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한 아티스트의 음주뺑소니로 시끄럽다.
뉴스와 신문에 그의 기사로 도배가 되며 관련 기사에 달리는 댓글은 사건만큼이나 자극적이다. 처음엔 절대 음주가 아니다. 진실은 밝혀질 거라더니……. 공연을 끝내고 음주했다고 시인을 하는 모습이라니. 그 아티스트를 사랑했던 팬들은 얼마나 배신감이 클지 덕질을 하는 덕후 입장에서 맘이 아프다.
세상이 이렇게 시끄러운데 공연을 강행하는 모습을 보며 돈이 참 무섭구나 싶었다. 공연 취소로 인한 위약금과 티켓 환불등 엄청난 손해가 발생됨은 불 보듯 뻔하다. 시간이 지나며 정황과 증거가 음주였음이 확실시 되니 그제야 음주를 시인했다. 그의 팬은 아니지만 한때 그의 목소리와 노래가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문제를 일으키다니 참 실망스럽다. 예정되어 있던 공연은 강행하겠다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무대에서 노래가 나올까 싶다.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음주뺑소니로 시끄럽다 보니 KBS가 주최하는 ‘슈퍼클래식’ 공연은 공연 주관사에 출연자 교체 요청을 하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시에는 KBS 이름과 로고 사용을 금지하겠다는 입장도 내놓았다. 악화되는 여론 속에서도 공연을 강행한다는 사실에 비난 여론은 더욱 커졌다. 공연 티켓팅이 이루어졌던 멜론에서는 ‘슈퍼클래식’ 공연 취소 수수료 전액 면제 방침을 내놓았다. 그러자 6,000표가 넘는 취소표가 쏟아졌다니 그 공연을 기다렸던 팬들의 배신감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경찰 조사가 진행 중으로 구속이냐, 벌금이냐 등으로 어떠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결론이 난 후 법적인 책임을 다 한다고 해서 이 사건이 대중들의 뇌리에서 사라질까? 아니라고 본다. 단순히 음주운전에서 끝나고 바로 시인했으면 사건은 조용히 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은 것을 은폐하려다 너무 사건을 키워버렸다. 법적인 책임을 다한다고 해도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섰다. 안타깝다.
덕질을 하는 입장에서 줄곧 이야기했던 것이 있다.
‘내가 덕질하는 아티스트가 신문 사회면에만 안 나오면 된다. 그럼 나에게 탈덕은 없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여러 안타까운 사건을 접하며, 덕질을 하며 가지고 있던 기본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다. 지난겨울 한배우가 마약 관련 사건으로 경찰 조사를 받던 중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일은 큰 충격이었다. 그 배우 역시 덕질을 하던 아티스트는 아니었지만 그의 여러 작품을 봤던 관객의 입장에서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사건과 관련 없는 그의 사생활을 언론에 공개함으로써 그를 궁지로 내몬 수많은 언론사들이 원망스러웠다. 마약 관련 사건이라 그의 이름은 매일 사회면을 장식했다. 그 당시 내 기준이라면 사회면에 이름을 올리는 아티스트는 아티스트로서의 자격미달이었다. 그러나 경찰 조사 시 그에게서 증거는 발견되는 것이 없었다. 정황과 제보 등으로 그를 압박했다는 느낌이 들 무렵 속보가 떴다. 차에서 의식을 잃은 그를 발견했다는 속보에 ‘제발 죽지 마라. 빨리 병원으로 옮겨 깨어나라.’를 맘속으로 빌었다. 그런데 그가 죽었다. 충격과 안타까움에 머리가 멍해지고 내가 가지고 있던 기준이라는 것이 과연 올바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죽음으로 아티스트도 살다보면 사회면에 나올 수도 있지, 그런데 그걸 어느 선까지 받아들이고 용서해야 하는 거지? 정리되지 않는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나의 덕질에 정당성을 부여받기 위한 생각의 정리하고 해야 하나…….
‘덕질에 정당성이 어디 있어? 그냥 좋으니까 하는 덕질인데…….’ 할 수도 있지만 덕질을 하는 입장에서는 나의 덕주가 ‘바른 사람, 매너 좋은, 젠틀함, 다정함, 츤데레, 시크함, 귀여움, 사랑스러움’ 등의 좋은 이미지를 갖추고 있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도 이런 종합적인 느낌으로 덕질을 하는 것인데 이런 나만의 생각과 환상이 깨진다면 과연 덕질을 지속할 수 있을까? 나만의 생각이라 누구의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티스트의 입장에서는 ‘나 원래 그런 사람 아니에요. 나를 그런 프레임에 가둬두고 그리 상상한건 당신들이잖아요.’ 할 수도 있는 문제지만 일단 그러한 이미지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그들의 책임도 일정부분 있다고 본다.
그래서 그 기준을 다시 잡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두루뭉술하게 ‘사회면에 나오면 안 돼!’ 가 아니고 ‘음주운전, 마약, 성폭행, 성추행, 살인, 대형사기 등의 강력 범죄로 사회면 등장만 아니라면 괜찮아.’ 로 정리되었다.
중년의 덕후들은 덕질을 하며 갱년기와 우울증에서 해방되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삶의 크고 작은 상처와 고민들을 덕질로 치유 받는 경우가 많다. 10~20대의 덕질이 맹복적이라면 중년의 덕질은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경우가 많아 한번 빠져서 덕질을 하면 쉽게 탈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번 사건으로 그 아티스트의 팬덤에서 탈퇴하는 회원의 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며 ‘아 탈덕한 분들 우울증이 도지겠구나. 행복하자고 시작한 덕질에서 실망과 상처만 남았구나.’ 같은 아티스트는 아니지만 덕질을 하는 입장에서 그들이 어떤 맘일지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