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열차의 종점, 백마고지 (1)

백마고지로 떠나는 마지막 통일호 열차

by Writing Ko

얼마 전, 퇴근길에서 남북한의 철도와 도로 연결과 관련한 착공식이 진행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십 여년전에 동해선 열차가 시범적으로 운행되었다가 '금강산 피살 사건'을 계기로 급격하게 남북 관계가 냉각되며 흐지부지됐다가 비로소 재개되는 듯 했다. 언제 어떻게 엎어질 지 모르는 철도 연결이지만, 다시 한 번 비로소 남북한이 물리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발판 정도는 마련하게 되는 시발점이 아닌가 싶다.

지난 해 12월 26일, 남북한어 철도,도로 착공식이 진행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합법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북한과 지리적으로 가장 밀접한 역은 도라산역이다. 개성시와 엎어지면 코닿을 거리에 위치해있고, 만약에 통일이 되어 철도가 정상적으로 개통된다면 도라산역의 다음 역은 개성역이다. 그런 곳이니만큼 들어갈 때 신변확인을 하고, 신분증을 걷어 통제된 지역만 한정된 시간동안 둘러볼 수 있다. 혹시라도 도라산역 근처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의 사진이라도 찍었다가는 그 날로 남산 지하실에서 수중호흡해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하는 곳이기도 하다.

코레일로 개편되기도 전인 철도청 시절의 도라산역.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최북단에 위치한 역은 다름아닌 백마고지역이다. 남북한이 38선으로 비스듬히 잘려진 탓에 강원도가 우리나라 영토상 가장 위쪽에 위치하게 됐고, 그 결과 강원도 철원에 위치한 백마고지역이 가장 북쪽에 위치하게 되었다. 물론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고, 일반 열차가 정차하는 최북단 역이 백마고지역이고, 지리적으로 가장 최북단에 있는 역은 민간인통제선 안에 있어 현재 영업중지 상태인 제진역이다.

우리가 갈 수 있는 38선과 가장 인접한 역이다.

사실 백마고지역을 간 건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단지 최북단이라는 상징적인 곳에 발자국을 남기고 싶었을 뿐이었다.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대한민국 철도의 종착지이기에 백마고지역까지 가는 시간과 비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백마고지역까지는 조금 먼 길을 나서야 한다. 1호선의 거의 끝자락인 동두천역에서 백마고지역을 가는 통근열차를 타고 약 1시간을 더 가야한다. 퇴역한 예전의 통일호를 계승한 통근기차는 동두천-백마고지 노선에서 철원군 주민들을 수송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를 제외하면 모두 폐선되었다.

동두천역에서 백마고지역까지 하루에 14번을 왕복하는 오래된 통근열차는 지속적으로 노선을 확장해가는 지하철의 운행 범위와 1000원 밖에 하지 않는 통근열차의 운임과 더불어 늘어나지 않는 탑승객의 수요 때문에 점점 그 운영이 힘들어지고 있다. 물론 전철은 물론 버스도 잘 다니지 않는 경기도, 강원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사람들의 수요 때문에 쉽게 폐선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용산에서 익산을 오고 갔던 옛 장항선 새마을호처럼, 간간히 경기도와 강원도를 잇다가 전철 복선화가 이루어지고, 다른 열차로 대체된다면 비둘기호와 통일호를 잇는 대한민국에서 운행되는 마지막 완행열차인 통근열차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오래 전에 할머니, 할아버지를 뵈러 광주에 내려갈 때면, 종종 통일호를 탔던 기억이 있다. 정읍에서 송정리역, 지금의 광주송정역까지 오고 가던 옛날의 통일호는 사람도, 차도 지나다니지 않는 시골까지 느릿느릿 걸어다녔다. 어린 나는 그런 느림이 마냥 좋았다. 기차를 더 오랫동안 타고, 평소에는 보기 힘든 시골의 고즈넉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하지만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KTX가 등장하면서 소리소문없이 사라져버렸다. 때문에 통일호가 멈추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셨던 시골의 작은 간이역도 수명을 다하고 문을 걸어잠궈야 했다. KTX가 등장하면서 전국을 2시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갈 수 있게 되었지만, 가끔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통일호의 그런 느림이 그리울 때가 있다.

사라진 줄만 알았던 통일호 기차였지만,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정읍과 송정리를 오고갔던 투박하고 순박했던 통일호는 십 여년이 훨씬 지나서야 동두천역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 동안 연락이 닿지 않던 오래 된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그 때처럼 무궁화호나 새마을호같은 크고 푹신한 좌석이 아닌 옛날 모습 그대로 앉아있었다. 세윌이 흘러 조금 색이 변하고, 멋스러워진 다시 만난 통일호에서 잠시 창가에 기대앉아 먼 옛날 호남선을 천천히 달리던 그 모습을 다시 그려보았다. 고향으로 돌아가던 십 여년 전의 그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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