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커버스커 그리고 낭만포차
여수에서 제일 사람들이 북적북적하고, 인기가 많은 곳을 하나 뽑으라 하면 낭만포차 거리일 것이다. 밤이면 바다를 끼고있는 포장마차가 사람들로 가득 차고, 거리에는 기타 하나 들고 길거리 버스킹을 하는 사람과 그 관객들로 북적거린다. 사실 낭만포차 거리에서 뭔가 거창한 걸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낭만포차 거리의 특유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다. 바다 옆에 죽 늘어서 있는 포장마차와 그곳에서 나는 맛있는 음식 냄새를 맡으며 북적북적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 정처 없이 걷는, 여수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말 그대로 낭만적인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다.
예전에 일본 후쿠오카에 갔을 때도 비슷한 이유에서 포차 거리를 갔었다. 강변을 끼고 길게 늘어서 있는 포차에서 뭐 하나 먹어보겠다고 줄을 서 있었지만, 기본 웨이팅이 30분을 훌쩍 넘어서 단념하고 근처 횟집에서 쓸쓸하게 초밥이나 먹었던 것이 생각났다. 여수까지 와서 그런 슬픈 기억을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해가 채 지기도 전인 6시쯤에 포차 거리를 하릴없이 어슬렁거렸지만 너무 이른 시간인지 영업하는 곳도 없고, 흔한 버스킹 공연도 하고 있지 않았다. 조금 당황스럽지만 그래도 아무 상관없다. 그저 여수 바다를 옆에 두고 하염없이 걷는 것만으로도 낭만포차 거리는 포차에서 먹는 술과 안주가 주는 즐거움 그 이상을 줄 수 있을 테니.
하염없이 걸어 다니다 보니 여객선이 바다 위를 떠돌아다닌다. 다른 섬을 오고 가는 여객선인지, 여수 바다를 순환하는 유람선인지 꽤나 많은 수의 배들이 바다 위를 유유자적 떠다니고 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배 한 번 정도는 타 봐야지! 하는 쓰잘데기 없는 패기로 배가 정박해있는 선박장을 주욱 훑어보았다. 타는 곳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저 배들은 어디서 온 거지? 막연하게 배들을 따라 걷다 보니 진짜 '배 타는 곳'이 나왔다. 벽화마을 위에서도 훤히 보이는 여수여객터미널이다. 잠깐 에어컨 바람도 쐴 겸, 내일 혹시라도 갈 만한 곳이 있을까 싶어 행선지가 적혀 있는 요금표를 보러 안으로 들어갔다. 거문도를 제외하면 정말 작은 섬 밖에 들어가지 않는다. 거문도조차도 하루에 두 번 출항하는 것을 보아하니 여수에서 섬을 들어가는 관광객의 수요 자체가 적은가 보다. 게다가 어떤 섬을 들어가도 왕복 배 삯이 꽤나 비싼 데다가 한 번 들어가면 그곳에서 무조건 1박을 해야 하는 절망적인 시간표인지라, 일찌감치 섬에 들어가는 것은 포기했다.
한참을 여수여객터미널 근처를 방황했다. 갈 곳도 없고 마땅히 뭔가를 구경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냥 정처없이 바닷길을 따라 하염없이 걷다가 편의점에서 캔커피 하나를 들고 벤치에 주저앉았다. 여수까지 와서 한 것이라고는 게장정식만 먹고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닌 것 뿐이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이 뿌듯했다.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다녔을 때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무료한 일정이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친구들과 여행을 가면 좋은 추억들을 많이 만들어서 가기도 하지만, 종종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보다 보면 '친구랑 같이 여행갔다가 대판 싸우고왔다'는 제목의 하소연을 늘어놓는 글들을 심심찮게 볼 때가 있다. 서로 여행을 가는 목적이 다르고, 여행을 하는 방식의 차이가 부딪치다보니 생기는 사람간의 흔한 갈등이지만, 그 갈등을 굳이 즐겁게 여행하겠다고 떠난 관광지에서 겪으려니 속이 터질 수 밖에 없다. 서로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양보하지 못한다면 필연적으로 다툴 수 밖에 없는 게 같이 떠나는 여행의 현실이다. 그런 면에 있어서 혼자 여행한다는 것이 썩 나쁘지만은 않다. 남 눈치 안 보고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면서 여행지에서의 추억이 오로지 내 것이 될 수 있으니까.
혼자 여행하는 게 무섭지 않느냐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처음 가는 곳에 혼자 내던져지면 퍽 당황스럽다. 하지만 한 순간이다. 그 두려움을 깨부수고 혼자 여행길에 발을 내딛는 순간, 여행을 즐기는 새로운 맛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오늘 또 다시 낯선 곳에 발자국을 남기면서, 어느덧 어둑어둑해지는 일몰을 등지고 내일이면 사라지리라. 저 멀리 거북선대교가 네온사인 불빛을 내뿜고, 낭만포차거리는 점점 활기를 되찾아갔다. 어느덧 여수의 밤바다는 화려한 조명을 수놓기 시작했고, 나도 이 곳 여수에서 듣고 싶었던 노래를 귀 속에 꽂아넣었다. 여태껏 한 번도 듣지 않았던, 이 곳에서 처음 듣는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 이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
네게 들려주고파 전활 걸어 뭐하고 있냐고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