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아이 이야기에 나는 관심이 없다.
네 안부를 아이를 통해 전하려고 하지 말아 줄래
흘러넘치는 아이 사진과 아기 포스팅들.
난 관심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아이들이 이미 폭풍의 틴에이저가 되었기 때문이다. 육아라는 건 힘든 일이다. 아무리 즐겨도 힘들다. 사랑하는 내 아이니까 귀엽고 예쁘고 한 것이다. 이제 겨우 졸업한 육아 이야기에 내가 흥미를 느낄 리가 없다.
내가 일찍 결혼하여 일찍 아이를 낳아 키울 때 싱글이던 친구나 지인들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이유, 별 거 없다. 예쁘다는 느낌이, 혹은 육아와 아이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으니까. 남의 이야기니까.
내가 다 키웠다 싶으니 동생들이나 뒤늦게 결혼해서 늦게 아이를 낳은 친구들이 아이를 키우며 예쁘다고 여기저기 올리는데 내가 시큰둥한 것은 이미 난 다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겐 그런 모습이 새롭지도 않다.
난 일찍 기혼자가 되고 부모가 되어서 싱글인 친구나 동생, 지인들에게 아이나 육아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았다. 한창 즐기기 바쁜 그네들 관심사가 아니니까. 평일에는 퇴근 시간 전부터 애가 보고 싶어 땡 치면 바로 칼퇴근했고 주말에는 손주들 보고 싶어 목이 빠진 분들이 있는 본가와 처가 오가기 바빴다. 그런 시간에 그들은 데이트에, 모임에, 또 술자리에 즐길 일이 가득, 나와는 라이프 사이클이 맞지가 않았다. 안부전화나 문자를 해도 내가 이번 술자리에 나오느냐 못 나오느냐가 이슈일 뿐이고 내가 나간 들 내 아이가 궁금할 리는 없고 실제로도 일부 여자애들 제외하면 별로 묻는 것도 없었다. 그저 아내와 친했던 애들이 아내 소식을, 아이 사진을 잠깐 궁금해할 뿐.
그렇게 오 년, 십 년이 지나며 나는 힘든 시절 다 지내고 아이들 스스로 앞가림하는 나이가 되니 주변에는 아기들이 많아졌다. 그들은 자기 이야기는 안 하고 애 소식만 주야장천 소셜미디어에 전한다. 그런데 난 너희들이 그랬듯 너희 소식이 궁금하지 네 아이 소식이 궁금하지 않다.
이제는 살찌고 생기 넘치던 모습은 다 사라지고 중년의 부장님이나 아줌마가 되어버린 모습을 스스로 올리기 싫어서인지 자기 모습이 조금이라도 나올라치면 블러를 먹이는지 뿌옇거나 잘 안 보인다. 어딜 봐도 아이들 사진, 뭘 읽어도 애들 자랑. 사진이라도 좀 잘 찍든가.
이제 애들은 사춘기에 접어들었고 이민까지 온 나는 딱히 너희 애들이 궁금하지가 않다. 난 너희 소식이 궁금하고 너희 얼굴이 보고 싶다. 너희 애들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