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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도피 30. 유바이크 타고 롱판공원으로(2)

36살, 퇴사하고 대만 한 바퀴

by 나나

맛있는 볶음면을 든든하게 먹고, 식당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롱판공원까지는 다시 유바이크를 타기로 했다.

롱판공원까지 갈 방법을 결정했으니, 일단은 어롼비 등대를 보기로 했다.


티켓을 끊고 들어간 어롼비 등대


대만 환도 여행을 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가볍고 예쁜 수첩 한 권을 챙겨 오지 못했다는 점이다.

대만은 여행지 곳곳에 그곳을 기념할만한 독특한 디자인의 스탬프들이 비치되어 있는데, 가는 곳마다 스탬프를 찍어 기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수첩을 가져오지 않은 나는 아쉽지만 티켓에 스탬프를 찍어보았다.


언덕을 한참 올라갔다.



그리고 드디어 어롼비 등대를 마주할 수 있었다.

푸른 하늘과 녹색의 들판, 그 위에서 서 있는 하얀색의 등대까지!

정말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풍경이었다.


대만에 오기 전,

여행 가이드 책에서 어롼비등대의 사진을 보고, 컨딩에 오게 되면 이곳만큼은 꼭 가야지하고 다짐했었다. 꿈은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하던가! 드디어 어롼비 등대의 실물을 보게 되자, 마음이 벅차올랐다.

다리도 아프고, 온몸이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음에도 모든 고통을 잊는 기쁨이었다.


불과 몇 주전 나는 한국에서 우울과 싸우며 죽음을 바라던 사람이었다.

매일 아침 울며 출근했고, 회사 바로 앞에 있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간절하게 죽음을 바라고 또 바라왔었다. 여기서 죽거나 또는 다치면 산재처리를 받을 수 있을까? 출근길에 다치는 거면 산재처리가 되는 걸까? 내 머릿속은 온통 그런 생각뿐이었다. 어떻게 죽어야 날 괴롭히던 사람들에게 가장 처절하게 복수할 수 있을까? 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죽어야 할까? 불과 몇 주전의 나는 그런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지금 대만을 한 바퀴 돌겠다고 한국을 떠나왔고, 무려 목표치의 절반이나 와 있었다!

따뜻한 햇빛과 마음까지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푸른 하늘!

배경음악처럼 늘 따라다니는 시원한 파도 소리까지!!

늘 나를 괴롭히던 우울함도 짜증도 모두 사라져 있었다.

이것이 여행이 주는 신비한 힘이다. 정말 이곳에 오기를 잘했다.






어롼비등대 뒤에 있는 작은 샛길을 따라 걸어갔다.

잠시 후 어롼비 등대 끝 해안 전망대에 도착했다.



마침 대만인 부부가 있어서, 그분들께 사진 한 장을 부탁드렸다.

이것을 계기로 이 분들과 참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아저씨 내외분은 타오위안에서 회사를 다니시다가 지금은 은퇴를 하고 함께 대만 전역을 여행하고 있다고 하셨다. 사실 아저씨께서 하시는 말씀 속도가 굉장히 빨라서 절반은 알아듣고, 절반은 못 알아들었지만, 그럴 때마다 사모님께서 좀 더 쉬운 표현으로 다시 설명해 주셨다.


"꿈을 찾기 위해 여행을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네요! 용감해요!"

아저씨 내외분께서는 외국인이 내가 혼자 환도 여행을 하고 있는 모습이 대견했는지, 참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아저씨 내외분과 대화를 하며 어롼비 등대를 내려왔다.

그리고 주차장까지 내려왔을 때, 아저씨는 나에게 악수를 권하셨다.


“여행 즐겁게 하렴! 대만에 대해 좋은 추억이 많이 생기길 바라마.”

“정말 감사합니다.”


아저씨 내외분과 기분 좋게 헤어지고, 다시 유바이크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다.

해안가라서 그런지 예쁜 조개 장식품들을 참 많이 판매하고 있었다.






남은 힘, 체력을 박박 긁어모아 다시 유바이크를 탔다.

