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nership(동반자 관계), 시너지의 극대화
2000년대 초반, 아남반도체의 부실로 인해 아남반도체의 국내 반도체 패키징 공장(現AMKOR KOREA)들이 AMKOR(미국)로 매각되면서 우리나라는 시스템반도체 패키징 시장의 변방으로 내몰리게 됐다. 이후 국내 OSAT들이 우리나라 IT산업 Trend에 따라 메모리 반도체와 DDI에 국한되어 발전하는 사이에 시스템반도체와 메모리 반도체 모두를 아우르던 대만과 미국의 OSAT들은 규모와 기술력에서 우리나라 업체들과 격차를 벌려 나갔다. 2010년대 들어서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금융 & 세제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기업들의 약진으로 우리나라 OSAT업체들의 위상은 현저히 낮아졌다. 반도체 시장의 성장과 맞물려 OSAT시장의 규모는 갈수록 커지지만 우리나라의 점유율은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만약 이대로 시간이 더 흐른다면 다시는 앞선 경쟁사들과의 간격을 따라잡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
각국의 OSAT 산업 현황을 살펴보고 해외 Top Tier 업체들의 성장전략을 벤치마킹하여 우리나라 OSAT산업의 돌파구를 찾았으면 한다. 메모리 반도체를 넘어 시스템 반도체, Foundry 강국으로의 도약을 준비하는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이 온전한 과실을 모두 취할 수 있도록 반도체 패키징 분야에서의 취약한 부분을 파악하고 어떻게 보완해 나가면 좋을 지 함께 고민해 봤으면 한다.
대만 OSAT업체들에 대해 살펴보기 전에 현재 대만 반도체 산업의 중심축인 Foundry(Wafer 가공 위탁업) 산업과 한때 대만 반도체 산업의 미래였던 메모리 반도체 업체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1987년 TSMC의 前회장 모리스 창(張忠謨·장중모)이 대만 신주(新竹) 과학단지에 Wafer 가공만을 전문으로 하는 TSMC를 설립하면서 대만의 반도체 산업은 일대 전환을 맞게 된다. 모리스 창은 "고객의 칩을 생산하되 자사 브랜드의 칩을 설계하거나 생산하지 않는다. 고객들과 절대로 경쟁하지 않는다."라는 설립 모토를 내걸고 Foundry라는 새로운 반도체 생태계를 만들었다. 그동안 IDM(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종합 반도체 회사)의 양산 라인을 빌려 힘겹게 반도체를 생산하던 팹리스(Fabless-설계업체) 업체들에게 있어서 TSMC는 구세주 같은 존재였다.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 모바일 산업의 태동으로 당시만 해도 규모가 크지 않았던 팹리스 업체들 중에서 퀄컴과 같은 거대 팹리스 업체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팹리스의 Wafer를 가공하던 TSMC의 사세도 커져갔지만 저사양의 휴대폰에 탑재되는 반도체의 수가 한정적이다 보니 성장 속도는 완만했다. 2008년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인해 반도체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전까지 TSMC를 비롯한 Foundry 업체들은 기술력과 생산력 면에서 메모리 반도체 생산업체보다 한 수 아래로 여겨졌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불러온 모바일 산업의 발전은 반도체의 고도화를 가속화시켰다. TSMC를 필두로 한 Foundry 업체들은 선단 공정을 통해 반도체 고도화의 큰 축을 담당했으며 이에 따라 2010년대 Foundry 업계는 성장을 거듭했다. 최선단 공정에 대한 투자 비용은 시간이 갈수록 급증하여 이제 7um이하의 미세 선폭 가공이 가능한 생산 라인을 운영 또는 추가 건설할 수 있는 업체는 TSMC와 삼성전자로 좁혀졌다. 삼성전자와 TSMC가 Foundry 사업을 영위함에 있어서 언제든지 경쟁사로 돌변할 수 있는 삼성전자보다는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 TSMC로 발주가 쏠릴 수밖에 없다. 