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살, 퇴사하고 대만 한 바퀴
치진행 페리에 몸을 실었다.
따로 티켓을 구입할 필요도 없이, 이지카드 하나만 찍으면 되니 무척이나 편리했다.
이렇게 몸이 편리할 때마다 이지카드를 잘 구입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타이중의 한 편의점에서 이지카드를 구입할 적만 해도 "구입했는데, 생각보다 쓸 데가 없네?!"라고 생각했는데, 타이난에서는 "좀 편한데?"였고, 가오슝쯤 오니 "아, 이래서 이지카드를 만들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가오슝 페리선착장에서 치진까지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대만에 와서 처음 타는 배에 잔뜩 신이 나서 "오! 대만에서의 첫 배!"라며, 두근거릴 틈도 없이 순식간에 하선해야 했다. 솔직히 조금 허무했다.
치진에 도착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다가와 전기자전거 대여를 열심히 홍보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차피 스쿠터도 전기자전거도 타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열띤 홍보를 다 무시하고 서둘러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어차피 내가 못하는 것에는 미련을 갖지 않기로 했다. 그저 튼튼한 내 두 다리 하나만 믿고 치진을 돌아보기로 했다.
나의 치진섬 여행 계획은 섬 북서쪽에 있는 가오슝 등대를 보고 해수욕장을 쭉 걸어서 동남쪽에 있는 무지개 교회를 찍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구글맵이 알려주는 대로 한적한 치진섬의 골목길로 들어갔다.
따사로운 햇빛이 너무 좋았다. 화려하게 꾸며진 도심 한복판도 좋았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이런 곳이 더 마음에 들었다. 집 앞 작은 텃밭에 심어놓은 꽃들이 마치 대만 사람들의 미소처럼 정다워 보였다.
완만한 언덕을 오르니 저 멀리 아까 지나왔던 해군 부대의 군함이 보였다.
여전히 행사가 진행되는 중인지 커다란 음악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오전에는 날씨가 흐렸는데, 어느새 화창하게 개어있었다.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니 알록달록한 치진섬의 건물들과 검은 모래가 인상적인 해수욕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시야를 가리지 않은 낮은 층수의 건물들이 보기 좋았다. 모난 구석 없이, 누구 하나 눈에 띄지 않게, 고만고만한 층수의 건물들이 인상적이었다.
드디어 도착한 가오슝 등대. 치진섬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가오슝 등대의 맞은편에는 시즈완이 있다. 이곳 역시 과거 가오슝과 가오슝항구를 지키는 요새 같은 역할을 했었나 보다. 가오슝 등대에서 얼마 가지 않아 과거 성벽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과거 치허우 포대가 있었던 터인데, 지금은 대포는 없고 단단한 성벽만이 아직도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성벽 위에 올라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짭짤한 바닷바람을 만끽했다. 아직 3월 초순임에도 대만 남부로 내려오니 오후가 되면 제법 날씨가 더웠다. 성벽에 걸터앉아 시원한 바닷바람으로 잠시나마 더위를 식혀보았다.
언덕을 내려오는 중, 문화 해설사로 추정되는 할아버지께서 초등학생 꼬마들에게 이 산의 이름은 치허우 산인데, 치진(旗津)의 뒤(后)를 지켜주는 산이기 때문에 치허우(旗后)라고 부른다고 하셨다.
또 이렇게 귀동냥으로 하나 배워간다.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와 함께 새소리가 들려왔다.
"엉? 대체 저게 뭐지?"
고개를 들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커다란 새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했다. 커다란 앵무새들이 짝을 이뤄 하늘을 날고 있는 것이었다.
“뭐야? 앵무새?? 여긴 비둘기들처럼 앵무새가 흔한 새인가?”
물론 내 추측은 틀린 것이었다.
해변가로 가보니, 앵무새 동호회에서 정모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자신들이 앵무새를 데려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서로 앵무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동호회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근처에 가서 구경을 하는 분위기라서 나 역시 조심스럽게 앵무새 한 마리 근처에 다가갔다.
앵무새가 한국어도 따라 할 수 있을까 싶어서 앵무새에게 "안녕?"이라고 말을 걸어보았다. 그 순간, 한 아저씨께서 “너 한국인이니?"라며 말을 걸어오셨다.
