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의 소년이 12년이 지나 경주에 돌아왔다 (1)

천 년의 세월을 품은 경주, 그 곳에서 만난 것들

by Writing Ko

초등학교 때 한 번쯤은 수학여행으로 경주를 가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멋 모르고 친구들이랑 같이 놀러간다는 사실이 더 즐거웠던 수학여행. 관광버스를 타고 이 곳 저 곳을 다니면서 아는 것은 없지만 자기 몸보다 몇 십, 몇 백 배는 큰 유적들을 선생님들의 인도에 따라 정신없이 구경했던, 혹은 보는 둥 마는 둥 스쳐 지나갔던 어린 날의 기억들이 아주 조금씩은 머리에 남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어린 시절의 그런 희미한 기억 한 줌을 가지고서 다시 경주에 방문했다. 12년의 세월이 지나고, 머리도 몸도 조금은 더 성장해서 비로소 천 년의 고도, 경주로 다시 돌아왔다.

20170816_132935.jpg 무턱대고 달려온 경주.

사실 경주 같은 지역은 혼자 여행 다니기에는 조금 애매한 구석이 있다. 다른 지역처럼 구경을 다닐만한 곳이 자연경관이 근사한 것도 아니고, 소위 말하는 '맛집'들이 즐비한 곳도 아닌데다가 어렸을 때 한 번쯤은 다 가본 곳이라 또 가긴 애매한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경주를 간 이유는 단순히 한국사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 그동안 한국사를 공부하면서 책 속에 실린 작은 사진들로만 접해 왔던 유물과 유적들, 그리고 단순히 텍스트 혹은 시험 문제로만 접했던 역사적 스토리들을 나이가 먹고 머리가 조금 더 굵어진 지금, 실제로 마주하게 된다면 조금 더 입체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경주행 무궁화호에 올라타는 데 한 몫했다.

20170816_135811.jpg '경주'라는 이미지에 딱 걸맞는 역 디자인이다. 과하지도 너무 촌스럽지도 않은 그런 디자인.

한참을 무궁화호 특유의 딱딱한 좌석에 몸을 구겨 앉고 몇 시간을 달려서야 경주역에 도착했다. 하얀 기와지붕으로 잘 정리정돈 된 경주역사(驛舍)는 전반적인 분위기부터 역사유적지구에 어울리게 고풍스럽고 옛스러운 컨셉을 잘 유지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런 고풍스런 건물 앞에서 낮부터 거하게 술에 취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되도 않는 일장연설을 구구절절 늘어놓으시는 저 할아버지를 제외하면 말이지.


20170816_145435.jpg 드넓은 땅에 놀이공원의 놀이공원처럼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유적들이 있다는 것은 역사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참 행복한 일이다.

경주역 앞 횡단보도에서 바라본 경주는 크고 작은 기념품 가게들과 크고 작은 가게들이 거리에 즐비해 있는 것이 어느 도시에 왔다기 보다는 테마파크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뭐 '경주 역사유적지구'니까 역사를 주제로 한 테마파크라고 한다면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다른 지역의 기차역 앞에서는 느끼기 힘든 북적북적하고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었다.

한참을 지도 어플을 들여다 보며 더듬더듬 역사지구를 찾아 헤멘 지 몇 분이나 지났을까. 이윽고 눈 앞에 책이나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크고 아름다운 고분들이 펼쳐졌다. 식리총,금령총... 천마총처럼 낯익은 이름들은 아니다. 대부분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없거나 고분에서 발굴된 일부 유물들로 주인을 어렴풋이 추측할 뿐인 무덤들이다. 중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교과서에 한 줄도 제대로 실리지 않거나 혹은 시험 문제에 나오지 않는 이 고분들은 천 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자신의 가치를 단순히 책 속 텍스트에 한정지을 수 없다는 듯이 당당하게 서 있었다.

com.daumkakao.android.brunchapp_20190103212450_1_filter.jpeg 왼쪽은 금령총, 오른쪽은 식리총.

EBS에서 한국사 강의를 하시는 최태성 선생님이 수업 중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중에 여러분들이 이 강의를 듣고 어디든간에 유적지를 꼭 한 번 가보세요. 탑이 됐든, 고분이 됐든 상관 없습니다. 그냥 그 곳에 가서 차분하게 조금 긴 시간동안 그 모습들을 음미하고 감상해보세요."

20170816_141605.jpg 5C 후반에서 6C 전반으로 추정되는 신라시대의 돌무지덧널무덤이며 일제강점기 때 발굴된 금관을 비롯한 각종 장신구가 소형인 것으로 보아 무덤의 주인은 어린 왕족의 것으로 추정된다

그 말처럼 한참을 금령총 앞에 우두커니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신라시대의 역사에 대해서 깊게 아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그저 스쳐 지나갔을 이 고분들을 이제는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그리고 그의 나이조차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신라의 어린 왕족이 어떤 연유로 이른 나이에 삶을 마감하고 이 곳에 이토록 커다란 무덤을 세운 것일까. 역사책 그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수 천년의 역사가 품기에는 어쩌면 지나치게 사소한 이야기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제대로 꽃송이조차 피워보지 못하고 이 곳 경주에 묻혔을 아이의 모습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 아이의 뒷모습이 아주 조금 어른거렸다.

당신이 만약 어디든 여행을 떠난다면, 하물며 그 곳이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곳이라면, 그 곳에 대해 조금은 공부하고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주 약간의 배경지식이라도 그 곳과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훌륭한 소재거리가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여행의 추억은 들고 간 가이드북이 만들어주지 않는다. 자기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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