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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렌 Jun 25. 2020

인생의 절정은 35~45세다.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 사회적 위치 모두 이제 내리막만 남았다.

인생의 절정을, 가장 화려한 시기를 언제라고 규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떤 부분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개인차도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평균치를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육체적으로는 남녀의 차이가 있긴 해도 그 절정은 20대 초반 정도라고 봐야 하고, 정신적으로는 아무리 늦어도 30세 이전(여기서 정신적인 부분은 뇌의 기능, 학습능력 등을 위주로 멘탈의 힘을 더한 의미라고 하자), 경제적으로는 직장인과 사업자 간의 차이로 더 큰 폭의 차이가 나겠지만 평균적으로 사기업 직장인은 연봉이 가장 높을 40대일 것이다. 공무원이나 공기업의 경우는 정년 직전이겠고, 사업하는 사람들은 나이를 떠나 때를 크게 타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이야기하긴 어렵겠다.('난 이미 지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데 아니길 바랄 밖에) 사업자는 20대에 사업으로 성공하는 이들도 있지만 드문 일이고 대체로 활발한 사업자들은 30~50대다. 뭐 공식은 아니니까 넘어가자. 사회적 위치로도 정치인이나 기타 전문직을 보면 30세 이전에 자리 잡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에 40대 이후라고 봐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인생을 길게 두고 볼 때 그 사이클은 이렇게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경제적인 부분을 고려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가 한다.


그런데 여기서 육체적인 부분이나 정신적인 면은 30대까지는 노력 여하에 따라 20대의 그것을 유지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는 있다. 프로 운동선수도 30대 초반이 전성기인 종목들도 많다. 정신적으로는 20대의 경우 분명 약간 미성숙한 부분들이 있고 20대까지 공부한 것으로 30대 이후 학문적 성취를 이루어가는 것을 생각하면 능력치를 떠나 절정은 대체로 30대가 가장 종합적인 능력이 좋은 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 경우 신체적으로는 그래도 아직 젊음이 느껴질 수 있는 나이이고, 무리하지 않는다면 어떤 운동도 다 소화할 수 있다. 신체 수행능력과 회복능력은 떨어지고 있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건강하다. 20대와 견주어도 좋다. 어떤 운동도 아직 할수록 잘하게 되는 경험을 하는 나이다. 그러나 남녀 모두 40대 중반이 넘어가면 폐경기라던가 탈모라던가, 생식능력의 저하가 두드러지고 실제로 근육의 생성 능력도 현저히 떨어질 테니 나도 그걸 피하지는 못할 것이다. 신체 대사 자체가 급격히 떨어지므로 노력으로 유지하는 것은 한계가 온다. 아무리 대단히 노력해도, 40대가 지나면 정상 근처에 있기는 어렵다. 극단적인 수도승 같은 태도로 임하던 일본인 야구선수 이치로를 봐도 알 수 있다. 근육이 아닌 시청각 감각이 떨어지면 뇌가 몸을 세세하게 컨트롤하기 어려워지고 그때부터는 내리막이다. 35세부터 자잘하게 느끼던 내 몸 같지 않은 느낌이 아직은 통제 범위 내에 있지만 45세 이후로는 자신 없다.


외국에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서 30대 중반에도 이미 떨어지기 시작한, 아니 이미 떨어진 암기력, 집중력을 느낄 수 있었다. 기존의 학습된 것을 바탕으로 성취를 이루려는 측면에서는 발전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내가 무슨 학자도 아니고, 스스로 새로운 것을 습득하는 능력은 30대 중반에 이미 떨어지기 시작했음을 느꼈다. 그래도 마흔까지는 어느 정도 노력하는 게 시간낭비라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다. 하지만 쉰이 넘으면 글쎄, 인풋 대비 아웃풋의 효율이 극도로 떨어질 것 같다. 뇌의 능력은 신체, 육체적 능력, 체력에도 크게 의존하는데 내 경우 이미 전체적인 정신적 기능 저하를 육체적인 그것만큼 크게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과거에는, 내가 보기에 부모님 세대는 그래도 50대에 가장 큰 자산을 보유하고 경제적 능력이 제일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IMF사태 이후 갈수록 경제적인 위기들이 짧은 주기로 닥치고 정년 유지가 어려워지면서 이제는 40대 중반이면 퇴직 걱정을 해야 하니, 40대가 가장 절정이지 싶다. 공무원 등 정년이 보장되는 경우에 50대에 40대보다 더 연봉이 많아지는 직업을 가진 경우라 해도 나이 오십 전후에 자녀들의 교육비 부담(사교육비, 대학교 등록금, 대학생 자녀의 생활비 등)이 급격히 증가하니 부를 누릴 여유는 현저히 줄어든다. 부모님을 통해 봤던 가정의 경제적인 상황이 내 대에서는 많이 변한 셈이다.


