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그리고 레일바이크 (1)

그 곳에 레일바이크가 있을 뿐이었다.

by Writing Ko

사실 곡성(谷城)은 사람들에게 관광지로 그리 익숙한 지역은 아니다. 근처에 여수와 순천이 있어서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나 내일로 여행을 떠난 젊은 사람들이 가끔 당일치기로 들렀다 가는 지역이다. 곡성은 관광지로 유명해졌다기 보다는 과거 '곡성(哭聲)'이라는 영화가 개봉되면서 그제서야 '곡성이 뭐야' 하다보니 영화의 촬영지였던 곡성군이 주목을 받게 된 특이한 지역이다. 나조차도 곡성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저 영화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하도 인터넷 상에서 오질라게 스포일러를 퍼부어서 못 본 영화다. 젠장

부산이나 광주처럼 대도시도 아닌 생소하기만한 곡성까지 갈 생각도, 마땅한 이유도 딱히 없었다. 하지만 여수에서 3박4일이나 머무르기에는 너무 많은 걸 구경하고 왔는지라 순천이나 가볼까했었지만, 당일치기로 순천을 갔다오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어 포기하던 참에 여수에서 기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곡성에 '섬진강기차마을' 있다는 것을 알고서는 하루정도는 느긋하게 기차마을에서 구경도 하고 한가롭게 레일바이크나 타고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는 몰랐지. 레일바이크를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내가 아는 레일바이크라 해봐야 놀이공원에서 어렸을 때 가끔 탔던 레일바이크가 전부다. 어지간한 놀이기구는 다 타보고나서 '힘들어죽겠는데 저거나 타 볼까?'해서 쉴려고 레일바이크를 타곤 했다. 섬진강기차마을의 레일바이크도 비슷하겠거니 하는 굉장히 안일한 마음으로 탈 생각이었다. 그저 중학교 때 교과서에서 읽었던 '섬진강 아이들'의 배경이 된 섬진강을 옆에 두고 느긋하게 해질녘 바람을 맞으며 레일바이크를 타는 낭만적인 그림만을 상상하며 여유롭게 레일바이크가 출발하는 침곡역 가는 셔틀버스에 올라탔다.


레일바이크는 섬진강기차마을 안에 있지 않고 셔틀버스를 타고 침곡역까지 가서 타야한다. 역이라고 해서 무궁화호가 지나가는 그런 역은 아니고 일종의 간이역 개념이다.

쭈뼛쭈뼛 매표소 앞에서 서서 '저기요?'하고 직원분을 불러보았다. 아무도 안나오신다. 안에서 TV소리는 들리는데 사람이 안보인다. '저기요?' 목소리를 조금 높이자 그제서야 직원 한 분이 나오셨다. 이 시간에 웬 손님이지 하는 의아한 표정으로 '한 분이세요?'하고 물어보시더라. 하긴 그도 그럴것이 웬 성인 남성 한 명이 나홀로 한 여름 땡볕에 레일바이크 타겠다고 오면 황당하겠지. "혼자 타셔도 두 명분 요금 내셔야 해요. 혼자 탈 수 있는 레일바이크가 아니라서.." 역시 혼자 여행다니기 빡세다. 커플끼리 짝지어서 여행다니는 것을 강요하는, 참으로 불공정한 세상이다. 예예 하면서 카드를 내밀었지만, 왜인지 조금 슬퍼졌다.

찢겨져나간 티켓처럼 내 마음도 찢어졌다.


레일바이크가 주욱 서 있는 곳에서 한참 어슬렁거리다보니 레일바이크들이 서로 연결되어있다. 내가 저것들도 다 끌고 타야하나? 싶었지만 친절하게도 직원분이 내가 탈 2인승 레일바이크만 똑 떼주셨다. 출발하기 전 이런저런 탑승할 때 주의사항을 듣고있는데 그 직원분 하시는 말.

"20분 후에 기차마을에서 증기기관차가 출발할 거에요. 간격 유지하면서 달려야하니까 조심하셔야 할 거에요."
예?

"힘들거나 사진 찍을 때 도중에 멈추시면 안 돼요."
예?

평화롭게 레일바이크나 타면서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었던 내 뒤로는 증기기관차가 쒸익쒸익 달려오고, 나는 치여 죽지 않으려고 미친듯이 페달을 밟아야 하는 죽음의 레이싱에 영문도 모르고 끼어들었다. 이 곳 출발지점부터 목적지까지는 5km. 역대급 폭염이라는 이 날씨에 땡볕 아래에서 5km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걸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레일바이크의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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