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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렌 Jul 08. 2020

직원들 급여를 올려주었다.

코로나 시대, 해고하지 않아도 됨에 감사하며.

먼저 제목에 어그로를 좀 끌어볼까 하다 말았음을 밝힌다. 큭.


우리나라가 1월부터 본격적으로 코로나의 영향 하에 들어가서 이제 겨우 약간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내가 사는 곳은 여전히 절정이다. 한국도 여행업과 항공업을 중심으로 많은 회사들이 휴업과 폐업을 하고 직원들에게 무급 휴가를 주거나 해고를 하기도 했듯이 여기도 마찬가지다. 공무원과 공기업을 제외하면 정상인 곳이 없고, 그들을 제외하고 보면 이 지역 인구의 절반이 실직 내지 무급휴가 상태이다.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들이 있어 고용률이나 실업률 통계를 어느 정도 받치고 있을 뿐 현실은 약간 암울하다.


우리 회사는 4월 말까지 잘 버티다가 말일 직전에 진행되던 일들이 다 뒤집히며 나쁜 소식들이 있었고 그렇게 최악의 2020년이 치는가 싶어 5월 부로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다가, 운 좋게(?) 한 달 만에 기존 계획들이 다시 약간 수정되는 선에서 마무리되어 다시 정상화된 상태이다.


먼저 한국 같았으면, 이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판데믹 사태는 국가든 법인이든 개인이든 전혀 예상치 못하고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법률 상 법인은 융통성을 발휘할 수 없다. 그냥 모든 책임을 떠 앉아야 한다. 고용이 경직되어 있을 뿐 아니라 개인주의가 심해져 법인 상황이나 법인의 대표, 대주주의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노동법에 근거한 조치만이 유효하다.


다행히 이곳은 그렇지가 않다. 내가 어떻게 운영해왔는지 아는 회사 직원들은 모든 프로젝트와 신규사업의 진행에 대해 알고 있고, 내가 그 사업들이 뒤집혔다는 것을 몇몇 증거에 근거하여 설명하고, 다만 이 조치가 한시적으로 끝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것만으로도 무급휴직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회의록 사인 만으로 무기한 무급 휴직에 동의했다. 5월에도 연속적으로 이어져야 하는 업무가 있는 일부 직원들에게는 근무일만 일할 계산하여 5월 급여를 주기로 하였었고, 기혼에 자녀가 있는 일부 직원들은 별도로 최소한의 급여-한화로 대충 약 20만 원-만 지급해주기로, 이것도 별도로 구두로만 전달했다. 직원들의 요구사항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이 받아들인 것은, 이미 그들의 가족들은 3월 이전에 모두 실직했거나 사업체를 접어버렸기 때문에 4월까지도 정상급여를 받으며 견딘 것 자체가 다행이었고, 이미 모두가 그런 상황이기 때문이다. 근무일수에 따른 급여가 20만 원에 미치지 못하면 무조건 20만 원을 지급해주겠다고 하는 것만으로도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들었고, 나 역시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에 며칠 잠을 설쳤다.


물론 그 와중에도 정신이 나간 직원도 존재하여, 통보나 양해도 구하지 않고 친구네 회사로 가서 일한다며 근무 지시를 거부하고 자진 퇴사하기도 했다. 이 직원은 자세히 적기 어려울 정도로 이상한 태도를 보였는데 작년과 올초에도 회사 일을 하며 근무시간에 별도로 자기가 회사 사장인 것처럼 별도의 마케팅과 영업을 하다 적발된 전례도 있어 다행이라 느껴질 정도였다. 자기도 어느 정도 선을 넘었다고 여겼는지 퇴직금도 묻지 않았고 아무 연락도 없다. 퇴직금, 안 주면 난리가 나는 돈인데 염치가 없어 달라고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한 직원들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작은 일이라도 있으면 근무를 하게 했고 약속대로 가정이 있는 직원들에게는 약속한 급여를 주었다. 그러다 3주가 지났고 다시 사업들이 진행되게 되어 모두 6월에 업무 복귀를 했다.


오찬을 함께 하며 좋은 소식에 기쁜 얼굴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 재계약을 하는 시점이 겹친 직원들이 있어 대상자는 모두 급여를 올려주었다.(이곳은 위에서 이미 느꼈겠지만 한국과는 상황이 매우 다르며, 연봉협상이라는 게 의미가 없는, 한국으로 치면 2천 년 이전이나 마찬가지로 주는 대로 받는 분위기에 더해 코로나 사태로 있는 급여도 깎이는 판국이다.) 관리자나 인사담당자를 통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직접 얼굴을 보고 시간을 할애하여 이야기를 했다. 급여 인상을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올려준다는 말에 대부분은 그저 감사함만을 표했고, 한 명만이 집안 사정이 너무 어려웠는지 조금 더 요청하여 아주 소액이지만 조금 더 반영해주었다. 인상액은 이곳의 시간당 법정 최저임금 기준으로 일급으로 계산 시 3~4일 치에 해당하여 여기 현지인 급여 기준으로는 적지 않다. 퍼센티지로 보면 평균 5%+@정도 인상해주었는데 사실 한국 급여나 물가 기준으로, 원화로 환산하면 돈 같지도 않은 액수다.(한국인들이 읽는 이곳에 적으면 현지 사정을 모르는 분들은 욕이나 하겠다 싶어 액수는 적지 않는다.) 