, 이 절정이 곧 끝나갈 것이다.


무엇보다도 육체적 정신적 능력을 더 이상 유지하는데 힘겨울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소득적 측면에서는 현상유지를 한다고 해도 소비에서 급격히 늘어날 아이들의 학비 등이 큰 폭의 증가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사회적으로 보면 사업을 유지하는데 40대 말까지는 악영향이 없을 수 있지만 50대가 되면 갈수록 젊어지는 소비층과 세대차이가 생겨나면서 멀어져 갈 것이다. 내가 무슨 명예직을 가진 것도 아니고 경력으로 인정받는 직업도 아니니 말이다. (고객들은 나이차가 크게 나는 사람과의 거래보다는 그래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사람과의 거래를 편하게 여긴다.)


30대 중반부터 시류의 변화로 이런 인생 사이클에 대한 생각을 해왔는데 이 절정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자리 잡은 적이 없다. (포르쉐는 은퇴 후에 타는 차가 아니라 경제적으로 가장 능력이 좋을 때 타는 것이고 명품 옷도 옷걸이가 될 때 입어야 태가 난다. 늙어서 즐기고 싶다면 수십 년에 걸친 육체적 노력이 필요하다. 머리 벗겨지고 배 나온 늙은이가 스포츠카에서 힘들게 내린 들 멋질리 없고, 구부정하고 펑퍼진 할머니가 명품으로 치장한들 멋이 날리가 없다.)


만일 당신이 30대 중반 전이라면 이제 곧 절정이 올 테니 바짝 달리시길 바라며, 이제 40대 중반을 지나는 분들이라면 소프트랜딩하기 위한 전략이 세워져 있기를 바란다.

냉정히 말하면 지금 한창 30대 중반이라면 이미 지금이 인생의 최고 황금기일 수 있다는 뜻이다. 나아질 게 없는. 아직 내겐 주어진 시간이 많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긍정적인 게 아니라 착각이다. 오늘 어제보다 나아지지 않은 사람이 내일 오늘보다 나아질 확률은 극히 낮다. 게다가 세상은 내가 변하는 속도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경제성장기에 황금기를 보내고 은퇴하고 평안한 노후를 즐기는 상상 속의 노년생활은 대체로 1940-1960년대생들에게만 주어진 특권 같은 것이다. 유럽인들도 마찬가지, 60~80대들만 누리는 삶이다. 사실 가만 생각해보면 일제시대에 태어나 교육을 받았던 할아버지가 맞이했던 노후와 나의 아버지가 맞은 최근의 노후도 현저히 다르다. 내가 아버지와 비슷한 노후를 맞이할 가능성도 현저히 낮다는 이야기다. 우리 세대에겐 우리가 봐온 부모세대의 노후와는 다른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경제적 예상에도 불구하고 행복감과 만족도는 나 하기 나름이다. 유일하게 내 마음 먹은 대로 되는 것은 이것 하나 뿐이다.


무튼 지금 나는 가장 화려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몸은 아직 내 몸 같이 움직이고 이성과 육체의 괴리가 적으며, 30대 초중반 젊은이들과도 50대 장년층과도 갭이 없는 것처럼 살 수 있는 때다. 이런 이 시기를 불만족과 불평으로 보내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지금이 최전성기다. 행복해도 된다.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기를 더 즐겁게, 편하게 만끽하고 싶다. 그리고 바라는 게 있다면 나중에 절정에서 내려올 때, 그래도 이 시기의 행복과 풍족함에 대한 기억이 정신적인 기둥이 되어 흐트러질 모든 것들을 잘 잡아주는 힘이 되길 바란다. 다른 건 몰라도 행복하다는 생각만큼은 나의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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