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생활 중 가장 유치하고 재밌는 취미는 덕질이 아닐까 싶다. 우아하고 고상하게 공연장을 찾아 음악 감상하는 것은 음악 감상이 취미라고 소개를 해야 한다. 덕질은 공연장을 찾아 음악을 감상하는 단계에서 끝나지 않고 그 이상을 한다. 아티스트의 MD를 사서 모으고, 생카를 찾아가는 등 아티스트의 모든 스케줄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다. 음원으로 노래를 듣는 세상이 되었지만 아티스트들은 음원과 함께 음반도 동시에 출시하는데 음반은 아티스트들의 포토카드를 모으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판매처에 따라 음반에 삽입되어 있는 포토카드가 다른 경우 포토카드를 모으기 위해 음반을 구매한다. 10대 때에도 하지 않던 포토카드를 모으는 중년들이라니. 덕질이라는 것을 하고 있는 지금 카드지갑에 들어있는 포토카드를 볼 때마다 웃음이 나온다. 명함크기의 작은 포토카드를 종류별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앨포 : 앨범 포토 카드의 줄임말. 앨범 구성에 포함되어 있는 포토 카드이다.
미공포 : 미공개 포토 카드의 줄임말. 음반 판매처별 특전으로 제공되는 공식 포토 카드이다. 예약 판매 기간 내에 앨범 구매 시 증정하는 '예판 특전 포카', 팬사인회 응모 기간 내에 앨범 구매 시 증정하는 '팬싸 응모 특전 포카', 앨범을 구매하고 럭키드로우로 뽑는 '럭드 포카' 등이 이에 해당한다.
공방 포카 : 공개 방송(보통 음악 방송)에 가면 주는 포토 카드이다. 앨포, 미공포와 달리 제공하지 않는 곳도 있다.
비공식 포카 : 포카의 인기에 팬들이 비공식으로 포카를 제작하기도 한다. 팬들이 만든 비공식 포카는 콘서트나 연예인 관련 행사에서 무료 나눔으로 뿌리기도 한다.
덕질을 하는 팬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포카를 샀더니 앨범이 따라왔다는…….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음반으로 노래를 듣지 않는 상황에서 포토카드 때문에 음반을 사야만 하는 현실을 비꼬듯 이야기 하는 것이다.
크로스오버 팬덤과 비교할 수 없이 규모가 큰 아이돌 팬덤에서는 이 포토카드로 인한 문제점이 크게 나타나고 있다.
연예 기획사들은 음반 판매량을 높이기 위해 주로 포카를 이용해 상술을 부린다. 음반 종수 늘리기, 앨포를 다양한 버전으로 나누어 랜덤 비율 높이기, 미공포 증정 등의 방법이다. 음반의 버전이 A, B, C로 3종, 각 버전별로 포카가 2종, 멤버가 7명이라고 하면, 음반 3종 x 포카 2종 x 멤버 7명으로 앨포는 총 42종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미공포까지 더해져 한 음반에 포카 종수가 어마하게 늘어난다. 미공포는 음반 판매처에서 증정하는 포토 카드를 의미한다. 연예 기획사에서 음반 판매처와 계약을 맺어 멤버들의 사진을 보내면 판매처에서는 포토 카드로 제작하여 아래의 예판, 팬싸, 럭드 등의 혜택으로 증정하는 것이다. 연예 기획사 측에서는 음반 판매량 증가, 음반 판매처 측에서는 매출 증가로 둘 다 이득인 셈이다.
예판 특전 포카 : 음반 판매처에서 예약 판매를 진행하여 해당 판매처에서 기간 내에 앨범을 구매할 경우 구매자 전원에게 특전으로 증정하는 포카
팬싸 응모 특전 포카 : 음반 판매처에서 팬사인회를 주최하여 해당 판매처에서 기간 내에 앨범을 구매할 경우 구매자 전원에게 특전으로 증정하는 포카
럭드 포카 : 음반 판매처에서 럭키드로우를 진행하여 나오는 포카
문제는 음반 판매처가 2020년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미공포는 음반 판매처의 독점 포카이기 때문에 판매처별로 모두 다르다. 한 곳에서 팬싸를 여러 번 하는 경우 미공포가 1차, 2차, 3차... n차로 늘어난다. 아이돌마다 다르지만 한 음반에 멤버별 미공포가 10종에서 많게는 100종까지도 된다. 이에 팬들은 포카 리스트를 만들어 올리기도 한다.
2023년 8월 2일 엔터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아이돌 포토카드에 대해 ‘끼워 팔기’ 혐의를 두고 현장조사에 나섰다고 밝혔다. 지나치게 많은 종류의 포카를 제작해 팬들의 ‘팬심’을 이용한 사행성 상술이라는 지적이 이어지는 데 따른 것이다. 7월 31일 SM엔터테인먼트, 8월 1일 JYP엔터테인먼트, 8월 2일 YG엔터테인먼트에 대한 현장조사를 진행했다. 이후 HYBE도 현장조사를 진행했다.
2023년 8월 14일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45조에서 거래를 강제하는 행위라 규제하는 '끼워팔기'가 아닌지 살펴봤다. 다만 포토카드를 사라고 강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처벌이 쉽지 않을 거란 분석도 있으며 법적 처벌과 관계없이 소비자 권익 차원에서 기획사들이 자정해야 한단 지적도 나왔다. 한국소비자원은 "지금 같은 포토카드 판매 방식은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저해하며 사행심을 조장할 수 있다. 앨범과 구분해 팔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앨범과 구분해서 판매를 할 경우 앨범 판매량은 지금과 비교해서 그 수량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음반으로 음악을 듣지 않는 세상에 음반을 제작해서 음반을 판매하는 것이 아이러니다. 현재 음반은 하나의 MD로 취급된다. 내가 사랑하는 아티스트의 앨범을 기념하기 위해 모으는 정도이기 때문에 앨범 판매량을 올리기 위한 다양한 종류의 포토카드 끼워 팔기는 달라져야 한다. 각자의 수준에 맞는 덕질을 하면 된다지만 팬심을 이용한 상술임에는 틀림없다.
10대가 중심인 아이돌 팬덤에서 행해지던 포토카드 모으기를 중년여성들이 주축인 크로스오버 팬덤에서도 행해지고 있으니 재밌는 광경이다. 나이 먹고 유치하게 뭐하는 짓이냐고 할지 몰라도 그것으로 내 맘이 행복하고 즐거우면 되는 것 아닌가. 단, 내 수준에 맞게 무리하지 않는 현명한 덕질이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