 초기엔 동네 사랑방 같은 느낌이었다. 동네 사랑방과 같은 따뜻함에 사장님의 바지런함이 더해져 같은 단지에 살 때는 자주 들락거렸다. 이사를 하고도 이 카페의 시그니처 메뉴가 생각나면 이곳을 찾는다.
프렌차이즈 카페가 아닌 개인이 하는 카페는 그 카페만의 시그니처 메뉴들이 하나씩 있기 마련인데 이 카페는 자몽 차와 자몽에이드다. 사장님이 직접 자몽청을 만들어 뜨거운 차와 시원한 에이드를 만들어 주는데 그 맛이 정말 자동으로 엄지척을 하게 만든다. 자몽 알갱이가 탱글탱글 살아있고 자몽조각이 큼직하게 들어가 있어 다른 곳의 자몽차, 자몽에이드와는 차원이 다르다.
작년 농산물시장에 갔다 주먹만 한 레드자몽을 보고 카페에서 먹었던 자몽에이드 맛이 생각나 10개를 덥석 사왔다. 자몽의 경우 겉껍질은 쓴맛으로 사용안하고 안의 과육만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난 자몽 겉껍질의 씁쓸한 맛이 좋다. 그래서 6개는 안의 과육만 4개는 겉껍질도 함께 만들기로 했다. 겉껍질을 사용하기 위해선 세척이 무척 중요하다. 베이킹 소다를 이용해 겉껍질을 바드득바드득 닦아주고 베이킹 소다를 풀어준 물에 10~20분간 담가준다. 그 후엔 끓는 물에 담가 겉을 살짝 데치듯 소독 해준 후 물기를 닦아준다.
이 과정 후엔 본격적으로 자몽 손질에 들어간다. 6개는 겉껍질을 벗겨서 버리고 속의 과육을 감싸고 있는 속껍질도 벗겨 탱글탱글한 과육만 사용한다. 이때 손질하며 씨도 함께 제거해준다. 4개는 겉껍질 그대로 반을 잘라 얇게 썰어준다. 썰면서 씨는 제거 해준다. 씨가 쓴맛을 낸다고 하는데 한두 개쯤 섞여 있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글로 설명되어 간단해 보이지만 속껍질까지 벗겨 탱글탱글한 과육만 쏙 빼내는 작업이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손질하는 시간동안 상큼한 자몽향이 온 집안에 진동을 한다. 기분 좋은 향기다.
자몽 손질이 다 끝났으면 유리병에 자몽과 설탕을 1대1 비율로 넣어준다. 경우에 따라선 설탕을 20%정도 더 넣어준다. 설탕을 너무 많이 쏟아 부으면 자몽청인지 진한설탕물에 자몽을 넣은 건지 상태가 모호해진다. 이틀정도 실온에 두면 자몽에선 자몽 즙이 빠지고 설탕은 녹아 자몽청이 만들어진다. 이때 설탕이 녹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잘 섞어주고 하루만 더 실온에 두고 설탕이 다 녹으면 냉장고에 보관한다.
자몽 10개를 손질해서 자몽청을 만드니 김치냉장고 김치 통으로 2분의 1정도가 채워지는 많은 양이 나왔다. 온 식구가 모여 시식의 시간을 가졌다.
예쁜 투명한 유리잔에 자몽청을 넣고 얼음을 채운 후 시원한 탄산수를 부어 시원한 자몽에이드를 만들어준다. 상큼한 향과 불그스름한 빛깔이 투명한 얼음과 어우러져 영롱하다.
“우와, 정말 맛있다. 카페에서 파는 거랑 똑같아. 자몽 알갱이가 탱글탱글하고 완전 맛있어.”
“그러네, 맛있어. 엄마, 근데 좀 써.”
아이들은 탱글탱글 자몽엔 관심 없고 음료만 쏙 마시고 시간이 좀 지나선 쓴맛이 난다며 거부했다. 결국 남편과 나만 틈나는 대로 차와 에이드를 만들어 마시고 주변에 나눔을 하며 자몽청의 맛에 흠뻑 빠졌었다. 과일의 상큼함을 대체해준 자몽에이드.
추울 땐 자몽 생각이 안 나더니 갑자기 자몽에이드가 당긴다. 봄이 오고 있나보다. 살짝 날씨가 풀려 어디선가 봄냄새가 난다 싶으니 불현듯 자몽에이드가 생각났다. 봄맞이로 자몽청을 또 만들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