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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렌 Jun 25. 2020

놓아 키우는 돼지, 아니 고양이.

당신의 고양이는 충분한 영역을 누리고 있나요?

나는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는 중이다. 약 4년 전에 길에서 병약해 보이는 녀석을 만나 치료만 해주려다 식구가 되었다. 그래 그렇게 간택당해 집사가 되었다.


이미 성묘인 상태에서 데려와서 지금 몇 살인지도 잘 모르고 , 당시 이미 서로 스타일이 있는 터라 - 나는 개만 키워보았다 -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지만 중성화 수술도 잘 받고 함께 잘 지내는 중이다.


지금이나 그 때나 아무래도 우리 집이 주택이기 때문에, 갓 키우기 시작한 일종의 길고양이가 집을 나갈까 싶어 처음엔 마당에 내놓지 않았다. 대신 넓은 루프탑이 있는 옥상에만 종종 데리고 나갔는데 이 녀석은 처음 한 달은 조용하더니 이후로는 1미터 정도 떨어진 옆집 옥상을 타고 당시에는 주로 비어있곤 하던 옆집의 계단실로 모험을 떠나 다시 새벽이나 아침에 1층으로 돌아오곤 했다.

길고양이 습성이 남아있었던 것일까. 캣타워 따위 말고 나무를 탔다. 표범마냥.

지금 집으로 이사하기 전인 당시 집은 타운하우스 내의 주택이었는데 낮에는 집집마다 대문을 굳이 잠그거나 닫아놓지 않아 우리 고양이도 적응기를 보낸 후로동네 산책도 하고 때로는 아예 타운하우스 담 밖으로 나가 활보하고 돌아오곤 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이 차를 타고 외부로 나가면 대문 앞 길가에서 누워 자거나 햇빛을 쬐고 오후 늦게나 저녁에 돌아오면 같이 집 안에 들어왔다.

2년 정도 그 집에서 살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왔는데 이 집은 200평 대지에 지은 140평 정도의 2층 집이다. 그러니까 녀석이 새로 누리고 있는 영역은 대충 270평 정도이다.  집의 대지는 조금 더 넓지만, 타운하우스가 아니라 단독주택이며 낮이고 밤이고 대문은 닫아두는, 그런 평범한 담으로 둘러싸인 단독주택이다. 그러니까 녀석 입장에서 보면 녀석이 다니는 영역 자체의 크기는 꽤나 줄어들었을 것이다.

이사 와 1년이 지난 후부터는 때로 배를 드러내고 누워 비비기도 한다.


대문 밖에는 언제나 동네를 지키는 개들이 많아 약간은 걱정이 되어 공사 당시 고양이가 넘지 못하게 좀 높게 담을 치고 대문 아래 공간도 잘 막아두었다. 때로 길고양이들이 옆집 등에서 담을 타고 넘어 들어와 밤에 고양이 간의 혈투가 벌어지기도 했지만 우리 고양이가 나가는 일은 없었다.(사실 날씬했던 녀석이 지금은 꽤 무거워졌다.)


이사 2년이 되어가는 지금, 이  영역은 고스란히 녀석의 것이다. 약간 좁아졌긴 해도 경계를 조금 덜해도 되는 순수한 자기 영역이다. 사방에 흙과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고 중정은 제법 뛰어놀 법하다. 나가고 싶을 때는 문 앞에서 울면 나가고, 들어오고 싶을 때도 문 앞에서 울면 들어온다. 낮에 예닐곱 시간 햇빛을 쬐며 산책하고, 냄새도 여기저기 묻히고 정원 한 구석엔 볼일도 본다. 하루에 절반은 실내에서 배변용 모래에 볼일을 보고, 절반은 밖에서 진짜 흙에 볼일을 본다. 야외에서 도마뱀도 잡고 서너 달에 한 번은 새도 사냥해서 의기양양 나타난다. 새들에겐 미안하지만 새 사냥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사냥을 막거나 하지는 않는다. 한 번은 강풍에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 새를 먹기도 했는데 반나절도 안 지나 다 토해버렸다. 그 이후로는 먹지는 않는다.


정원에서 한참 자고 또 충분히 나들이를 했다 싶으면 이제 들어온다. 안팎을 드나들다 보니 마당에서 들어올 때는 발 체크를 하여 더러우면 발을 닦아준다. 좀 놀고 가족의 예쁨을 받고 나면 또 저녁 나들이를 한다. 앞마당 중정, 뒷마당, 건물과 건물 사이, 여기저기 통로와 창고 등등 다 순찰을 도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 그리고 밤에 잠이 들기 전에는 식사를 하고 같이 안방에서 각자의 공간에서 잔다.


가끔은 영역 좁은가 싶을 때도 있다. 그 전에는 저 멀리 나가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예전과 달리 확실히 구분된 이 영역은 온전히 녀석의 것이라 생활에 안정감이 느껴진다. 한 번 안고 대문 밖에 나서면 경계심이 한눈에 보인다. 녀석에 담 안과 밖은 완전히 다른 영역인 것이다.


집 안에는 많은 높이가 각각인 나무, 흙과 돌이 있고 은폐, 엄폐가 가능한 구석구석많아 전보다 작기는 해도 녀석에게는 충분히 행복한 공간인 것 같다. 단독주택의 정원일 뿐이지만 새도 몇 종류가 있고 도마뱀도 서너 종에 개구리, 두꺼비도 있으니 나름 심심치 않기도 할 것이다.


여담이지만 사람도 어느 정도는 타인과의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파트를 싫어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그중 하나는 내 위 3미터, 내 아래 3미터에 또 다른 누군가가 먹고 자고 있는 것이다. 고양이의 영역은 사람에겐 공간일 것이다. 사람도 공간이 필요하다. 공원, 운동장, 공공시설 그런 것 말고 자신만의 공간 말이다. 부부도 각자의 공간이 있어야 더 관계가 좋아지는 것처럼 하나의 개체로서 자기만의 공간이 확보돼야 한다고 본다. 단독주택이 아파트보다 월등히 나은 공간인 것도 이런 의미에서다.


다시 고양이 이야기로 돌아와, 요즘에도 간혹 서너 달에 한 번은 침입자, 침입묘가 있는데 그럴 때면 같이 뛰쳐나가 쫓아낸다. 그럴 때 녀석은 위풍당당하다. 가끔은 동네 개들을 경계하면서도 집 대문 앞을 서성인다.


아무리 사람에게 길들여졌다지만 고양이의 습성을 생각하면 이렇게 나무와 잔디와 흙이 있고 때로 사냥도 할 수 있는 집이야말로 최적의 영역인 것 같다.

 

지금 녀석은 테라스에 앉아 타자를 치는 내 옆 사이드 테이블에 앉아 그루밍을 하고 있다. 마당에서 들리는 대나무 소리와 새소리를 듣고 하늘에 떠 있는 연을 보며 꼬리를 휘휘 돌리며 콧구멍을 벌렁거린다.


당신 고양이는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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