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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도피 24, 가오슝 완전 정복의 날②

36살, 퇴사하고 대만 한 바퀴

by 나나

사람들을 따라가는 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대만 여행을 하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군인들이 사방에서 거리를 통제하고 있었다.


“이쪽으로 걸으세요!”


살면서 군인들을 이렇게 많이 만나볼 일이 없었던지라 잔뜩 얼어버렸다.

'뭐지? 뭐지?'

동공이 사정없이 떨렸다. 서둘러 사람들의 뒤를 쫓아갔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바로 '가오슝 해군 본부'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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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커다란 군함에 오르고 있었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께 여쭤보니 오늘 해군 군함 진수식이 있는 날이라고 했다. 그래서 대중에게 군함 내부를 공개한다며 나에게도 군함에 올라가 보라고 하셨다.


군함... 솔직히 너무 궁금했다. 내가 살면서 군함에 들어갈 일이 있을까?

하지만, 나에게는 군함만큼 빙수도 중요했다. 오늘 나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없었다. 빨리 빙수를 먹고 치진으로 들어가야 했다.(왜 하루는 24시간 밖에 없는 걸까?)


결국 군함을 뒤로 하로 서둘러 페리 선착장 근처에 있는 빙수거리로 향했다.

IMG_0305.JPG?type=w773 하이즈빙

한국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하이즈빙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이 지난 늦은 오후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없고, 무척이나 한적했다. 3월 중순이라 아직 빙수철이 아니라서 그런 걸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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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봤던 타이완 여행 에세이에서 망고빙수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타이완에 왔으면 망고를 먹어야 하고, 망고빙수를 먹어야 한다. 대만에서 먹는 망고는 한국에서 먹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라는 이야기였다.

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그럴까? 망고빙수를 주문하려고 하니, 사장 아저씨에서 고개를 저으시며, 지금은 망고철이 아니라서 냉동 망고를 쓰기 때문에 망고빙수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과일빙수에 올라가는 과일들이 신선하니 그것을 추천한다고 하셨다.


아, 나는 대만 사람들의 이런 정직함이 좋다.


어차피 아무것도 모르는 외국인이 콩을 먹든, 팥을 먹든 무슨 상관인가?!

냉동망고를 먹든, 생망고를 먹든, 네가 선택한 거니까! 하고 무시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하이즈빙의 사장님은 친절하게도 나에게 무작정 '안돼!'라고 말씀하시기보다, 대체할 수 있는 더 좋은 것을 제안해 주셨다. 아저씨의 말씀에 신뢰가 갔다. 사장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굳이 망고빙수를 고집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사장님의 추천대로 얼음도 우유얼음으로 바꾸고, 과일빙수를 먹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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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색의 과일이 가득 올라간 빙수 한 그릇이 나왔다. 한국에서 보던 토핑이 잔뜩 올려진 화려한 빙수와는 거리가 있었고, 일본에서 보았던 색소시럽만 올라간 단출한 빙수와도 또 달랐다.


우유얼음과 신선한 과일, 그리고 달콤한 연유.

어쩌면 이것이 가장 베이직한 느낌의 빙수가 아닐까? 너무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심심하지도 않은 이 빙수의 모습이 대만의 이미지를 잘 표현하고 있는 듯했다.

우유얼음과 함께 큼직하게 썰은 과일 한 토막을 입에 넣었다. 관자놀이가 찌릿! 하면서 얼음의 시원함과 과일의 상큼함이 동시에 입안 가득 퍼졌다. 아! 역시 사장님 추천이 옳았다.

잘 모를 때는 무조건 전문가의 추천이 최고다.

빙수를 한입 먹고 사장님께 쌍따봉을 날려드렸다. 사장님께서 사람 좋은 미소로 웃으시며 "맛있어요?"라고 물어보셨다. 이번에는 쌍따봉과 함께 고개도 열심히 끄덕여드렸다. 소박하지만 달콤한 힐링이었다.


오랫동안 걷느라 팅팅 부은 다리를 충분히 풀어주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저 멀리 사람들이 줄을 서서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나는 자연스럽게 치진섬으로 향하는 페리 선착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2025년 1월 24일부터 27일까지 대만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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