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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렌 Jun 23. 2020

중정이 있는 집에 살고 싶다고?

건축규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드는 중정은 한때의 트렌드로 사라질 것.

우리나라의 단독주택이나 아파트 등의 주거 건물을 보면 외관만 봐도 대충 건축 시점이 80년대인지 90년대인지 혹은 2010년대인지 알 수 있다. 외부마감재도 유행을 타고 디자인도 유행을 탄다. 워낙 트렌드에 민감한 국민들이고 건축산업도 유행을 너무 따른다.


클래식한 느낌의 건물이 생기지 않는 이유는 모두 다 한 방향을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 규제도 한몫을 한다.


최근 신도시에 우후죽순 생겨나는 단독주택들을 보면 타운하우스가 아닌데도 외관에는 모던한 라인을 살리면서 높게, 작은 창문을 적게 낸 집들이 많다. 어째 담이 없는데 그 이상으로 무척 폐쇄적이다.


이런 환한 중정은 우리나라 필지 사이즈와 위도를 고려하면 정말 한때 잠깐 누릴 수 있을 뿐 대체로 높은 2층 이상의 집에 중정을 놓으면 어둡다.

그런 집들이 나름 유명하고 유능한 건축가들을 통해 설계를 하여 실제로 내부로 들어서면 멋진 곳도 많고 중정이 눈을 사로잡기도 한다.


그런데 그 중정은 매우 인위적인 설계에 따라 억지로 탄생한, 사실 어울리지 않는 비효율적이고 낭비가 심한 부자연스러운 주택이다.


우선 담의 규제로 인해 담을 설치하지 않으면서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한 차선책에서 출발한 아이디어라 태생적으로 담을 없애거나 낮게 지으라는 것에 대응하는 수동적인 대안이라는 게 문제다. 좋아서 중정을 만드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전통가옥이나 남부지방이 아니고서는.


다음으로 중정은 에너지 손실이 크다. 주택에 살아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아파트 대비 주택은 단열이 생명인데 중정을 두면 사방이 열린 것도 모자라 가운데로도 열 손실이 일어난다. 냉방도 난방도 더 효율이 떨어진다. 과거 헤이리가 처음 생겼을 때 헤이리 내 건물들 난방비가 한 달에 200만원이 넘게 나오는 게 기본이라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같은 이유로 에너지 효율의 극대화를 꾀하며 열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는 패시브 하우스는 대체로 중정을 놓지 않는다. 모순되는 설계이기 때문이다.


서울이나 중부지방에서는 이만하기도 쉽지 않다. 외국인데 대나무로 봐선 남쪽 나라일 것이다.
중정이 밝으려면 단층 건물에 이렇게 중정 자체가 커야 한다.

다른 이유들을 다 제쳐두고 위 두 가지 이유만으로도 서울이나 인근 수도권인 중부지방에 중정이 억지로 껴놓은 설계라는 것은 자명하다.


중정은 한옥이나 중국의 전통가옥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안채와 사랑채 등의 구분을 주면서도 사실 그런 집들은 기본적으로 대지면적이 넓어 중정이 갇힌 느낌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중국의 쓰허위엔처럼 좁게 다닥다닥 지어진 중정을 가진 전통가옥도 있지만 그 경우 모두 단층이라 그렇게 답답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최근 중정이 있는 집들이란 대개 다 2-3층이고 중정이 넓지 않아 정말 단순히 시각적 예쁨을 제외하면 기능성도 제로다.


2층으로 좁은 중정을 품게 지으면 한 여름에 해가 남중하는 때가 아니면 해가 제대로 들지 않는다. 그런데 그때는 또 너무 더워 중정에 나갈 일이 없다.

개인적으로 비효율적이어도 좋아하는 중정이다. 이 정도라면 겨울에도 추워도 충분히 운치가 있을 것이다. 단층 건물에 둘러싸인 넓은 중정이다.
이미지는 어둡지만 이것도 동남아가 아닐까 싶다. 구조로 봤을 때 기후가 더운 곳이다.

기형적으로 우후죽순 생겨나는 중정이 있는 집은 중부지방의 2층 집에는 어울리지 않는 건물이다. 대저택 규모를 감당할 수 있는 백억 대 이상의 자산가가 아니라면 그 냉난방비를 감수하기 어려움은 물론 보기 좋고 멋들어진 중정의 사이즈를 품을만한 땅을 소유하기도 버거울 것이다.


개인적으로 중정이 답답하지 않고 식재와 푸른 녹음과 함께 하려면 중정 면적이 적어도 30평, 100제곱미터는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둘러싼 건물은 최소한 한 방향만큼은 단층이어야 한다. 사방이 2층 이상인데 10평, 20평도 안 되는 중정이라면 그냥 액자 그림을 대신하는 3차원 장식일 뿐이다. 그런데 비싼 땅에 단층으로 집을 짓는 호사스러움을 감행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단층으로 여유롭게 짓기엔 택지값이 너무 비싸다.


불필요한 건축 규제가 없어지면 지금의 비정상적인 중정을 품은 집들은 인기가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중정이 있어도 담이 있어야 한다. 이미 우리 사회는 이웃사촌의 세상에서 멀어진 지 십수 년이 지났다. 담 허문다고 옆집이 사촌이 되는 시대는 아니란 얘기다. 시대착오적인 생각이고 자연스럽지 않은 물길을 억지로 내는 일이다.


담이 있고, 그 담 안에 앞뜰이 있고, 단층 건물들에 둘러싸인 중정이 있고, 뒤에도 최소한의 녹지와 이웃 건물과의 거리를 지켜주는 공간이 있어야 중정이 있는 집이 빛을 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지금의 한국에서 얼마나 실현 가능성이 있을까?


제주도나 일부 남부지방의 시골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의 경우 초고가 주택이 아닌 이상 중정이 멋진 집을 짓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무엇보다 비효율적인 일이다. 그걸 억지로 하게 만드는 규제는 사라져야 한다.





+ 끝으로, 아파트도 획일적이라며 인위적으로 또 다른 획일적인 모양으로 유도해놓고 주택도 그렇게 규제로 억지로 동일한 형태만 짓게 만드는 규제는 없어져야 한다. 대한민국 집이 남향이어야 하는 것은 획일적인 게 아니라 무엇보다 남향이 에너지 효율적이고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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