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살, 퇴사하고 대만 한 바퀴
타이동.
타이베이 같은 대도시와는 사뭇 다른 이곳은 생각보다 대중교통도 훨씬 불편하고, 여행 관련 정보도 적은 곳이다. 때문에 나는 이곳에 오기 전, 타이동이 얼마나 큰 지역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이곳에 도착한 후에야 타이동이 단순히 한 도시를 지칭할 뿐만 아니라 현단위(우리로 치면 도 단위)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동안 내가 여행 가이드 책에서 보았던 삼선대나 타이마리 등이 모두 타이동시가 아닌 타이동 현 내에 있는 다른 지역에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여행자 서비스 센터에서 받은 타이동 지도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타이동에 대한 정보를 찾으면 찾을수록, 이 타이동에서 고작 2박 3일만 머물 계획을 세웠던 과거의 내가 무척이나 원망스러웠다.
대체 어떻게 해야 남은 2일 동안 타이동을 알차게 여행할 수 있을까? 수많은 고민 끝에 오늘은 근교 지역으로 반나절 여행을 가기로 했다.
가고 싶은 곳은 굉장히 많았는데, 시간 관계상 그중 가장 가고 싶었던 츠샹만 가기로 했다.
아침밥을 대신해서 어제 사놓은 생선찹쌀떡을 하나 먹었다. 딱딱해졌을까 봐 걱정했는데, 여전히 말랑말랑하고 쫄깃한 식감이었다. 특히 로우송(肉鬆)같이 생긴 생선 보푸라기(?)가 들어있는 생선찹쌀떡은 단짠의 조화가 환상이었다. 비상식량으로 보관하고 있던 다른 찹쌀떡까지 모조리 먹어버렸다. 1개만 먹고 입을 닦기에는 너무 맛있었다.
같은 방을 쓰고 있는 룸메이트들은 아직도 꿈나라 여행 중인지라, 나만 살금살금 밖으로 나와서 역으로 향했다.
아침 일찍 미리 예매해 둔 기차표를 수령하고,
잠도 깰 겸, 달달한 동과차를 한잔 마셨다.
시원하고 달콤한 맛이 장기간의 여행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었다.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있길래, 타이동역에 있는 여행자 서비스센터에 가서 내일 이용할 타이동 하오씽 버스표도 미리 구입하기로 했다. 사실, 타이동 시내에 있는 편의점에서도 타이동 하오씽 버스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고 하는데(역에 있는 편의점은 안 됨) 나는 “전 외국인이라 어떻게 사는지 몰라요. 도와주세요~”라며, 외국인 찬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대만 사람들은 정말 친절하다.
특히 시골로 내려갈수록 그 특징은 더 명확하다. 하지만 내가 만나본 타이완 사람들 중에서 이곳 타이동 여행자 서비스 센터의 직원들만큼 친절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단연코 이곳의 직원들이 가장 친절했다. 무려 두 사람이 와서는 타이동 하오씽 버스표 예매 방법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구매까지 일사천리로 도와주었다.
"자, 예매를 다했어요. 이 예약번호를 사진으로 찍고 내일 버스 기사에게 보여주세요."
나중에 알게 된 부분이지만 타이동 하오씽 버스는 당일에 남아있는 좌석이 있다면 티켓을 끊지 않고, 이지카드를 찍고서도 탑승이 가능하다. 숙소에서 알게 된 핑동 친구는 티켓을 사지 않고, 이지카드를 찍으면서 하오씽 버스를 이용했는데, 친구가 버스 가격을 확인해 보더니 이지카드를 찍고 탑승하는 쪽이 더 저렴하다고 말했다. (단점은 상, 하차에 모두 찍어야 해서 조금 귀찮다.)
드디어 츠샹으로 출발하는 기차의 탑승시간이 되었다.
타이동에서 츠샹까지는 약 30분 정도로 반나절 당일치기하기 딱 좋은 거리였다.
츠샹역에 도착한 안내 멘트를 듣고, 츠샹역에 하차했다.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왔다.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츠샹역에 도착했다.
