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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Ko Nov 11. 2018

여수 밤바다에서 버스커버스커와 세레나데를 (5)

한 달에 한 번, 무작정 떠나는 전국 팔도 유랑기

 

고소동 벽화마을 바로 옆에 있었던 테디베어 게스트하우스.

 

 '일품 식당'에서 터져버릴 것 같은 배를 움켜쥐고 느릿느릿 걸어 나와 고소동 벽화마을 가는 2번 버스에 올라탔다. 한 20분 정도를 달려 '여수 경찰서' 앞에서 내려서 지도 어플에서 보여주는 이동경로를 따라 더듬더듬 걸어가다 보니 어? 예약한 게스트하우스다. 게스트하우스 입구 바로 옆에는 벽화마을을 올라가는 계단도 있었다. 예약할 때에는 단지 낭만포차 거리와 이순신광장에서 가깝다 해서 아무 생각 없이 예약한 곳이지만, 의도치않게 첫 목적지를 숙소 옆으로 가게 되니 마음의 안정감도 생기는 것만 같고, 여행 초반부터 왠지 모르게 잘 풀린다는 기분이 들었다.


사진에 바닷바람의 청량함과 처음 봤을 때의 신선한 느낌까지는 담을 수 없었다.

  

 기분 좋게 체크인을 하고 나서, 여유롭게 고소동 1004 벽화마을의 첫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 꽤나 가파른 계단들을 오르고 나서, 곳곳에 그려진 벽화들을 여유롭게 구경하다 보니 어느 순간 눈 앞을 가득 채우는 여수의 푸른 바다가 평화롭게 펼쳐져있었다. 우람하게 솟아올라있는 거북선대교의 아치와 여수터미널을 한가롭게 오고 가는 여객선들을 온화하게 품고 있는 드넓은 바다는 내가 여수에서 보고 싶었던 그 모습들이었다. 예전에 부산이나 제주도로 바다를 보러 간 적은 몇 번 있었지만, 대부분은 길게 펼쳐진 모래사장에 지평선 너머로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물살이 넘실거리는, 흔히 생각하는 바다의 이미지만을 봐 왔었다. 하지만 이 곳 여수에서는 책이나 TV에서나 종종 보던 낚시 나가는 배들이 항구에 줄지어 세워져 있고, 뜨거운 햇빛이 쏟아지는 가운데 여객선들이 한가로이 돌아다니는 유럽의 항구 도시의 이미지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각 구간별로 특색이 잘 드러난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고소동 벽화마을은 정말 잘 정돈되어있고, 잘 꾸며져 있었다. 제1 관광로부터 제8 관광로까지 나누어서 가는 길목마다 각자의 벽화에서 보여주는 콘셉트들이 있었다. 여수 8경을 주제로 한 벽화, 허영만 화백이 그린 그림으로 채워 넣은 벽화 등 뚜렷한 특징들이 있었다. 구불구불한 골목들을 거닐면서 골목 사이사이에 그려져 있는 벽화들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지만, 못내 아쉬운 마음은 지울 수 없었다.

계단 위에 앉아서 컨셉 사진을 찍으면 괜찮겠다고 생각만 했다.


저 벽화를 보면서 진짜 괜찮은 사진을 하나 찍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삼각대도 없었고 주변에 사람도 없어서...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정말 예쁜 사진들을 많이 찍었지만, '내가 여길 왔다'는 느낌의 내가 나오는 사진을 찍기는 참 힘들었다. 어딜 가든 여행을 오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은 커플들끼리, 친구들끼리 여러 명이서 놀러 오는 사람들이다 보니, 그 사람들한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기에도 괜스레 민망해지고 이래저래 찍기 힘들었다. 그래서 카메라 삼각대를 들고 사진을 찍어보려고 했지만, 좋은 삼각대는 몇 만 원씩 하는 지라, 인터넷이나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싸구려 삼각대를 놓고 사진을 찍었지만, 내구성이 엉망인지라, 몇 번 쓰고 갖다 버린 기억 밖에는 없다. 혼자 오는 여행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지만, 가끔은 같이 와서 여럿이 왔을 때만 담을 수 있는 그 추억들을 담아갈 수 없다는 것은 종종 아쉬울 때가 있다. 정신없이 싸돌아 다니다 보니 벌써 6시다. 땀이 비 오듯이 쏟아지고, 슬슬 체력적인 한계가 다다를 때쯤 발 닿는 대로 골목길을 걸어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낭만포차 거리에 도착했다. 오늘 밤은 여기서 보내야겠다. 정말 하고 싶은 게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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