적은 것처럼 이미 사기업 종사자들의 절반은 직장을 잃은 상태이고, 그 어디도 평소 같은 곳이 없다. 소매업을 하는 곳들은 어디랄 것 없이 세일 중이고 상가나 사무실도 빈 곳이 여전히 많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이걸 핑계로 급여를 삭감하거나 동결하고 싶지는 않았다. 한국과 달리 3대에 걸친 형제자매 식구들까지 온 가족이 벌어 같이 가계를 꾸려가는 관습이 아직 남아 있는 이곳에서 가족 절반 이상이 실업 상태로 몇 달을 버티는 건 이곳 사람들에겐 정말 힘든 일이다.


내가 솔직하게 상황 설명을 하고 양해를 구할 때 상식적으로 이해하고 받아주는 직원들이라면 그들의 형편도 내가 양해하고 이해해주는 것이 좋다. 상식은 법도 아니라 명시된 것도 없고 주관적이지만 분명 공유될 수 있다 믿는다.


한국도 법정에 가면 이미 모두가 패배자지만-이기는 건 오직 법조계 종사자들 뿐이다-, 여기서도 법적으로 따지면 어느 쪽도 맘 편히 진행되지 않는다. 법인은 더 많은 지식과 연줄로 근로자를 찍어 누를 수 있고, 직원도 법인을 여러모로 괴롭힐 수 있다. 공무원들이 돈독이 오른 곳이니만큼 법적 처벌은 안 받아도 돈은 뜯기게 되어 있다. 그래서 법적으로 따지면 승패도 없는데 결과는 모두가 패배자다.


악덕 사업주는 코로나 사태를 빌미로 맘에 안 들던 직원은 해고하고, 무급 휴가를 길게 가져가면서 소수의 인원만 정상적으로 돌리며 이 시기에 직장이 있고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무기로 쥐어짤 수도 있다. 정상화되어도 여전한 판데믹 사태와 경기불황을 이유로 급여를 일부 삭감하는 것에 동의하라 해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 모두 결국 내게, 법인에게 돌아올 것이다. 악은 악으로 돌아온다. 결국 누구도 웃지 못한다. 법인은 영속적인 존재여야 하는데 나쁜 평판은 좁은 사회에서는 금방 화살이 되어 돌아오게 마련이다.


고용주로서 개도국이나 후진국에서 직원들이 일하는 것에 만족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한국에서처럼 직원들이 회사 사정은 내 알바 없으니 법대로 하자고 하는 직원도 없다. 회사가 어려우면 직원도 이해하고 직원이 어려우면 회사도 이해하고 서로 돕는 것이 아직은 문화로서 존재하며 법과는 별도의 룰로서 존재한다. 동고동락, 역지사지, 상부상조 따위의 한국에서는 그저 추상적인 고리타분한 사자성어들이 칼 같은 고용인과 피고용인, 회사와 직원 간에도 존재하고 작용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 걸 믿고 보고 싶은 걸 보려 한다. 사실관계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도 믿기 싫으면 뭐든 수긍하지 않고 비난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믿고자 하면 또 다 이해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이게 이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너무 발전했고 너무 개인적인 가치들이 우선시 되고 있다. 나쁘고 좋고는 아니다. 이건 그냥 내 개인적인 취향에 이 사회가 맞느냐 아니냐의 문제일 뿐이다. 한국의 어떤 부분은 내 취향에 맞고 어떤 부분은 아닌데 이런 부분에서는 한국보다는 여기가 맞는다. 사업주가 다 이기적이고 개인 이익만 추구하고 직원을 일개미로 여기고 소모품으로 취급하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사회 분위기라는 게, 추세라는 게 있으니까.


난 유능한 리더나 유명한 대표자/사업가도 아니고, 그런 가치를 특별히 추구하지도 않는다. 긍정으로 가득한 사람도 아니고 종교적 믿음에 기대어 속세의 걱정이 없는 사람도 아니다. 나는 그저 내일이 오늘보다 조금이라도 편안하고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여기는 사람이다. 오늘 건강하고 내일은 더 건강하기 위해 노력한다.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 것이 돈 조금 더 버는 것보다 좋다. 돈도 인기처럼, 젊음처럼 연기 같은 거라 생각한다. 내가 이렇다 보니 사업체가 무한정 커지거나 수익성이 상한가를 치고 매출액이 두 자릿수로 늘어가지도 못한다. 당연히 직원들도 그런 걸 누릴 수는 없다. 그래도 괜찮다고-아내는 미쳤냐고 뭔소리 하냐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생각한다.


직원들에게 급여를 올려주기로 마음먹고 개별적으로 면담을 하며 이야기했을 때나, 무급휴가 등의 안 좋은 소식을 전할 때나, 이 상황에서는 모두를 위해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니 받아들이고 기도하자고, 긍정적으로 만들어보자고, 이 상황에 감사하자고 이야기하는 것이 수치보다 우선시될 수 있는 것이 좋다. 너는 너의 일을 하고 나는 나의 일을 해서 우리 일이 나아지게 만들자는 말이 수치보다 앞서는 게 개소리로 취급되지 않는 것이 좋다.


이 사회에서 그런 것이 사라질 때쯤엔 여기서도 사업은 그만하고 싶을 것 같다. 그리고 그때 아쉽지 않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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