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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도피 #52. 국립박물원과 다정한 만남들

36살, 퇴사하고 대만 한 바퀴

by 나나

"저, 퇴사했어요."



지니발레아카데미 수업을 마친 후,

우버를 타고 국립고궁박물원으로 향했다.


택시 기사님은 여자 혼자 여행 중이라는 사실이 신기했는지, 몇 살이냐고 물으셨다.

"36살이에요."

그러자,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직업은? 무슨 일을 하길래 3월에 한 달씩이나 여행을 하니?”


나는 쿨하게 대답했다.

“아, 저 퇴사했어요^^”


... 갑자기 조용해진 차 안.


기사님은 당황하셨는지 잠시 말이 없더니, 곧장 "자유로워 보여서 부럽다."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남은 기간 동안 대만을 많이 보고, 체험하길 바란다며

따뜻한 말을 건네주셨다.


작은 대화 하나만으로도

나의 마음이 더 단단해지고, 강해진 느낌이었다.




국립고궁박물원, 그 첫인상.


국립고궁박물원
국립고궁박물원


멀리서부터 박물원의 건물이 보였다.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설렜다.


대만국립고궁박물원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 영국 대영박물관,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함께 세계 4대 박물관으로 꼽힌다.


이곳의 수많은 유물들은 국공내전 당시 중국 본토에서 가져온 것으로, 지금도 3개월에 한 번씩 전시품이 교체될 정도로 양과 질이 방대하다. 때문에 전시품 전체를 다 보려면 최소 8년이 걸린다는 말도 있다.


고궁박물원에 있는 전시품을 모두 다 보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했다.






박물관 관람을 효율적으로 하는 3가지 방법


1. 한국어 도슨트 투어

- 가장 핵심적인 유물들만 골라, 역사적인 맥락까지 설명을 들을 수 있다.


2. 대만국립고궁박물원 홈페이지 추천 코스

- 공식홈페이지( www.npm.gov.tw )에서 테마별 코스를 선택해 직접 둘러보는 방법




3. 오디오 가이드 대여

- 입장권을 구입하면서 오디오 가이드를 함께 대여할 수 있다. 전시품 번호를 입력하면 해설을 들을 수 있다.

(대여 시 여권/신분증 제시 필수)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했다.


나는 시간이 부족해서 2번과 3번을 혼합해서 관람했고,

사실... 가끔 도슨트 무리에 살짝 끼어서 몰래 설명을 엿들으며 다니기도 했다;




유물 속, 찬란한 이야기들


그동안 꼭 보고 싶었던 유물들을 실제로 마주하는 순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감동적이었다.



파란색 그림이 그려진 사진 속 도자기가 참 인상적이었다.

너무 예뻐서 저 도자기는 무슨 용도였을까? 하고 궁금했는데 꽃에 물을 주는 주전자였다고 한다.

원예용 물조리개마저도 예사롭지 않았던 청나라.


고궁박물원의 전시품들은 모두 가치 있고, 귀한 것들이지만

그중 가장 사랑받는 전시품들을 고르자면 단연 육형석과 취옥백채이다.


이 두 가지는 워낙 가치 있는 예술품들이라 대만 전역으로 출장 전시가 잦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립고궁박물원에서 관람하기 어려운 것들인데,

나는 매우 운 좋게 육형석과 취옥백채를 모두 관람할 수 있었다.



�육형석

육형석


동파육은 말 그대로 동파육처럼 생긴 돌 조각품이다.

실제로는 마노라는 보석인데,

작가가 그 갈색 무늬를 정교하게 가공하고 염색해서 진짜 고기처럼 만든 것이라고 한다.


대체 어떤 생각으로 이 보석을 보고 '동파육'을 연상할 수 있었을까?

'창의력의 끝판왕'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취옥백채

취옥백채

이름 그대로, 옥으로 만든 배추 조각.

