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것.
2km 지점을 지나면서 아직도 반이나 남았다는 사실에 통곡하고, 황천길 가는 페달을 허벅지가 터져나가게 밟아대며 내가 대체 이걸 왜 타겠다고 곡성까지 왔는지 스스로 원망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머릿속으로는 열심히 앞으로 남은 거리와 뒤에서 쫓아올 증기기관차의 출발시각을 계산하며 어떻게 하면 안 죽을 수 있을까만 생각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8월 한 여름에 해도 오질라게 길어서 6시가 다 되가는데도 햇빛은 여전히 따갑고 비루한 몸뚱이는 이미 땀으로 절어있었다. 물이라도 한 병 있었으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그런 철저한 준비성은 진작에 내다버린지 오래였다.
그렇게 한참을 상체의 땡볕더위와 하체의 근육통과 싸우며 고통받을 때쯤, 저 멀리 레일바이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철로 위에 늘어서있다. 다 왔구나! 다 왔어! 용케 안 죽고 살았다! 1초라도 빨리 저 승강장에 내 레일바이크를 던져놓고 어디든 좋으니 드러누워 버리겠다는 일념으로 미친듯이 페달을 밟아댔다. 마지막 힘 한 방울까지 다 쥐어짜내고서야 직원 분이 "수고하셨어요~" 라고 말해주신다. 대꾸할 힘도 없어 겨우겨우 입술을 떼 예예 하고서 뱃살을 짓누르던 안전벨트를 떼 내고서야 비로소 지옥으로 갈 뻔했던 레일바이크에서 내릴 수 있었다.
어지럽다. 아니 그 전에 목구멍에 뭐라도 시원한 액체를 한 움큼 때려박아야 할 것 같았다. 승강장 저 위에 카페 비슷한 게 어른거렸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이끌고 계단을 엉금엉금 기어올라 계산대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레..레모네이드 한 잔이요"라고 겨우 말하고서는 테이블에 털푸덕 엎드렸다. 가만히 눈을 감고 엎드려 있는데도 눈 앞이 어질어질하다. 속도 뒤집히고 당장이라도 토할 것만 같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레모네이드를 목에 조금씩 쏟아붓고 조금 숨을 돌리고서야 왜 이리 멍청한 짓을 굳이 했을까 싶더라. 아무래도 좋았다.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힘들었지만, 이제 나에게 곡성은 더 이상 영화 제목이 아니라 레일바이크로 기억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레모네이드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털어 마시고서는 약 20분간의 지옥의 레이싱도 되새김질 할 겸 여유롭게 승강장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기차마을로 다시 돌아가는 증기기관차가 10분이면 도착한다고 직원 분이 넌지시 말해주셨다. 예, 그 젠장맞을 증기기관차 때문에 그 고생한 거 아니겠어요, 선생님. 속으로 투덜투덜하며 매표소에서 4000원에 기차마을로 가는 증기기관차 티켓을 끊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서 철도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옛날 기차가 느릿느릿 들어왔다. 정말이지 어금니가 부득부득 갈려나갔지만, 정말 오랜만에 예전 비둘기호의 그 감성을 조금이나마 추억하며 앉을 수 있는 고전적이고 옛날 냄새나는 기차의 비주얼에 잠시 분노를 접어두었다.
열차에 올라타서 창문에 머리를 구겨넣고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았다. 이제서야 뉘엿뉘엿 해가 산 너머로 사라지는 것이 이제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실감났다. 오늘 숙소에서 일어나서 한 것이라고는 오후 늦게 이 곳 섬진강기차마을에 온 게 전부이지만, 남들이 쉽게 가져가지 못하는 추억들을 한 보따리 싸간 것 같아 괜시리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동시에 잠시 잊고 있었던 현실로 복귀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젠장.
서울 가는 무궁화호에 다시 올라 탈 내일이면 출근을 준비하며, 그리고 새벽에 이불을 덮으며 또 다시 반복될 무료한 일상들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만 한다. 그렇게 새로울 것 없는 영원한 인생의 굴레에 갇힐지라도, 오늘의 추억을 무한히 되새김질하며 허리를 곧게 피리라. 그렇게 또 한 달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금 허파에 찌든 때를 벗겨내고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며 다시 청명한 숨을 내쉬리라. 보랏빛으로 물든 하늘에서 억수로 쏟아지는 장대비를 바라보며 나지막히 되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