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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도피 #50. 단수이에서의 시간②

36살, 퇴사하고 대만 한 바퀴

by 나나

단수이, 석양 아래의 기억


단수이의 일몰을 보기 위해 천천히 부둣가를 향해 걸었다.

소백궁과 타다이키치 고택을 지나, 유유자적한 골목길을 따라갔다.

어딘가 익숙한 붉은 꽃들이 눈에 띄었다.



"어? 대만은 이 꽃이 길에서 자라네?"


우리 집 베란다에도 있는, 그 익숙한 꽃기린.

생각해 보면 대만은 날씨 덕분인지 어딜 가나 꽃이 참 많았다.


타이중에서는 이름 모를 분홍색 꽃이 핀 커다란 나무를,

칭징농장에서는 만개한 벚꽃을,

아리산에서는 담벼락 틈새마다 다육이가 자라던 풍경을 기억한다.


아마 한국에 돌아가도, 길가에 핀 꽃들을 보면

문득 대만에서의 이 나날들이 떠오를 것 같다.


단수이의 어느 골목길




부둣가에 도착하니,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일몰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몰로 유명한 '단수이 스타벅스 흐어안먼시(河岸門市)점은 발 디딜 틈이 없어서 포기.

그 대신 밖으로 나와, 길가에서 버스킹을 감상했다.

기타 소리가 석양과 겹쳐지며,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았다.




한 외국인 가족이 나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했고, 나 역시 그들에게 사진 한 장을 부탁했다.

길쭉하게 찍힌 석양 속 내 모습이 꽤 마음에 들었다�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천천히 지는 해를 바라보다가 날이 더 어두워지기 전에 밥을 먹기로 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단수이 라오제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또우화, 부드럽고 달콤한-


단수이 라오제로 가는 길


단수이 라오제로 향하는 길.

그런데-

전방에 '또우화 가게' 발견!



또우화라면 먹어줘야지, 또우화는 못 참는다.


친절한 사장님이 계셨던 그 가게.

대만을 여행하며, 또우화를 자주 먹었는데,

이번에는 처음 도전해 보는 '땅콩또우화'에 녹두를 추가했다.

사장님께 메뉴 추천을 부탁드리니, 흔쾌히 골라주셨다.


“제가 외국인이라 뭐가 맛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럼 내가 딱! 맛있는 조합으로 드릴게요."


결과는...

정말 최고의 선택이었다.

역시 잘 모를 때는 사장님의 추천을 따르는 게 답이다.

고소하고 달콤하고, 부드럽고... 행복한 맛.




또우화를 먹으며 나눈 대화는 늘 똑같은 레퍼토리였다.


“발음이 북방식인데, 혹시 북경에서 왔니?”

“아뇨. 한국인인데요.”

“근데 중국어 발음이 되게 북방식이다.”

“응, 중국어를 산동에서 배워서 그런가 봐요.”


사장님은 환도여행 중인 한국인이라며 신기해하시고,

한국 드라마에서 배운 한국어 몇 마디를 들려주셨다.

내가 "진짜 잘하시네요!"라고 칭찬하자, 사장님은 기분이 좋으셨는지, 갑자기


“우리 가게에 왔으니까 내가 기념사진 찍어줄게!”라며

정성스럽게 사진도 찍어주셨다.


또우화 사장님이 찍어주신 사진


가게 한쪽에 계시던 사장님의 친구분과는


“각도를 위로 해야 한다.”

“아니다. 아래로 해야 한다. 위로 찍으면 비율이 엉망이다.”

하며 귀엽게 투닥거리셔서 한참을 웃었다.



단수이에서 만난 따뜻한 사람들, 오랫동안 기억날 것 같다.☺️







단수이라오제에서의 추억


달콤한 떠우화 한 그릇을 먹고,

다시 단수이라오제로 향했다.



한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대왕카스텔라 가게를 지나고,



장난감과 기념품 등을 파는 가게도 구경했다.

빈티지한 기념품이 너무 많아서 지름신이 강림했지만... 필사의 힘으로 참아냈다.



그 와중에 눈에 띈, 망사가방.


단수이 가게들마다 판매하고 있는 그 가방을 보며 사장님께 여쭤보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가방은 대만사람들의 러브야.”

그러면서, 대만 사람이라면 집에 하나씩은 갖고 있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하지만 대만 친구들에게 말했더니

“무슨 러브야. 그거 우리 엄마 시장 장 볼 때 들고 가는 가방인데.”라고 했다.


결론은 모든 국민의 러브는 아닌 걸로 판명!



결국 가방은 포기하고,

대신 왕 커서 왕 귀여운 자석을 하나 샀다.(이건 못 참지)






또우화로 속이 든든했지만,

그래도 분명 새벽에 배고플 것 같아서, 라오제에서 가볍게 탕펀도 한 그릇을 더 먹기로 했다.



내 사랑, 탕펀.


단수이 = 탕펀이다.


단수이 카스텔라도 좋지만, 진짜는 이거다. 진심으로!

사장 할아버지께서 내가 한국인인 걸 아시고는,


“너 한국인이면 고추소스 좀 넣어줄까? 한국인들은 매운 걸 좋아하지?”

하시며, 살짝 넣어주셨는데, 와! 이게 신의 한 수였다!

감칠맛이 폭발해서 놀랄 뻔했다.


“저 대만에 여행 온 지 3주 정도 되었는데, 탕펀은 처음 먹어봐요. 너무 맛있어요!”


내가 감탄을 연발하자, 사장 할아버지께서 인자하게 웃으시며,

“탕펀 만드는 것도 보여줄게”라며, 탕펀 제작 과정도 보여주셨다.

정말 간단한 재료인데, 어쩜 이렇게 맛있을 수 있지?




탕펀 한 그릇에 행복을 느끼고, 이제 숙소로 돌아갈 시간.



온천도 했고, 또우화도 먹고, 석양에, 좋은 사람들까지...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만큼은 꽉 찬 하루였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힘든 일정이 날 기다리고 있지만,

오늘의 즐거웠던 기억은 오래오래 간직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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