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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도피 29. 유바이크 타고 롱판공원으로(1)

36살, 퇴사하고 대만 한 바퀴

by 나나

대만 환도(環島) 여행 12일 차.


드디어 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하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지나간 나의 대만 이야기를 회상해 보면 컨딩에서의 이 날은 나에게 큰 도전이었고, 여행에서의, 그리고 여행 후 내 인생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오늘은 스쿠터를 빌려서 컨딩을 여행하기 한 날.


아침으로 간단하게 전날 미리 구입해 뒀던 롄우와 흑임자 두유를 먹었다.

롄우는 아삭아삭한 식감에 물 많은 배와 비슷한 맛인데, 아주 시원하고 먹고 나면 속도 편하다. 대만에서 와서 참 자주 먹는 과일 중 하나이다. 흑임자 두유는 편의점에서 “오늘은 뭔가 특이한 음료를 마셔볼까?” 하고 도전한 음료인데, 나쁘지 않았다.


아침밥을 든든하게 먹고 어제 미리 알아둔 스쿠터 렌털숍으로 갔다.

스쿠터를 처음 타본다는 내 말에 사장님께서 진짜 간단하다. 자전거만 탈 수 있으면 다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스쿠터의 시옷 자도 못 타는 사람은 스쿠터를 탈 수 없었다. 심지어 난 자전거도 어제 처음 타봤다. 공터에서 사장님의 속성강의를 들었는데, 나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머리와 몸이 따로 놀았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렌털숍 사장님은 진지한 표정으로 "넌 그냥 유바이크를 타는 게 어때?"라고 하셨다.

나도 괜히 무리하지 말자며, 사장님의 말대로 유바이크를 타기로 했다.



대한민국의 대표 뚜벅이인 나는 자전거를 아주 어릴 때 배워놓고,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었다. 학생 시절에는 집 - 학교만 다녔고, 직장인이 된 후에는 집 - 회사만 다녔으니, 버스를 타면 됐기 때문이다. 딱히 자전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번 컨딩 여행의 목적지나 다름없는 롱판공원을 가기 위해서는 스쿠터 아니면 자전거인데, 별도의 선택지가 없었다. 내가 웃으면서 "혹시 롱판공원까지 걸어갈 수 있어요?"라고 물어보니 스쿠터 렌털숍 사장님께서 '얘가 지금 제정신인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뜯어말리셨다.


띠로 롱, 하는 소리와 함께 유바이크 거치대에서 오늘 내 발이 되어줄 유바이크 한 대를 꺼냈다. 그리고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그리고 바로 넘어졌다.


"으악!!"

순간 머릿속에 '아, 가지 말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 마음속에서 왠지 모를 오기가 생겨났다.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왜 못 해! 할 수 있어!!


다시 이를 악물고 자전거를 탔다.


다행히 컨딩은 지나는 차가 많지 않았다. 자전거로 차도를 달리다가 다리가 아파지면 중간중간 멈춰서 풍경을 감상했다. 내 옆을 슝-하고 지나가는 스쿠터, 오토바이들을 바라보면 마음이 조급해졌지만, 그럴 때마다


"그래, 천천히... 급할 거 없어."


를 천만번 되새겼다.


쫓기는 거 아니니까 체력이 되는 범위에서 쉬어가며 움직이자.



중간에 이곳에 딱 하나 있는 스벅에 가서 컨딩 시티컵을 구경했다. 예쁘지만 살 수 없으니 핸드폰 사진으로만 담아보았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며 여유롭게 쉬다가 다시 페달을 밟았다.



바람이 장난이 아니었다.



열심히 달려서 촨판스까지 왔다. 하지만 주변 도로가 공사 중이라 먼지기 너무 심했다.


‘와다다다!’ 굉음을 내며 아스팔트를 깨는 소리 때문에 촨판스를 볼 여유가 없었다.

대충 가져간 물로 목만 한번 축이고 다시 페달을 밟았다.


다리가 아프면 멈춰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대만에 와서 참 많은 바다를 봤는데, 컨딩에서 본 바다는 너무나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그 오묘하고 아름다웠던 바닷물 색과 시원한 바람, 뜨거운 햇빛.

대만에 오기 전, 여행 책으로만 읽고 늘 상상했던 아름다운 컨딩의 모습 그대로였다.



컨딩은 버스 배차시간도 엉망이고, 택시는 아예 찾아보기 힘들 정도기 때문에 스쿠터가 없으면 참 다니기 어려운 곳이다.


그래서 어제만 해도 “아, 괜히 왔다. 도시로 돌아가고 싶다.”를 외쳤는데, 푸르른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아, 컨딩에 정말 잘 왔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다.)


스쿠터로 달리면 1시간이면 올 수 있는 거리를 나는 유바이크를 타고 2시간이나 걸려 어롼비 등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유바이크에서 내리자, 무릎에 힘이 쭉, 빠지면서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보이지 않는 적과 17대 1도 싸운 것처럼 온몸이 아팠지만,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졌다.

바닷바람 때문에 모자를 쓸 수 없어서 머리는 산발이 되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너무 배고팠다.

어롼비등대 주차장을 둘러보다가 그냥 눈에 보이는 아무 식당이나 들어갔다. 식당 안에는 허름한 선풍기 한 대가 탈탈거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음식 주문해도 되나요?”

조심스럽게 여쭤보자 한가롭게 TV를 보고 계시던 할아버지 사장님이 편하게 앉으라고 하셨다.

메뉴판을 쓱 살펴보고는 해산물 볶음면과 시원한 콜라 한 캔을 주문했다.


볶음면 한 그릇이 뚝딱 나왔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고추장 줄까?”라며 중국풍의 고추장 소스병을 시크하게 테이블에 놓고 가셨다.

중국풍 고추장을 접시 옆에 조금 뿌려준 후, 볶음면을 와구와구 먹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내가 음식을 먹기 시작하자, 다시 TV로 고개를 돌리셨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볶음면을 와구와구 먹다가, 할아버지께 “여기서 롱판공원까지 걸어갈 수 있나요?”라고 여쭤보았다. 할아버지는 나를 이상하게 보며 “스쿠터를 타면 금방 갈 수 있단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스쿠터를 운전하지 못한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잠시 고민하시더니, 나에게 “지금은 너무 더워서 걸어가면 힘드니까 유바이크를 타렴. 오르막길이 있어서 힘들 수는 있는데, 내려오는 건 금방 올 수 있어.”라고 하셨다.


너무 힘들어서 유바이크는 이제 그만 타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어롼비등대를 먼저 보고, 롱판공원까지 다시 유바이크를 타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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