애플, 퀄컴, 엔비디아, AMD 등 굴지의 반도체 업체들은 TSMC의 최선단공정에 Wafer 가공 발주를 맡기기 위해 TSMC 생산 물량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주요 이유이다. 2020년 TSMC는 54조 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Foundry 시장 에서의 점유율은 54%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반도체 수급 이슈 및 인공지능, High Performance Computing에 대한 수요 증가로 인해 TSMC의 기세는 당분간 쉽게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TSMC는 Foundry에서 한발 더 나아가 2016년 iPhone 7에 탑재된 AP(Application Processor) A10을 자사의 패키징 기술인 Info(Integrated Fan-Out)를 적용하여 양산하기 시작했다. 이후 TSMC는 Apple의 반도체 물량을 독점하고 있다. Foundry 업체로서는 이례적으로 반도체 패키징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데, 최첨단 반도체의 패키징 물량을 두고 ASE Holdings, Amkor, JCET와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TSMC 이전 대만에는 대만 최초의 반도체 회사 UMC(United Microelectronics Corporation-現Glabal no. 3 Foundry)가 반도체 Wafer를 생산하고 있었다. UMC는 TSMC가 설립된 1987년 당시에는 자사 브랜드의 반도체를 생산하던 IDM이였으나 1994년 IDM에서 Pure Foundry로 전환했다. Foundry만 놓고 보면 TSMC와는 17년의 업력 차이가 있다. 현재는 TSMC에 이은 대만 2위(Global 3위)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대만에는 TSMC와 UMC 외에도 다수의 중소형 Foundry 업체들이 있는데, 이 중 상당수는 메모리 반도체 업체에서 Foundry로 전환한 경우가 많다.
1993년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디램 1위 - 1992년)에 오른 지 얼마되지 않아 대만도 전략적으로 메모리 반도체 진출 및 육성을 추진했다. 대만은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원천기술이 없다 보니 미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의 메모리 반도체에서 원천기술을 라이선스 하여 생산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렇게 난야(1994년), 파워칩(1996년), 프로모스(1996년)가 설립되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속속 진입했다.(Windbond - IDM에서 메모리 위탁 생산 사업 추가)
당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삼성전자라는 절대 강자와 다수의 업체들이 각축을 벌이던 춘추전국시대로 치킨게임을 목전에 둔 일촉즉발 상황이었다. 일본 반도체 업체들은 세계반도체 시장에서 급속도로 경쟁력을 잃어 갔는데, 궁지에 몰린 일본의 디램 3개사(니폰 전기, 히타치, NEC)는 1999년 ~ 2000년에 걸쳐 합병하여 사명을 엘리다로 정하고 규모의 경제로 시장의 위험을 돌파하려 했다. 2000년대 들어 시장은 삼성전자, 하이닉스, 엘피다, 마이크론, 키몬다(2006년 인피니언의 메모리 반도체 부분 분사) 5개사에 경쟁은 치열해져 갔으며, 대만의 업체들은 선두권 업체와의 합종연횡을 통해 반도체 경기 사이클이라는 파고에 맞서고자 했다.(마이크론-난야, 엘피다-파워칩, 키몬다-윈본드)
2000년대 중반 삼성전자는 디램 반도체의 치킨게임을 주도하여 시장 참여자들 대부분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하지만 자금 여력이 있는 업체들은 꿋꿋히 버티며 치킨게임이 끝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2007년 서브프라임과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덮쳤다. 누적된 적자로 자금난에 허덕이던 일부 시장 참여자들은 손쓸새도 없이 사면초가에 놓이게 됐다. 시장이 구조조정에 들어갈 때는 대부분 시장점유율이 낮고 규모가 작은 업체들 순으로 정리가 된다. 이 법칙은 당시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대만의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과 독일의 키몬다가 순차적으로 시장에서 퇴출됐다.
키몬다는 2009년 파산보호 신청 이후 2011년 해체됐다. 이후 키몬다의 디램 기술은 중국으로 매각되어 창신 메모리 테크놀로지(ChangXin Memory Technologies, Inc.长鑫存储技术有限公司)의 디램 개발의 주춧돌로 사용되었다. 또한 중국 쑤조우에 있던 키몬다의 후공정 생산라인은 China WLCSP Co., LTD로 매각되었다. 회사는 공중분해되어 사라졌지만 정작 이로 인해 득을 본 것은 중국업체들이라 아이러니 일이 아닐 수 없다.