그리고는 본인의 앵무새 한 마리를 데리고 오셔서 내 팔 위에 턱! 올려주셨다.
"으아!"
가까이에서 본 앵무새는 생각보다 훨씬 커다랗고 무거웠다.
“내가 앵무새랑 사진 찍어줄게. 여기 서봐!… 음, 역광이네, 다시 이쪽으로 서봐.”
아저씨께서 내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가져가시더니,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주셨다.
나는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리둥절했지만, 그래도 아저씨 덕분에 앵무새와 멋진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이제 점점 더 햇빛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더 더워지기 전에 서둘러 무지개교회 쪽으로 향했다.
해변가 옆에 재래시장 같은 것이 열려있어서 그곳에서 시원한 금귤레몬차를 한 잔 구입했다.
원래도 레몬을 좋아하지만 대만에 와서는 레몬 음료를 참 많이 마시게 된다. (레몬이 들어간 것은 거의 실패가 없다.) 시원한 금귤레몬차를 홀짝이며 유유자적 걷다 보니 드디어 무지개 교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실 무지개 교회는 SNS상에서 포토존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유명해진 건데 실제로 가보니 별거 없이 정말 덩그러니 포토존만 3개 있었다. 이게 왜 유명해진 걸까? 뭔가 SNS에게 속은 기분이 들었다. 이걸 처음 유행시킨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마케팅을 잘했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이곳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여기까지 오게 하다니...
그곳에서 사진을 찍다가 혼자 오신 한국관광객을 만나서 그분과 “이제 그만~!!”을 외칠 때까지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가오슝에 가서 같이 차라도 한 잔 할까 싶었지만, 그분은 이곳에서 석양까지 보고 나오신다고 하여, 나는 더 늦기 전에 먼저 치진섬을 나오기로 했다.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치진섬을 빠져나왔다.
치진섬에 들어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가오슝의 페리 선착장까지 순식간에 도착하였다.
자리에 착석할 필요도 없이, 난간에 기대 멀어지는 치친섬을 바라보고 있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선착장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이제는 꽤 익숙해진 페리 선착장에 다시 도착했다.
치진에서 금귤레몬차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슬슬 배가 고팠다. 서둘러 인터넷으로 미리 검색했던 유명 어묵집으로 향했다.
오래된 노포인 듯(1966년 오픈했다고 되어 있다.) 현지 사람들이 꽤 많이 찾아와서 음식을 주문하고 있었다. 나는 앞사람들이 무엇을 먹는지 살펴보았지만, 어떻게 주문을 해야 할지, 무엇이 맛있을지 영 감이 잡히지 않았다. 수많은 어묵 종류를 다 알 수가 없어서 주인 할머니께 솔직하게
“제가 한국인이라 어떻게 어묵을 주문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사장님께서 추천해 주세요.”라고 말씀드렸다.
주인 할머니는 흔쾌히 가게에서 인기 있는 어묵들을 소개해주셨다.
제일 먼저 양배추롤이 가장 인기 있다고 하셔서 그거 하나 담고, 작은 어묵 3가지를 담았다.
그리고 큼직한 무도 한 토막 추가했고, 검은 쌀떡 같은 것도 담았다.
검은 쌀떡은 알고 보니 오리피를 이용한 떡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산 그림책에서 가오슝 대표 음식 중 오리고기 밥이나 면을 보고 도전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한술 더 떠서 오리피라니… 그래도 생각보다 맛있었다.
할머니께서 “한국인들이 구운 어묵도 좋아하더라"라고 하셔서 그것도 하나 추가했다.
쫄깃한 식감과 고추냉이 소스의 알싸한 맛이 딱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식감과 맛이었다. 배가 터질 것 같이 불러왔지만, 할머니의 추천 메뉴들은 확실히 하나같이 다 맛있어서, 하나도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었다.
어묵집에서 배부르게 저녁밥을 먹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
편의점에 들러서 간식으로 마실 파파야 우유도 하나 구입했다.
파파야우유라니, 무슨 맛일지 상상이 안 되지만, 궁금하니까 일단 먹어보기로 했다.
대만 9일 차, 점점 더 대만 생활에 적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