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필렌 Jul 06. 2020

해외에서 치과 가기.

산부인과나 비뇨기과를 가는 일은 부디 없기를. (과연...)

치과. 한국에서도 가기 싫고 공포스러운 게 치과다. 아프고 치료비도 상대적으로 부담스러울 때가 많은데 여기에 과잉진료가 판을 치는 바닥이다. 게다가 치료가 잘못되면 영구적인 피해를 입는다.  살까지 살지도 모르는데 틀니나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면 악몽이 따로 없다.


한국에서 1년에 두 번씩 스케일링을 받으며 30대를 보낸 나는 그래도 그 덕분에 서른 이후로는 별다른 이슈 없이 지내왔다. 결혼 이후 치아 관리는 나름 잘 해왔고 외근을 많이 하는 와중에도 그래도 내 딴에는 신경을 써왔다.


하지만 나도 멀쩡하지만은 않다. 우선 사랑니는 아래쪽 두 개가 아직 나지 않아 언제 날지 모르고 -어머니께서 40대에 사랑니가 나서 발치하신 경우라 나도 어찌될지 알 수 없다, 시한폭탄 같다.- 위쪽은 사랑니 두 개를 발치했는데, 과거 외국에서 양끝의 어금니도 너무 기울어져 나서 두 개 다 발치했다. 그리고 크라운이 두 개 있고 일부 때운 것도 세 개 정도 있다.


크라운이 영구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10년을 간다고 해도 이제 때가 온 셈이다.


한 달 전쯤 어금니가 시렸다. 딱 크라운이 있는 그 자리다. 치과를 가기가 싫기도 하고 가끔은 하루 이틀 그럴 때도 있기도 하여 참았는데 조금 심하다 싶어 치과를 가기로 했다. 한국에 자주 가는 때라면 갈 때마다 스케일링을 하고 진료도 받곤 했던 터라 한국에서 하면 되지만 지금 시국은 그럴 수가 없다. 해서 치과를 알아봤다.


외국에 살기 시작하며 제일 애매하고 신경 쓰이는 것이 헤어, 피부, 치과 문제다. 아마도 해외에 처음 이주하거나 살기 시작한 분들이라면 모두 공감하실 것이다. 한국에서 먹던 쌀과 가장 가까운 맛의 현지 쌀을 찾아내는 것, 한국에서 김장할 때 쓰던 것과 같은 배추와 무를 찾는 수준의 극한의 난이도를 가진 미션들이다.


미용실의 경우, 나는 한국에서 10년 간 같은 디자이너에게 머리를 해왔다. 그녀를 찾기 전에 내 미션은 언제나 믿고 내맡길 디자이너 찾기였다. 두 번 애써 찾은 그녀들이 이직을 했지만 다행이 운 좋게 같은 미용실에서 후임이 더 잘해주었다. 머리는, 언제나 설명하는 것도 좀 애매하고, 설명을 아무리 잘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받아들이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참 신경이 쓰였다. '조금 짧게'가 어느 정도인지, 평소에 커트를 하면 어느 정도 하는지, 펌을 하면 어느 정도 굵기로 말아서 머리카락이 어느 정도 꼬불거리는 걸 좋아하는지 등을 설명하기란 참 힘든 일이다. 그게 싫어 이사를 해도 미용실을 바꾸지 않고 멀어도 다녔고, 외국에 나와서도 가급적 손대지 않고 한국 갈 때마다 미리 일주일 전에 예약해서 공항 도착 후 미용실로 직행해왔던 나다. 장거리 비행 후 공항에서 집에도, 호텔에도 안 들르고 미용실로 직행하는 기분 누가 알까!


그걸 알아서 해주는 디자이너에게는 가격을 두 배로 내더라도, 같은 분에게 계속 머리를 맡기고 싶은 마음이다. (제발!) 펌을 하는 때가 아마도 내가 뭇 여성들이 느끼는 외모 관리 시의 만족감을 느끼는 순간일 것이다. 아무튼, 인종마다 머릿결이 다른 것도 문제이고 현지인 디자이너와의 커뮤니케이션이 한국에서처럼 원활한 것은 아니라 자를 때마다 편치 않다.


피부도 마찬가지다. 인종마다 피부의 민감도는 다른데 이민을 와서 다른 기후와 생활 패턴 때문에 모든 가족이 피부 트러블을 한 번 씩은 경험하게 되고 그럴 때면 신경이 곤두선다. 자외선 수치가 1년 내내 높고 수영장과 해변을 자주 다니면 모발도 상태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금발의 백인들은 대체로 극단적인 체험들을 한다.


치과의 경우 임플란트나 교정은 도저히 여기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과거 타국에서 어금니를 발치했던 경험이 더 두렵게 한다.


