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살, 퇴사하고 대만 한 바퀴
타이난의 공자묘는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공자묘이다.
블루스크린 문화창의 공원은 푸른색의 담벼락이 인상적이었다면, 이곳은 온통 붉은색의 물결이었다. 3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이곳은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공자묘이자, 고도(古都) 타이난의 핵심 관광지라 할 수 있다. 사실 그 점을 제외하면 뭐 특별할 게 없다. 하지만 나는 공자묘 이곳저곳에 걸려있는 다양한 현판들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중 나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유교무류(有敎無類)’라고 적힌 현판이었다.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교육을 실시한다는 의미의 이 성어는 예전에 내가 중국어를 공부하며, 열심히 외웠던 성어 중 하나였다. 여기서 이렇게 다시 마주하게 되다니 정말 감회가 새로웠다.
만약 이 성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면, 그냥 평범한 현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텐데, 의미를 알고 보니 이 현판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공자묘를 나온 후, 나는 타이난 기차역으로 가서 미리 예매했던 가오슝 행 기차표를 수령하기로 했다.
기차역으로 향하다가, 좁다란 골목에 아기자기한 장식들이 늘여서 있는 푸싱지에를 지나게 되었다.
타이난은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도시였다.
안핑은 오래된 고도(古都) 답게 전통적인 분위기와 타이난 옛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면, 타이난 시중심은 현대와 전통의 조화가 좋았다. 현대적이고 세련된 맛은 조금 부족했지만, 오래된 것이 가지고 있는 투박하고, 소박한 느낌이 나를 편안하게 해 줬다.
기차역에서 가오슝 행 기차표를 받아 들고, 나는 한동안 타이난 역 앞을 떠나지 못했다.
아, 아쉽다. 하루만, 정말 딱 하루만 더 타이난에 있으면 좋을 텐데...
아직도 보지 못한 곳들이 수두룩하고, 먹지 못한 것도 많은데 벌써 내일이면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게 싫었다. 다음에 다시 이곳에 온다면 그때는 타이난에서 좀 더 오래 머물고 싶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숙소 근처에도 식당이 많지만 타이난에서의 마지막 저녁 식사는 타이난의 유명 식당인 도소월에서 먹기로 했다.
타이난을 대표하는 유서 깊은 식당인 만큼,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곳인지 한국어로 된 메뉴판도 있어서 주문하기 좋았다.
사실 도소월하면 단짜이몐(担仔面, 擔擔麵)이 가장 대표적인 음식인데, 타이난으로 오는 기차에서 만났던 대만 할머니께서 “타이난에 가면 꼭 로우짜오판(肉燥饭)을 먹어야 해. 그게 타이난의 대표 음식이야.”라고 하신 게 떠올라서 나는 로우짜오판부터 하나 주문하였다.
뭔가 내가 생각했던 비주얼은 이게 아니었지만 그래도 맛은 좋았다. 고슬고슬하고 따뜻한 흰쌀밥 위에 얹어진 짭조름한 돼지고기의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다. 한입 크게 떠서 먹자, 짜장밥과 비슷한 맛이었는데 좀 더 기름기가 있는 짜장밥이었다. 이것만 먹기는 아쉬워서 사이드 메뉴를 하나 더 추가하기로 했다.
안평을 여행할 때 굴전 파는 노점상을 굉장히 많이 보았는데, 해산물을 잘못 먹었다가 배탈이라도 나면 큰일이기 때문에 대만에 온 이후 해산물은 자발적으로 피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소월은 130년이 넘은 역사 깊은 식당이니까 해산물 요리도 괜찮지 않을까?
안평의 굴요리가 그렇게 명물이라던데…
굴튀김 요리도 하나 시켰다.
갓 튀긴 따끈한 굴튀김이 나왔다. 바삭한 튀김옷과 촉촉한 굴의 조합은 정말 끝내줬다. 내가 술을 좀 마실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당장 타이완 맥주를 주문했으리라.(이럴 때는 술을 못 마시는 게 정말 아쉽다.)
이 굴튀김은 정말 찐이었다. 글을 쓰는 이 순간도 입안에 침이 고일 정도다.
짭짤한 로우짜오판과 고소한 굴튀김으로 타이난에서의 행복한 마지막 밤을 자축했다.
도소월에서 배부르게 밥을 먹은 후, 소화도 시킬 겸 숙소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2월부터 하고 있던 등불 축제 때문인지 도심은 등불들로 잔뜩 장식되어 있었다.
아, 나의 아름답고 행복했던 타이난에서의 마지막밤이 이렇게 저물어 갔다.
아쉬움이 남아서 쉽게 숙소 안으로 들어가기 못하고 거리를 서성였다.
하지만 가오슝에서 꼭 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 가오슝행을 미룰 수 없었다.
타이난에 꼭 다시 한번 방문하겠다는 굳센 결심을 하고 또 했다.
거리에 붉은 등불과 나만 남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편의점에 들러 맥주 대신 동과레몬주스를 한병 사들고 숙소로 돌아갔다. 개운하게 씻고 나와 에어컨 바람을 쐬며 동과레몬주스를 들이켰다. 안 마셔본 낯선 음료를 마셔보겠다고 구입한 거라, 솔직히 그다지 맛은 없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즐거웠다. 낯설지만 좋고, 사소한 것 하나에도 기쁨을 느끼는 것. 타이난은 나에게 그런 도시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