다른 대도시의 기차역들처럼 크고 웅장하지는 않지만 소박한 시골역, 그 특유의 분위기가 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대만은 따뜻한 기후로 인해 1년 2 모작, 남부로 내려가면 3 모작까지도 가능한 나라이다.
그만큼 쌀을 많이 재배하는데, 그중에서 타이동, 특히 츠샹의 쌀은 대만에서도 무척이나 유명한 명품쌀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츠샹의 대표 볼거리는 바로 끝없이 펼쳐진 아름다운 논. 예전에 배우 금성무가 에바항공 광고를 찍어 유명해진 보랑대도와 그 일대가 바로 츠샹에 있다.
오늘은 대만의 대표적인 농촌, 츠샹의 풍경을 실컷 보고 점심으로 츠샹의 쌀로 만든 도시락을 먹기로 했다.
자전거를 타고 보랑대도까지 달려볼까? 했지만, 이른 오전부터 햇빛이 뜨거웠다. 재빨리 자전거 탈 생각을 접고, 역 앞에서 택시를 타고 보랑대도까지 향했다.
택시를 타고 달리면서, 창밖에 펼쳐진 환상적인 풍경에 나는 몇 번이나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대만은 비가 자주 오는 나라로 유명한데, 여행하는 동안 비 오는 날이 없었으니(비가 와도 새벽에 살짝 내리고 그침), 날씨마저 이번 여행을 도와주는 듯했다.
보랑대도 초입에 도착할 무렵 택시 아저씨께서 여기서 역으로 돌아갈 때는 어떻게 갈 거냐고 물으셨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날씨가 좋으니까 쉬엄쉬엄 걸어갈게요. 음, 약 1시간 정도 걸릴 것 같네요.”라고 답했다.
아저씨께서 깜짝 놀라면서 본인의 명함을 건네셨다.
“이 날씨가 1시간씩 걸으면 병나니까 돌아갈 때쯤 나한테 전화하렴. 내가 다시 이쪽으로 올게.”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보랑대도는 걸어서 다니기에는 무척 힘든 곳이니까 자전거를 빌려야 한다며 자전거 렌털샵 앞에 나를 내려주셨다. 그렇게 아저씨가 떠나시나 보다.. 했는데, 아저씨께서 갑자기 렌탈샵 직원에게
“얘 한국인인데, 여기 혼자 왔대, 자전거 제일 좋은 걸로 빌려줘.”라고 말씀해 주셨다.
택시 아저씨의 친절함에 무척이나 감동을 받았다. 그냥 내려주고 가도 되는 상황이었는데, 하나라도 더 도와주고 싶어 하는 그 모습이 너무 감사했다. 택시 아저씨 덕분에 속전속결로 자전거 렌털샵에서 좋은 자전거를 한 대 빌릴 수 있었다.
그렇게 택시 아저씨는 떠나시고, 나는 자전거를 타고 쭉 뻗은 보랑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쌩쌩 달리는 차도 없고, 오르막길도 없고, 커브도 없는 이 잘빠진 도로를 달리고 있자니...
“이건 너무 쉬운데?”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미 컨딩에서 혹독한 자전거 훈련을 한 나에게 쭉 뻗은 보랑대도를 달리는 것은 누워서 식은 죽먹기였다.
생각보다 한산하다고 생각했는데, 보랑대도의 포토존에 도착해 보니 그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보랑대도에 온 관광객들은 다 이곳에 몰려있다고 느낄 정도로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때문에 나 역시도 이곳에 도착해서 한참을 기다린 후에 간신히 인증샷을 찍을 수 있었다.
"저.. 사진 한 장만 부탁해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내 뒤에 서있는 여자분에게 사진을 부탁하며, 포토존 앞에 섰다.
그런데 내 핸드폰을 유심히 보던 대만 여자분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눈치챘는지, 갑자기 한국어로 “예뻐요~예뻐요~”를 라며 사진을 찍어주기 시작했다.
그녀의 일행으로 보이는 다른 여자분이 그곳에서는 이런 포즈를 해야 한다며, 포즈도 알려주시고, 다른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한국인이라며 나를 소개해주기까지 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어리둥절했지만, 나는 이런 관심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이나 덩달아 잔뜩 신이 났다.