한편, 나와 가족들은 이곳에서 다섯 곳의 치과를 다녀봤는데, 종합병원의 치과, 외국인들이 선호하고 많이 다닌다는 백화점 내에 있는 치과, 개인 치과, 그리고 현지인 부촌에 자리한 대형 치과 등이다. 이곳의 의료시스템은 종합병원을 제외한 대부분 병의원들은 방사선과 기기를 갖추지 않고 있고, 전문 방사선과가 별개로 있어서 CT나 MRI 등을 요구하면 병원 여러 곳을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데 대형치과 병원만이 파노라마 스캔 같은 흔히 한국 치과에서 볼 수 있는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치과나 안과는 장비가 절반이다 보니 이렇게 추리고 나면 선택지에 반은 사라진다.


치과행을 앞두고 그간 다녀본 종합병원의 치과는 결과나 과정 모두 너무 나빠 제외하니 그 부촌의 대형치과만 남아 거기로 예약을 하려 했는데 코로나 사태로 임시 휴업이라고. 이건 비상사태다.


어쩔 수 없이 뭐라도 잡는 심정으로 개인비서에게 시내의 좋은 치과를 알아보게 시켰는데 하나를 찾았다며 밝은 얼굴로 이야기하기에 장비 문의를 먼저 하고 확인 후 예약을 하게 했다. 평이 많지 않았던 부분은 개업 1년이라 하니 나름 이해할 수 있었다.


코로나 사태라 제한 조건들이 있어 약간은 까다롭게 예약과 진료가 진행되었고, 다행히 치과는 내가 강남에서 다니던 치과 이상의 시설들이 있었다. 병원 의료진 모두가 중환자실 수준으로 방호복, 두 겹의 마스크와 안면 가리개, 장갑을 끼고 입장할 때 환자를 전신 소독을 하는 것이 매우 신뢰가 갔다. 모두 1인실인 진료실은 매우 넓었고, 쾌적하고 깨끗했으며 한국에서 보던 수준이어 안심했다. 비록 치위생사와 치과의사 간의 의사소통이라든가 장비를 다루는 손은 조금 투박하고 느렸지만 차근차근 진료를 봤다. 딸아이도 자잘한 충치가 있어 먼저 치료하고 나도 파노라마 엑스레이와 3d ct를 촬영하고 여러 차례 시린 이를 체크하였다. 과도한 진료를, 치료방법을 제시하지 않는 태도는 신뢰가 갔다.


사실 이민자 입장에서 치과에서 평소 말하지 않는 단어들을 현지어로 설명하는 게 참 힘들다. '이가 시리다'부터 시작해서 어금니, 충치, 발치 같은 단어들, 거기에 내 사랑니나 어금니의 역사와 치과치료를 받았던 이력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곤혹스럽다. 치과의사가 쓰는 전문용어들을 이해하는 것도 힘들지만 뭔가 장비가 윙윙 시끄럽게 돌아가는 와중에 의사가 뭔가 물어보면 이해하고 입을 크게 벌린 상태에서 '어어-'거리며 아픈 정도를 표현하거나 대답해야 하는 것은 아, 참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이제 꽤 살았는지 다행히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저게 무슨 소리지'하며 맘 한편에 불안한 마음이 드는, 그런 일이 없었다는 얘기다. 휴.


두 번의 진료로 우선 시린 이는 예상과 달리 가로로 쪼개진 윗니의 영향인 것으로 잠정 결론이 나서 같은 치아색으로 때웠고, 이후 약 일주일의 관찰기간을 가져 아랫니가 시리지 않음을 확인하는 것으로 나의 이민 첫 치과 위기를 넘겼다.


과잉진료를 하지 않으려는 의사의 태도는 내내 만족스러웠고 한국에서도 못 보던 일부 개인위생, 편의 장구도 좋았다.


동남아는 많은 부분에서 미비한 게 많고 발전된 분야를 찾기가 쉽지 않지만 그래도 세계가 급속도로 글로벌화하고, 재화나 용역의 전파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동남아에서도 서울 수준의 무언가를 접할 수 있다는 점이 매우 다행스러웠고 걱정했던 진료비도 한국에서의 진료비에 비해 약간 낮았다는 점도(비보험 기준) 어쨌든 좋은 점이다.


치과의 문턱은 넘었지만 여전히 헤어는 커트만 반복하는 게 현실이다. 커트를 하고 오면 일주일은 매일 스스로 가위를 들고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삐쭉삐쭉 튀어나온 머리카락을 스스로 자른다. 세면대에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보면서 언제쯤 이 짓을 안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는데, 아마도 불가능한 희망이지 싶다. 가끔 스스로 남자 커트하는 방법에 대한 유튜브를 보면서 저것만은 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아들 머리를 직접 커트하는 것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해외 창업, 해외에서 무엇으로 소득을 올릴 것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