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그리고 해운대.
사실 부산에 많은 인연이 있지는 않다. 부모님의 고향인 광주에서 나고 자라 7살 때 안산에 올라와서 20여 년 가까이 살았으니 말아다. 가끔씩 스포츠 뉴스에서 롯데 자이언츠가 언급될 때마다, 관중들의 '부산 갈매기'를 부르던 모습이나 예전에 광안리에서 진행되었던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결승전 정도가 부산에 대한 유이한 기억이었다. 아, 십 여년 전에 엄마랑 영화관에서 재난영화 '해운대'를 봤던 기억도 있다. 물론 쓰나미에 해운대가 개박살이 난 것 밖에 기억이 안나지만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20살이 되던 해에 에버랜드에서 제설작업과 청소로 벌었던 120만원을 들고 멋모르고 혼자 떠났던 전국 일주에서 처음으로 부산을 방문했다. 고향인 광주를 제외하면 제주도도 못 가봤던 나로서는 부산은 정말 미지의 지역일 뿐이었다. 하지만 전국 일주라는 패기 넘치는 슬로건 하나 만으로 대책없이 무궁화호를 타고서 부산에 덜렁 혼자 떨어졌다. 오긴 왔는데 어딜 가야 할 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부산역 앞 광장에서 맞은편 롯데리아를 보며 멍하니 서 있다 무턱대고 해운대를 찾아갔다. 부산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영화 속 '해운대'밖에 없었으니까.
처음 보는 부산의 지하철노선도를 더듬더듬 읽어가며 2호선 해운대역에서 내렸다. 막연하게 출구에 붙어있는 '해운대 해수욕장 방면'이라고 붙어있는 이정표만 보고 밖으로 나왔지만, 바다는 커녕 잘 닦인 도로와 길가에 널브러져 있는 상가 건물 밖에 보이지 않았다. 출구 근처에 세워진 관광지도를 길잡이 삼아 해운대 해수욕장을 정신없이 찾아 헤멨다. 이럴거면 역 이름을 왜 해운대라 한 걸까.
한참을 어리버리 길치 마냥 헤메다 해운대 앞 삼거리에 멈춰섰다. 그리고 횡단보도 건너 어렴풋이 'Haeundae Beach'라고 쓰여진 조형물 너머로 지난 20여 년 동안 바다라고는 대부도 앞바다의 질퍽질퍽한 갯벌만 봐 왔던 나에게 해운대의 백색 모래사장과 강렬한 햇빛을 받아 푸르게 피어오르는 부산 앞바다가 하염없이 펼쳐져 있었다. 말로 형언할 필요도 없이 그저 아름다웠다. TV에서 매 해 여름마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해수욕장, 파라솔 밑에서 돗자리를 깔고 드러눕던 아저씨들, 바다 위에서 튜브를 타고 놀던 어린 아이들이 머리 속에서 스쳐지나갔다. 비록 한겨울이었는지라 그런 모습은 찾기 힘들었지만, 왠지 모르게 정말 바다에 놀러 왔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한참동안 해운대의 모래사장을 근처 커피숍에서 사 온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면서 걸어다녔다. 부산의 이 곳 저 곳을 구경하러 가야겠다는 거창한 계획은 잠시 넣어두었다. 그저 이 곳 해운대를 온전히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생애 첫 부산을 품기에는 벅찼다. 정처없이 해운대 옆 동백섬의 APEC 회의장까지 걸어올라 난간에 기대 원없이 부산 앞바다를 머리 속에 가득 우겨 넣으며 언젠가 꼭 다시 돌아오겠다고 다짐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혼자서 여행을 처음 떠난 20살의 설렘과 행복함으로 가득한, 다소 미화된 기억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시간이 지나 마모되고 닳아 없어졌을 그 날의 해운대의 이미지는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침전되어 몇 번이고 갔던 부산이지만 다시 그 곳을 가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다.
그 이후로 시간이 날 때면 부산을 들렀다. 부산에 가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다만 어디론가 훌러덩 떠나 지친 심신을 달래고 싶을 때면 조건반사적으로 부산 가는 무궁화호 티켓을 끊었다. 혹은 부산을 가야 할 나름의 핑곗거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밑도끝도 없이 부산 사직구장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홈경기를 보러 간다든지, 광안리에서 개최되었던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출시 행사'를 보러 새벽 기차를 타고 내려간다든지, 내일로 여행 때문에 부산을 간다든지 이런저런 그럴듯한 이유로 부산을 내려가곤 했다. 고향도 1년에 한 번 갈까말까 하는데 아무 연고도 없는 부산을 걸핏하면 내려가는 걸 보면 참 부산에 뭐가 있긴 있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