대만 정부는 엘피다가 그랬던 것처럼 대만 메모리 반도체 3개사의 자산을 통합하여 1개의 거대 업체(Taiwan Memory-타이완 메모리)로 재편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3개사의 기술 제휴 업체가 다르다 보니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생산설비와 양산 공정이 업체별로 상이하여 실행으로 옮기지 못했다. 또한 3개 사 합병 시, 기대되는 시장점유율이 8~10% 정도로 시장을 선도할 만한 규모를 갖추지 못한 점 그리고 독자적인 기술의 부재로 선진 업체들에게 지속적으로 기술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 대만 정부로 하여금 구조조정을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대만 메모리 3인방은 각자도생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프로모스는 하이닉스의 자금지원과 기술 이전으로 기사회생을 노렸으나 대규모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다가 2012년 주식거래가 정지됐다. 혹독한 구조조정 기간을 거친 뒤 2018년에야 정상화됐지만 2020년 매출액 353억 원으로 시장에서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당시 hynix와의 자본 제휴의 흔적으로 SK hynix가 아직 12.46%의 프로모스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엘피다의 기술과 자본이 투입되었던 파워칩은 2013년 엘피다의 파산 이후,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파산 직전까지 갔다가 구조조정을 통해 파운드리로 전환했다. 이후, 중국 합비(허페이) 시와 합작으로 넥스칩(Nexchip)을 설립하는 등, 메모리 반도체 사업으로 발생한 부채(1,200억 대만달러, 약 5조 원)를 상환하기 위해 노력했다. 2021년 12월 7일, 2012년 주식시장에서 퇴출된 지 9년 만에 대만 증시에 재상장했다.
마지막으로 난야 테크놀로지는 대만 최대 기업 집단 중 하나인 포모사 그룹의 계열사로서 금융위기 이후에도 살아남아 디램 사업을 이어갔다. 2020년 기준 디램 시장에서 약 3%가량을 점유하고 있다. 최근 COVID-19로 인한 급격한 디지털화 전환으로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것에 발맞춰 11조 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공시했으나 실제 실행으로 옮길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대만업체와 타국의 메모리 반도체 회사와의 합작 법인 그리고 일본의 엘피다는 시간차를 두고 모두 Micron으로 인수되어 현재와 같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3강 구도를 갖게 되었다.
앞에서 부족하나마 대만 반도체 산업의 발전사를 먼저 설명한 것은 대만 Foundry의 성장과 메모리 반도체의 쇄퇴가 대만 OSAT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OSAT업체들이 메모리 반도체와 DDI 위주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메모리 반도체와 DDI가 우리나라 Wafer 가공업체의 주업(主業)이며 이를 OSAT업체들에게 패키징 위탁을 맡겼기 때문이다. 동일한 관점에서 보면 대만에 TSMC와 UMC 와 같은 Foundry 업체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대만의 OSAT 산업이 강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Wafer가공 업체의 외주 정책에 따라 OSAT업체의 매출이 급변한다. 가공된 Wafer의 주인이 패키징 위탁을 의뢰한 업체이기 때문에 OSAT입장에서는 지속적인 사업 영위를 위해 원청업체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국내 OSAT는 원청업체 내부에서 미처 패키징하지 못한 물량을 넘겨 받아 패키징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 현실이다. 패키징을 위한 핵심기술은 원청업체 내부에서 개발되어 OSAT로 이전되다 보니 신규 패키지 개발에 대한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할 기회가 부족하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국내 업체들의 매출액은 늘었을지언정 내실은 취약해 질 수 밖에 없다.
대만 OSAT업체들은 최종고객사가 팹리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Foundry는 팹리스를 위해 Wafer를 가공하고 OSAT는 Foundry에서 생산한 Wafer를 패키징하여 팹리스의 이름을 붙여 출하한다. Foundry와 OSAT 모두 동일한 고객사를 위해 사업을 영위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같은 수직적인 관계가 아닌 수평적 동반자 관계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또한 패키징 기술을 OSAT에서 갖고 있기 때문에 팹리스, Foundry 사이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개인적으로 Foundry와의 동반자적 관계와 OSAT업체의 패키징 기술 내재화가 현재의 대만 OSAT의 경쟁력을 기운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