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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도피] 3.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36살, 퇴사하고 대만 한 바퀴

by 나나


청주에서 대만 타이베이까지는 약 2시간 30분.

감기약 기운에 푹 잠든 사이, 비행기는 어느새 타오위안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무겁게 감겨 있던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올리니 창밖에는 낯선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아, 이제 진짜 여행이 시작되는구나.’

긴장이 조금씩 밀려왔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정신을 바짝 차렸다. 초행 티를 내고 싶지 않았지만, 모든 게 처음이라 어쩔 수 없이 '어버버'거릴 수 밖에 없었다. 출국 전에 그렇게 꼼꼼히 체크했던 e-gate 절차도 기억 저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생체 정보 등록을 하지 않은 나를 e-gate는 당연히 통과시켜주지 않았다. 공항 직원의 안내로 이민국 사무소를 다시 찾아가 지문과 얼굴 정보를 등록하고 나서야, 간신히 입국을 마칠 수 있었다.


벌써부터 조금 지치기 시작했다.

'과연 내가 이 여행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짐을 찾고, 곧장 '럭키 드로우(대만 여행 지원금)' 부스로 향했다. 럭키 드로우는 대만 관광청에서 운영하는 이벤트로, 당첨되면 무려 5,000대만달러의 여행 바우처를 받을 수 있다. 5,000대만달러라니, 대만 배낭 여행자에게는 너무나 쏠쏠한 금액이 아닐 수 없다.


'제발!! 제발!!!'


당첨되면 그 돈으로 무엇을 할지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버튼을 클릭했다. 하지만 욕심이 너무 과했나? 결과는 낙첨. 아쉬움을 뒤로한 채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번체자가 아직은 낯설게 느껴졌다.


편의점에서 도넛 두 개와 모리화차 한 병을 사들고, 타이중행 1860번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내가 버스를 잘 탄 건가? 이 버스가 타이중 가는 것 맞지?'


긴장을 해서 그런지, 손에 땀이 났다. 바짓춤에 손바닥을 몇 번씩 비벼대며 버스 내부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버스 안은 생각보다 굉장히 쾌적했다. 블로그에서 읽었던 다른 여행 수기에서는 버스 내에 화장실이 있다고 했는데 이 버스에는 내부 화장실이 없었다. 오히려 좋았다. 또한 차표값을 365대만 달러로 알고 있었는데, 268대만 달러만 받아서 어리둥절했지만, 그 차이를 물어볼 만큼의 정신 상태가 아니었다.


'에잇, 몰라!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싸면 좋은 거겠지.'


계획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가는 모양새지만 겨우 이런 일에 스트레스받지 않기로 했다.

어이없게도 도넛은 버스에서 먹겠다고 사놓고, 무심코 캐리어에 넣어 화물칸에 실어버렸다. 경량 패딩도 꺼내지 못해, 한참을 덜덜 떨며 버텼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황당한 내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예전 같았으면 짜증을 냈을 나인데, 이번에는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차분했다.



창밖 풍경이 흐르듯, TWS의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가 이어폰 너머로 흘러나왔다.


첫 만남은 너무 어려워
계획대로 되는 게 없어서
-TWS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중에서

'그렇네,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어쩌면 이 노래처럼, 처음은 늘 어설프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꼭 나쁜 건 아니니까, 괜찮다.




타이중에 도착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창 밖의 펼쳐진 낯선 풍경들에 적응할 수 있었고, 드넓게 펼쳐진 야자수를 보자 내가 드디어 대만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렇게 약 2시간을 달려 도착한 타이중.



나를 제외한 모든 버스 승객들이 타이중 역에 도착하기도 전에 내려서 버스에 남은 건 나와 기사 아저씨 단둘뿐이었다.

"혼자 왔어요?" 아저씨의 질문이 대화의 시작이 되었다.

중국어는 오랜만아리 어색했고, 아저씨의 사투리는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우린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퇴사하고 한 달간 대만 환도 여행을 하러 왔다고 하자, 아저씨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용감하네요! 대만에서 좋은 기억만 가지고 가길 바라요."

그 말에, 문뜩 마음이 따뜻해졌다.


첫인상이란 결국 사람의 얼굴을 닮는 법이다.

타이중역 앞에서 "여행 잘 해요. 응원할게요."라며 캐리어를 건네주던 아저씨의 친절한 미소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조금은 뚝딱거려도
어색한 인사까지도
너와 나의 첫 만남
우리의 사이 Beautiful
-TWS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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