익숙하지 않은 자전거 탑승에 무릎과 허벅지가 터질 것 같이 아파왔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를 악물고

“내가 그놈의 롱판공원을 꼭 가고 만다!!!"라고 외쳤다.

어차피 주변에 아무도 없어도 크게 소리를 질러도 별로 부끄럽지 않았다. 이제는 내게 남은 건 취미 발레를 하면서 다져진 악바리 정신뿐......



한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길이 너무 힘들었다. 분명 식당 할아버지가 오르막길은 조금밖에 없고 대부분 평지길이라서 안 힘들 거라고 하셨는데, 전혀 아니었다.


익숙하지도 않은 유바이크를 타고 오르막길을 올라갈 자신이 없었다. 결국 유바이크를 끌고 천천히 오르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의 주제곡이나 다름없는 CCM ‘행복’을 흥얼거리며 걸어가고 있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남자가 갑자기 멈춰 서서 나에게 다가왔다.


“너 괜찮니? 자전거가 고장 났니? 내가 뭐 도와줄까?”

삔랑을 많이 씹었는지, 치아가 새카맣게 변색되어 있는 남자는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내 모습을 보고는 자전거가 고장 나서 내가 끌고 가는 것인 줄 오해하고는 도와주겠다며 말을 걸어온 거였다.

나는 남자에게 자전거는 아주 멀쩡하고, 그저 내가 자전거로 오르막길 올라가기 힘들어서 천천히 걷는 거라고 설명해 줬다. 남자는 "여길 자전거로 간다고?"라며 놀라워하더니, 힘내! 를 외치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동안 수많은 차와 오토바이가 지나가도 나에게 아무도 관심이 없었는데, 굳이 유턴까지 해서 내게 말을 걸어주다니...

대만에 와서 참 정 많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것 같다.

이런 사소한 만남조차도 나에게는 참 감동으로 다가왔다.



감동적이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자전거를 탔다.

아아, 구글맵은 나에게 계속 언덕길을 추천했다. 일단 구글맵이 시키는 대로 오르막길을 올라갔다.


“이 씨! 구글맵!! 이 삐삐삐—!!”

큰 소리로 욕을 해도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에 더 신이 나서 욕을 내뱉었다. 그동안 구글맵의 잘못된 안내로 내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하지만 언덕 정상에 올랐을 때, 나는 바로 구글맵에게 사과했다.



아, 이 풍경을 보여주려고 나를 오르막길로 안내했구나.

문뜩, 오늘 하루 종일 불러댔던 CCM ‘행복’의 노랫말이 떠올랐다.



“화려하지 않아도, 정결하게 사는 삶.

가진 것이 적어도, 감사하며 사는 삶.”



이 풍경을 볼 수 있는 지금에 감사했다.

눈앞에 펼쳐진 이 아름다운 자연에 감사했다.


갑자기 눈물이 나서 한참을 울어댔다.

그저 내가 이곳에 서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행복해서 눈물이 흘렀다.

노래의 가삿말처럼 비록 내가 가진 것이 적고, 화려한 삶은 아닐지언정,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며 살아겠다노라 다짐했다.



아, 정말 이곳에 오길 너무 잘했다.



상쾌한 바닷바람에 눈물 자국을 다 날려버리고, 조금 더 힘을 내기로 했다.



그리고 이번 컨딩 여행의 최종 목적지였던 롱판공원에 도착했다.



이 아름답고 찬란한 풍경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 컨딩 파출소에서 롱판공원까지 쉬엄쉬엄 장장 4시간 이상을 달려서 왔다. 거센 바람으로 인해서 스쿠터로 오기도 힘든 곳인데, 나는 이곳을 자전거, 그것도 유바이크를 타고 올라온 거였다. 스스로 무척 대견스러웠다.


나도 한다면 다 할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나는 정말 용감한 사람이구나.


그동안 스스로를 '쓸모없는 존재', '무가치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를 없애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리기로 했다.

나는 쓸모없는 존재, 무가치한 존재가 아니었다. 나는 아주 용감하고, 도전정신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하고자 마음먹으면 꼭 이루는 사람이고,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스스로가 무척 자랑스러웠다.