“와, 한국어 정말 잘하시네요~”
내 칭찬에 대만 언니는 환하게 웃었다.
“한국드라마를 보고 공부했어요! 한국 너무 좋아요!”
아, 새삼스럽게 K-문화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애국심이 마구 차올랐다.
대만 언니는 자신의 가족들에게 나를 소개했고, 언니의 부모님께서는 나에게 여러 질문을 하셨다.
혼자 왔냐, 왜 혼자 왔냐, 대만에는 여행으로 왔냐 어학연수로 왔냐, 중국어는 어디서 배웠냐 등...
나는 대만에 한 달 동안 환도 여행을 하고 있고, 중국어는 중국에서 배웠다고 차근차근 모든 질문에 대답했다. 그러자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대만 사람들도 나에게 질문하고, 그렇게 잠시 내 팬미팅(?)이 진행되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보내주는 관심과 애정이 내심 기뻐서 최대한 모든 질문에 정성껏 대답하려고 노력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대만 언니네 가족과 작별하고 나도 다시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무슨 인연이 있는 것인지, 금성무 씨가 광고를 찍어서 유명해진 ‘금성무 나무’에 도착했는데 아까 만난 대만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사진 찍어줄게. 이리 와."
대만 언니가 선뜻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셔서 너무나 감사했다.
사진을 찍은 후, 자전거를 타려는 나에게 언니네 아버지께서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다 같이 사진 찍자.”라고 제안해 주셨다. 그리고 마치 한 가족처럼 오손도손 앉아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감사한 인연이 생겨서 너무나 행복하고 감사했다.
이 분들이 낯선 외지인에게 보여준 호의와 다정한 말 덕분에, 나는 대만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이 츠샹이라는 작은 도시에 대한 사랑이 더욱 깊어졌다. 나에게 이 멋진 인연을 선사한 이번 여행에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다. 이 가족들이 항상 건강하고, 행복한 일만 가득하길 바라본다.
대만 가족들과 헤어지고, 나는 또 홀로 달렸다.
초록의 논, 파랑의 하늘, 간간히 흘러가는 하얀 구름-
그리고 내 귓가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소리까지.
행복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바로 지금 이 풍경이 아닐까?
나는 혼자 또 감동에 취해서 ccm‘행복’을 열창했다.
화려하지 않아도 정결하게 사는 삶
가진 것이 적어도 감사하며 사는 삶
내게 주신 작은 힘 나눠주며 사는 삶
이것이 나의 삶의 행복이라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널게 펼쳐진 들판을 지나갔다.
큰 물레방아를 지나고,
시원한 물이 콸콸 흐르는 곳도 지나갔다.
작은 원두막 같은 곳에 도착하여 잠시 그곳에서 쉬기도 했다.
자전거를 세워놓고, 그늘에서 멍하니 논을 바라보았다.
“이 논 주인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맨날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니 부럽다. 일할 맛 나겠네.”라며
잠시 세속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내가 다친 줄 알았는지 “도와줄까?”하고 말을 걸어왔다.
"더워서 조금 쉬고 있어요~고맙습니다."라고 대답하자, 그들은 조금 뻘쭘한지 깔깔거리고 웃으셨다.
아마 본인들끼리도 내가 다쳐서 쉬고 있다. 아니다로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았다.
그들과 한참을 웃으며 대화를 나누다가 서로 "여행 잘하세요~!"라는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보랑대도를 크게 한 바퀴 도는 것은 1~2시간 정도로 짧은 시간이었는데, 그 사이에 참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이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들 덕분에 츠샹이 더욱 싱그럽고 풍요로워 보였다.
자전거를 반납하러 렌털샵으로 돌아갔다.
한 직원은 이 날씨에 츠샹역까지 어떻게 돌아갈 거냐며 나를 걱정했다. 나는 덤덤하게 주변 구경하면서 천천히 걸어갈게요~라고 했는데, 갑자기 자전거 렌털샵 사장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