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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 아티스트를 만날 수 있었던 순간이 사라

2024년 12월 19일 부천아트센터 공연 관람 후기

by Balbi


예정대로라면 오늘은 두 명의 최애 아티스트를 만날 수 있는 날이었다.

큰 기대와 설렘으로 기다려왔건만, 그 기다림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큰 사건으로 인해, 기다리던 공연은 공지가 나오기도 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내게는 오랫동안 마음을 설레게 했던 중요한 날이었지만, 이런 현실 속에서는 아쉬움조차 말하기 어려웠다. 참으로 안타깝고 원망스러운 마음이다.


상반기에 경험했던 국방부 군악대 정기음악회가 얼마나 인상 깊었는지 알기에, 이번 12월 송년음악회에 대한 기대는 더 클 수밖에 없었다. 퀄리티 높은 공연, 연말이라는 특별한 시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훈(리베란테)과 새싹 아티스트를 무대에서 볼 수 있는 기회라 오래전부터 손꼽아 기다려왔다. 하지만 12월 3일 비상계엄으로 공연은 사라졌고, 그와 함께 나의 설렘도 흔적 없이 묻혀버렸다. 큰 사건 앞에서 공연은 당연히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그날을 기다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공연일이 다가올수록 잊으려던 설렘이 아쉬움으로 스며들며 문득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하반기 초 일찌감치 티켓팅해두었던 부천아트센터의 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다.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은 갈 때마다 포근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느껴져 참 좋아한다. 백스테이지 투어를 했던 둘째는 무대에서 객석이 너무 잘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공연을 보며 졸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오늘 공연은 부천시립합창단의 송년음악회 <헨델, 메시아>.



프로그램 헨델, 메시아 작품56

연주 부천시립합창단, 부천필하모니오케스트

지휘 김선아

출연 소프라노 김제니, 카운터테너 장정권, 테너 김효종, 베이스 성승욱




1시간 30분 공연시간 동안 프로그램 내용을 선별해 연주했지만, 그중 내가 아는 곡은 '할렐루야' 하나뿐이었다. 공연을 보며 졸지 않겠다던 둘째는 끝내 참다 참다 졸기 시작했고, 첫째는 공연 시작과 동시에 고개를 푹 숙인 채 잠에 빠졌다. 인터미션에 잠시 깼던 첫째는 2부가 시작되자마자 또 스르르 잠들었고, 졸음을 간신히 참고 있던 둘째는 '할렐루야'가 나오자 눈을 번쩍 뜨며 잠든 첫째를 급히 깨웠다. 그 순간 작은 감동이 몰려왔다. ‘그래, 한 곡만 제대로 들어도 오늘은 성공이야!’라는 마음으로 웃음이 지어졌다.


어렵고 지루했던 공연이 끝난 뒤 나눈 대화가 참으로 소박하면서도 특별했다.

“할렐루야 들었음 다 들은 거야! 오늘 공연에서 그거 하나 제대로 들었음 된 거야.”

“엄마, 다른 곡은 아는 거 없었어?”

“엄마도 모르겠더라. 어렵긴 했어. 할렐루야만 알겠더라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졸고 앉아있어도 한 곡만이라도 마음에 남으면 충분히 의미 있는 경험이라고.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하며 모든 곡을 제대로 들으면 좋겠지만, 그 모든 건 하나씩 쌓이는 과정이니까. 공연장의 환경과 분위기에 익숙해지고 나면 언젠가 스스로 공연을 찾는 날도 오리라 믿는다. 경험해 본 것과 아닌 것에 차이는 크니까.


어려운 오늘의 공연에서 남는 것이라면 ‘소프라노와 카운터테너의 소리가 참 아름답구나!’를 느낀 것이랄까? 개인적으로 소프라노와 카운터테너 소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고막이 찢어지는 듯한 느낌이 부담스러워 소프라노 조수미의 노래를 제외한 다른 가수의 노래는 피해왔었다. 오늘 공연에서도 소프라노와 카운터테너 각각의 솔로 곡에서 잔득 긴장을 하며 들었다. 그런데 오늘, 소프라노 김제니와 카운터테너 장정권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소리에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그들의 목소리에 빠지다 보니 문득 스스로에게 경고했다. ‘이러다 또 새로운 덕질이 시작되면 어떡하지?’, ‘지금 최애들로도 충분해!’ 스스로 다짐하며 마음을 다잡아본다.

덕질의 대상이 너무 많아지면 감당이 안 되니까.


공연장에서 돌아온 지금, 두 명의 최애 아티스트가 유난히 보고 싶은 밤이다.

아쉽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그들의 공연 영상으로 마음을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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