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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도피 23, 가오슝 완전 정복의 날①

36살, 퇴사하고 대만 한 바퀴

by 나나

오늘은 가오슝 완전 정복의 날이다.

하루 동안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즐기기로 다짐했다.


IMG_0183.JPG?type=w773 패션후르츠와 레드구아바


전날 야시장에서 사 온 과일들로 대충 배를 채우고, 출발… 하려는데 이슬비가 내렸다.

그나마 이슬비라서 다행이었다.

대만은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화한 기후에 속하지만 비가 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습기로 인해 거의 24시간 돌아가는 에어컨과 제습기가 비와 만나면 굉장히 서늘하게 변하기 때문이다. 마치 감기에 걸리라고 고사라도 지내는 온도가 되어버린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 도톰한 기모 후드티를 하나 더 입고 우산을 챙겨 나왔다.


오늘 나의 계획은 Glory pier에서 가오슝 뮤직센터를 보고, 보얼예술특구 방면으로 이동하면서 주변에 있는 것들을 살펴본 후, 마음이 가는 대로 치진섬을 가던지, 시즈완쪽을 갈 계획이다.

즉,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 예정이다. 이쯤 되니 제법 J 같다.(뿌듯)




숙소 앞에서 버스를 타고, 오늘 여행의 시작점인 Glory pier로 향했다.

Glory pier에 러버덕을 띄어놓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러버덕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쉽게도 날씨 탓인지 아니면 내가 시기를 잘못 맞춘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저 멀리 벌집 모양의 가오슝 뮤직센터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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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을 옮겼다. 비가 와서 그런지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다.


IMG_0193.jpg?type=w773 지상철 그린라인


가오슝에는 현재까지 3개의 전철 노선이 있다.


- 레드라인 : 가오슝 국제공항 - 쭤잉역(가오슝을 세로로 잇는다.)

- 오렌지라인: 다랴오 - 시즈완(가오슝을 가로로 잇는다.)

- 그린라인 : 가오슝 중심부 순회


그동안 레드와 오렌지는 타봤으니까

이번에는 지상철인 그린라인을 타고 love pier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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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pier 근처에 오니, Glory pier에서 봤던 가오슝 뮤직센터 근처였다.

하지만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내가 love pier에 온 이유는 단 하나, 향원우육면을 먹기 위해서였다. 맛집투어를 할 정도로 미식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하다고 하니 어떤 곳인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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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점심을 먹고자, 11시에 시간을 맞춰서 갔는데, 이미 식당 안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식당 가장 구석에 있는 1인석에 앉아, 메뉴판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나는 비도 오고 날씨도 썰렁해서 몸도 녹일 겸 뜨끈한 우육탕면을 한 그릇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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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기다리자 두툼한 소고기 덩어리가 큼직하게 들어간 우육탕면이 나왔다.

뜨끈한 국물이 여행의 피곤함을 살살 녹여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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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에는 다진 마늘과 고추 양념이 함께 있어서, 일단 아무것도 넣지 않은 채 반쯤 먹다가 남은 반은 고추 양념을 조금 넣어서 먹었다. 매운맛을 좋아하신다면 고추 양념을 조금 넣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대신 아주 조금만! 맛이 칼칼하니 이마에서 땀이 주르륵 흘렀다.


뜨끈한 우육탕면을 배불리 먹고, 또다시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어디선가 한국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홀린 듯이 한국인 목소리를 따라가니, 써니힐이었다.

내가 들은 목소리는 써니힐 입장을 기다리느라 줄을 서 있는 한국인 커플의 소리였다.

가오슝에서의 써니힐은 전혀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운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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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힐에서는 물건을 사지 않아도 무료로 차와 펑리수가 제공되어서, 이곳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따뜻한 우롱차 한 잔과 펑리수를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곧장 보얼예술특구 쪽으로 이동했다.


써니힐이 보얼예술특구의 가장 안쪽에 위치하고 있으니까, 나는 반대로(써니힐 쪽에서 보얼예술특구 입구 방향) 걷기로 했다. 어차피 내 다음 목적지는 하미싱철도문화원구, 치진섬이기 때문에 이렇게 이동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방법인 듯싶었다.(착실하게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중)


보얼예술특구는 과거 항만창고로 사용되던 건물들이다. 폐창고나 다름없던 과거의 건물들을 '도시 재생 사업'을 통해 예술가들의 작품 전시 공간, 공방, 식당 등으로 사용되면서 이제는 가오슝을 방문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방문해야 하는 대표 문화 복합 공간으로 재탄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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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창고로 쓰였을 건물 사이사이를 거닐며, 가게 내부를 기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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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골로 무척 유명한 '원더풀라이프'도 보얼예술특구 안에 있다.

정말 귀여운 제품들이 많아서 미친 듯이 사고 싶었다. 몇 번이나 갖고 싶은 오로골들을 들었다가 놓았다를 반복했다.


IMG_0252.JPG?type=w773 예쁜 오로골과 예쁘지 않은 가격

너무나 마음에 드는 발레 오로골을 발견하고 "이건 사야 해!"를 외쳤지만, 가격을 보고 얌전히 내려놓았다.

예쁜 오로골과 예쁘지 못한 가격....

나 같은 가난한 뚜벅이 여행자에게는 사치였다.

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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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얼예술특구는 여러 공방이나, 조형물을 감상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주변 건축물들의 벽화를 보는 것도 꽤 쏠쏠한 재미가 있다.


IMG_0268.JPG?type=w773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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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얼예술특구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도로 한가운데로 트램(그린라인)이 지나간다는 것.

저 멀리서 트램 오는 벨소리가 들리면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철길 밖으로 나오는데 질서 있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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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얼예술특구 이곳저곳을 구경하다가 방앗간 앞 참새처럼 보얼예술특구 안에 있는 성품생활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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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교 x문고처럼 없는 게 없는 성품생활.

앞으로의 여행 일정을 생각하면 여기서 기념품을 사면 절대 안 될 것 같은 느낌이었으나, 귀여운 그림책을 발견한 후, "너무 귀여워!!"라면서 냉큼 질러버렸다.


IMG_0283.JPG?type=w773 어떻게 안 살 수가 있어?!

책 제목은 그 이름도 귀여운 <대만아침식사지도>!

책 띠지에 주의사항이 쓰여 있는데 배고픈 상태에서는 절대 보지 말라고 쓰여 있었다. 이 책은 글은 거의 없고, 그저 대만 각 지역별 대표 음식들이 아기자기한 그림체로 그려져 있는 게 전부였다. 대만 환도 여행을 하고 있는 나에게 딱 맞는 책이었다.


마음에 드는 책을 얻었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보얼예술특구를 지나, 하미싱철도문화원구의 프리마켓까지 구경한 후, 치진으로 가는 선착장으로 향하던 중, 여러 사람이 어디론가로 열심히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뭐지? 궁금하다. 나도 서둘러 사람들을 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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