이 순간을 기념하고 싶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사진 한 장을 부탁했다.

거센 바람 탓에 머리가 엉망진창으로 휘날렸지만, 그것마저도 좋았다.


"안녕, 롱판공원

다음에는 꼭 오토바이 운전하는 거 배워서 올게.

그때까지 이 예쁜 모습으로 날 기다려줘."


롱판공원을 뒤로하고 다시 자전거를 탔다. 그리고 힘들게 올라왔던 오르막길을 신나게 내려갔다.

어롼비 등대의 식당 할아버지 말씀대로 올라가는 건 힘들었지만, 내려오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어롼비 등대 주차장에 거의 도착했을 때, 긴장이 풀렸는지 주차장에 있는 입간판과 크게 충돌해 버렸다. 내가 급커브를 틀다가 입간판을 못 보고 그래도 박아버린 거였다. 그 모습을 정면으로 목격하신 주차장 직원 아주머니께서 후다닥 나오셔서 “괜찮니?”하고 물으셨다.


거의 다 와서 크게 넘어진 것이 민망도 했지만, 혹시라도 자전거가 고장 났을까 봐 더 두려웠다.

나는 밀려드는 민망함을 애써 숨기며,

“네네, 괜찮아요! 아이고, 놀랬네요! 아하하”하고 훌훌 털고 일어났다.

아주머니께서는 내 모습을 보더니 "안 다쳐서 다행이네."라고 말씀하시고는 다시 본인의 사무실로 들어가셨다.



숙소까지 계속 유바이크를 탈까... 하고 고민하다가,

마침 어롼비등대에서 출발하는 컨딩 익스프레스 버스가 와서 바로 그것을 타기로 했다.



우스란에 가서 쩐주나이차 한 잔을 구입한 후, 잠시 숙소 앞 바닷가에서 오늘의 익스트림했던 하루를 회상해 보았다.



나는 한국에서 자전거의 '자'자도 안 타던 사람이라, 그 흔한 공유 킥보드도 못 타는 사람인데 어떻게 내가 자전거를 타고 차도를 씽씽 달렸을까?


왠지 앞으로 어떤 어려운 일이 생겨도 이 날을 생각하면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저녁이 되니까 아까 어롼비 등대 주차장에서 부딪쳤던 손가락이 점점 아파졌다.

살펴보니 어느새 푸르뎅뎅하게 멍이 들어있었다. 살짝 만져보니 움찔! 할 정도로 아팠다. 하지만 이곳에서 병원을 가려면 헝춘까지 나가야 해서, 곧장 약국에서 파스를 하나 사서 붙였다. 그리고 겸사겸사 어제 서핑하면서 삐끗한 손가락에도 하나 더 붙여줬다.


파스는 중국어로도 파스였다.


숙소에 돌아와서 사장 아주머니께 오늘의 내 모험담을 이야기했다. 사장 아주머니께서는 엄청 놀라워하시면서 스쿠터로도 가기 힘든 곳을 자전거로 갔다며 나에게 '크레이지 걸'이라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좀 어처구니없고 우스웠기에 맞다고, 내가 좀 '크레이지'하다며 깔깔 웃어댔다.



자전거 탈 때는 미처 몰랐는데, 손등이 시커멓게 타있었다.

이럴 줄 알고 내가 피부 화상 연고를 가져왔나 보다. 화상 연고도 바르고 파스도 붙여줬다.

새카맣게 탄 손등과 파스로 도배된 손가락이 마치 영광의 상처 같아서 멋있었다.


컨딩에서의 하루가 또 저물어 간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어제도 갔던 국숫집에 다시 찾아갔다.

이번에는 이미엔과 물만두를 시켜 흡입(?)했다.

왠지 오늘은 이 정도 먹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리고 컨딩 야시장도 한 바퀴 돌고 숙소로 돌아갔다.



어쩌면 그동안 살아왔던 내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고, 다이내믹했던 하룻밤이 이렇게 저물어 간다.




아, 정말 컨딩에 오길 잘했다.

정말 행복하다.

오늘은 왠지 좋은 꿈을 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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