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는 예술이었고 문화였으며 우리의 학창시절이었다.
스타크래프트. 다들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게임이다. 게임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조차도 그 이름은 들어봤거나, 한 두 번은 플레이 해 봤을법한, 너무나도 유명한 게임이다. 뜻도 모르면서 서툴게 키보드를 두들겨 'show me the money'를 치면서 컴퓨터 인공지능과 씨름하던 초등학생들이 어느덧 10여 년이 지나 대학교를 들어가고, 직장을 다니는 어엿한 어른이 되어 친구들끼리 술 한 잔 하고 동네 피씨방에서 가볍게 유즈맵을 플레이하고 있는 모습은 정말 흔하게 볼 수 있다.
나 역시 스타크래프트, 소위 말하는 '스타'에 미쳐있었다. 직접 플레이하는 건 영 손에 맞지 않았지만, 온게임넷과 지금은 사라진 MBC게임의 팀 단위 프로리그나 개인리그에서 프로게이머들이 보여주는 화려한 경기들을 넋 놓고 보곤 했다. 나 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사람들이 스타를 좋아했고, 프로리그 결승이나 개인리그 결승이 있을 때면 자리를 가득 메워 그 열정을 불태우곤 했다. 2004년 광안리에서 열린 프로리그 결승전에서의 누적 관중 10만명을 시작으로 대부분의 프로리그 결승전이 광안리에서 열리면서, 광안리는 어느새 스타크래프트의 심장부 혹은 수도와 같은 상징적인 지역이 되었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있는 브루드워의 공식 리그가 2012년을 기점으로 없어지면서 광안리에서 모두가 목놓아 응원하는 팀을 외치던 프로리그 결승전의 그 모습도 모두 추억이 되었다. 한동안 추억 속에서 잠들어 있던 스타크래프트는 2017년, 소문만 무성하던 리마스터의 출시가 확정되었고 스타크래프트에 애정을 갖던 모든 사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출시의 발표 이 후, 블리자드는 리마스터의 출시 행사를 많은 유저들의 사랑을 받았던 한국에서 개최하기로 했다. 바로 그 곳, 광안리에서 말이다.
광안리에서의 리마스터 출시 행사날이 다가오자, 대다수 스타 팬들은 광안리로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 역시 늘 그랬듯이 21시 45분 서울발 부산행 무궁화호를 타고 부산에 도착해 첫 지하철을 타고 광안리까지 달려갔다. 평소 같았으면 찜질방에서 대충 뒹굴거리다 느지막히 움직였을테지만, '선착순 입장' 이라는 말에 앞 좌석을 사수하기 위해 부리나케 움직였다. 나름 부지런히 왔다고 생각했지만, 스타 골수팬들의 행동력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아침 7시가 채 되기도 전에 광안리 해수욕장 한복판에 20명 넘는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티켓 배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 9시, 오후 12시... 해가 점점 중천에 떠오르고 맡아놓은 자리때문에 밥도 못먹고 있으면서 땡볕 아래 백사장에 방치되는 고통스러운 상황이 5시간 넘게 지속되자 곳곳에서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티켓 좀 줘요!' '융통성이 없어 사람들이!' '아오 시X!' 등등.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는 사람과 그런 사람들을 통제하지 못하는 주최 측의 환상적인 콜라보가 터지면서 광안리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결국 오후 2시가 넘어서야 티켓 배부가 시작됐고, 아침부터 죽치고 앉아있었던 나는 비교적 빨리 티켓을 받아서 한데 엉켜붙어 티켓을 갈구하는 어수선한 무리들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저녁 7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아침부터 거진 반나절을 꼬박 기다려온 행사가 스탠바이를 시작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좌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았다. Starcraft:Remastered 라고 쓰여진 전광판이 문득 어색하게 보였다. 스타크래프트 관련행사를 이 곳 광안리에서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서였을까. 어린 시절 TV 너머로 바라봤던 광안리의 그 현장에 어느덧 성인이 되어 다시 앉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잠시 식전 행사가 진행되고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무대 위로 스타크래프트 중계 현장에서 그토록 다시 보고 싶었던 그 얼굴, 전용준 캐스터가 올라왔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2012년 티빙 스타리그 이후로 스타크래프트 관련 중계는 모두 고사했고, 여러분들에게 너무 송구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리마스터가 출시되었고 그런 송구스러운 마음을 집어넣고서 오늘에서야 이 곳 광안리로 돌아왔습니다." 한 번 심호흡을 한 그는 이렇게 외쳤다.
"지금부터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세계 최초의 런칭쇼!
스타 gg 투게더를! 몇 년 만입니까!! 이 곳 광안리를 가득 채운 여러분들의 뜨거운 함성과 환호와 함께 시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하겠습니다!!!"
화려한 오프닝 세레머니와 함께 시작된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런칭 행사는 약 3시간 동안 임요환, 홍진호, 이윤열, 이영호, 이제동, 김택용 선수와 같은 스타크래프트 20년의 역사에서 전설이 된 선수들과 함께 광안리를 뜨겁게 달구었다. 선수들이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 보여주는 경기 모습들은 오래된 스타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초등학생이던 학생은 어느덧 성인이 되었고, 성인이었던 사람들은 어느덧 가정을 꾸려 자기 자식들을 이끌고 스타크래프트의 성지, 수도와도 같은 이 곳 광안리에서 다시 모이게 되었다.
광안리에서 다시 시작된 스타크래프트의 연대기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아프리카 tv에서 진행되는 개인리그인 ASL, 선수들끼리 팀으로 뭉쳐 예전의 프로리그를 재현한 MPL까지 매 대회때마다 아낌없는 응원과 선수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스타크래프트가 우리에게 갖는 의미가 단순히 게임 그 이상의 문화현상이라는 것을, 그리고 평생 우리와 함께 할 게임이라는 것을 매 경기마다 보여주고 있다. 나에게 있어 부산은 스타크래프트의 새로운 시작을 함께 한 소중한 곳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