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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렌 Jul 28. 2020

호사에 관하여

인생에 누릴 수 있는 모든 호사를 누리며

수십 억의 집, 억이 훌쩍 넘는 차, 어지간한 차보다 비싼 바이크, 그리고 몸에 걸치는 수 백 내지 수 천만 원의 옷과 장신구들, 이런 것들이 사치이고 호사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물론 위에 적은 것들은 어느 정도, 내 분수에 조금 넘치지만 그런 속세의 호사와 사치는 누려보았다. 어디까지나 내 주제에 찰랑찰랑 넘치는 정도까지지만.


타인의 시간을 사서 개인적인 일들을 처리하는 일도 하나의 큰 호사이다. 노예나 하인 같은 제도는 없어졌지만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에는 누구나 인정하는 조금은 다른 성격의 그것이 존재한다. 좋든 싫든 말이다. 시간의 제약과 일의 제한이 붙는 것은 당연하지만 여전히 같은 것은 내가 그들의 시간을, 그들의 삶의 일정 부분, 통상 무려 하루의 1/3을 돈으로 산다는 것이다.


진정 사치스러운 일이다. 한국에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꽤 괜찮게 살았던 축이지만 집에서 일하시는 분이 있었던 적은 없다. 해외에서 살 때를 제외하면. 때문에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 집에서 도우미 아주머니가 일할 때는 아주 불편했다. 거실에 있기도 불편했고 거실과 안방을 오가는 것도 불편했다. 세탁을 맡기는 것도 그냥 외면하는 편이 좋았다. 내 가족이 아닌 사람이 집에 있는 게 편치 않았다.


편하지 않음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예전보다 낫지만 외국인이라 그들이 가족 간에 나누는 우리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에서 조금의 편안함을 느끼는 정도이다. 서로의 문화가 다름에 안도하는 수준의 편안함이다. 이젠 이게 사치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호사를, 사치를 누리는 데는 나름의 대가가 필요하다. 돈 말고도 말이다. 내가 편하게 누려야 일하는 사람들도 편안하게 느낀다는 것도 이해하고 있다. 그들이 편하게 일하게 내가 편해지려 노력한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한 사치는 땅, 기후, 요컨대 자연이다.


1년 365일 먼지 하나 없는 공기, 푸른 하늘과 구름 외에는 없는 청명하기 그지없는 하늘, 깨끗한 비와 환한 달빛과 쏟아지는 별들. 어렸을 때 물을 돈 주고 사서 마시고, 공기를 사서 들이키는 시대가 온다는 얘기에 웃었던 것은 이제 현실이 되었고 이제는 돈을 주고도 못 는 게 저런 것들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니 사치도,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


봄여름가을겨울은 너무나 아름답지만 가혹한 구석이 있고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가벼움은, 소위 미니멀리즘의 삶에는 맞지 않다.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아니지만 옷을 사시사철에 맞춰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나 겨울에 옷의 무거움을 느껴야 하는 것, 집의 냉난방 문제나 구조에 있어서 한계가 있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사진가에게 있어서 봄여름가을겨울은 치명적인 매력이 있으나 사진가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그런대로 놓아줄만하다. 비록 열대, 아열대의 일정한 기온이 연중 계속되는 곳이라도 그 안에 고산지대가 있고 바다와 숲과 산이 뒤섞여있다면 계절이 미치도록 그립지는 않다. 백두산보다 높은 산에 오르면 제 아무리 뜨거운 적도의 나라라 하더라도 두터운 외투가 필요하고, 바이크를 타고 달리는 데는 서너 겹의 옷을 겹쳐 입어야 한다. 눈은 볼 수 없지만.


윈난의 쿤밍에서 1년 내내 꽃이 피는 것이 부러웠다. 지금 나는 그런 곳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쿤밍에 가득한 스모그가 없다. 기온은 더 일정하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밤낮없이 맑고 깨끗한 하늘은 비가 내려도 반갑다. 비가 내리고 나면 갑자기 잔디 정원에 가득 잡초가 올라온다. 신기한 일이다, 때로 직접 아이들을 동원하여 같이 뽑지만 어디까지나 소일거리이고, 타인의 시간을 산 나는 자유롭게 내가 할 일을 정할 수 있다. 노동이 노동이 아닐 수 있는 사치다.


층간소음, 측간소음(?), 이웃집 개소리와 담배냄새 따위에 예민하게 굴지 않아도 된다. 넓은 대지에 충분히 떨어진 집간 거리는 밤에 동네 개들이 미친 듯이 짖어도 밤손님(!)인가 아니면 골목에 뱀이 나왔나 하고 생각해보는 정도로 괜찮다. 때로 일어나서 나가본다고 해도 밤에 수면시간을 방해받아 아침에 찌뿌둥하게 일어나 짜증을 내지 않아도 된다. 비싸기만 하고 다닥다닥 붙어사는 성냥갑 아파트에서와 달리 느긋하게 무뎌졌다. 집 주차장엔 우리 집 차들과 바이크들 뿐이다. 녀석들을 건드리는 타인은 없고 오직 우리 집 고양이들만이 가끔 오르내릴 뿐이다. 나라는 동물은 나의 영역이 완전하게 지켜지고 있고 타 개체가 내 영역에 들어오지 않음에 안심하고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고양이들처럼 안에서 잘 때는 건드려도 자는 나인 것이다.

 

사진가로서 다양한 판형의 좋은 카메라와 개인 작업실을 썼고, 라이더로서 달릴 수 없는 속도를 내는 바이크들을 탔으며, 사업가로서 포르셰와 좋은 차들을 탔고 이제는 그런 것들에서 자유로워져 돈 주고 사지 못하는 것들을 누리고 살고 있다.


몇 살에 어떻게 이 삶이 마무리될지는 모르지만 이만하면 멋지게 살았고 또 살고 있으니 그때 씨익~하고 웃으며 갈 수 있으면 좋겠다. 하긴 아직 갈 날은 멀었으니 후에, 그 날이 오기 전에 어떤 고난이 닥쳐도 이걸로 양분 삼아 이겨냈으면 좋겠다. 호사 좀 누렸으니 이제 고생 좀 해도 되지, 사서도 한다는데 하면서 말이다.






남들 다 일하는 평일 낮에 덧붙인 사진 같은 풍경을 보면서 커피나 홀짝이며 이런 글을 끄적일 수 있는 게 호사지, 별 거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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