이 취옥백채는 근비라는 여인이 청대 광서제에게 시집오면서 해온 혼수품 중 하나라고 한다.

이 작은 배추 안에는 여치와 메뚜기도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다산과 풍요를 상징한다.


사실, 이 옥은 상품 가치가 높지 않은 '하품의 옥'이었지만,

장인이 그 자연스러운 색감을 살려 잎사귀와 줄기를 표현하고,

균열마저도 엽맥처럼 살렸다고 한다. 그 정교한 기교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배추 위의 여치와 메뚜기



�벽옥오어화삼

벽옥오어화삼


이 꽃병도 굉장히 아름다웠다.


푸른 옥으로 만든 꽃병에 물고기 두 마리가 하늘로 튀어 오른 모습.

이는 '등용문', 즉 과거 급제나 신분 상승의 표현이다.


이렇듯, 꽃병 하나에도 당시 사람들의 마음과 염원이 담겨 있었다.

그저 예쁜 유물들을 보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값진 시간이었다.




국립고궁박물원에서 알찬 시간을 보낸 후, 학원 근처에 있는 네이후로 향했다.



네이후는 관광지에서 완전히 벗어난 곳이었다.


내가 찾아간 무윈 스튜디오의 선생님은 굉장히 친절했고, 섬세했다.

다정한 선생님과 수강생들 덕분에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다시 메인 스테이션에 돌아갔다.

생각해 보니 아침 우육면 이후 제대로 먹은 게 없었다.

너무 배고파서, 신광 미츠코시 백화점 근처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새우튀김 덮밥을 주문했다.


맛있는 새우튀김 덮밥


주문은 QR코드로 해야 했는데, 데이터가 잘 터지지 않아서 당황스러웠다.

그때 옆자리 아저씨께서 대신 도와주셨다.

이런 사소한 친절 하나하나가 마음을 적신다.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지하상가에서 우연히 네일아트 가게를 발견했다.

손톱 상태가 영... 마음에 걸렸던 참이라, 홀린 듯이 가게로 들어갔다.


네일아트를 해보자


가게 안에는 KOREA X TAIWAN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고,

계속해서 한국 드라마 ost가 흘러나왔다.



큐티클 정리와 원컬러 젤네일을 받고 있었는데,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스태프들이 한국 여행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부산에서 돼지국밥을 못 먹어서, 김밥만 먹었다는 이야기-

제주도가 대만과 비슷해서 좋았다는 이야기까지..


그러면서 나에게

한국의 드라마, 배우, 음악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는데,

사실 나는 연예계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열심히 네이x으로 검색해서 알려주었다�





외국인들이 한국을 이렇게 좋아하는데 정작 나는 한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잠시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져보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대만 친구들이 말해준 한국 관광 코스를 들으며, 마음이 조금 씁쓸해졌다.


"경복궁 보고, 인사동 들르고, 홍삼 사고, 명동에서 화장품 사고..."


우리가 정말 자랑스러워해야 할 진짜 한국의 문화는

과연 잘 전달되고 있을까?

앞으로 한국이 어떤 이미지를 줄 수 있을지,

그리고 나는 어떤 방식으로,

그 문화를 소개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본다.






오늘도, 찬란한 하루


네일 가게 퇴근 시간은 9시였지만,

내 손톱 상태가 워낙 심각해서 결국 9시 40분에야 끝이 났다.


너무 죄송해서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인사했더니,

매니저님은 "괜찮다."며 대만에서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고 가길 바란다고 해주셨다.


그 손길, 그 말 한마디에

오늘 하루의 피로가 싹 씻기는 듯했다.


게다가 네일의 퀄리티도 만족스러웠다.

반짝반짝해진 내 손



아침부터 화산 1914,

낮에는 고궁박물원,

밤에는 네일아트까지...

정말 바쁘고 다채로운 하루였다.


귀국이 가까워질수록 대만에서의 시간들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내일은 또 어떤 순간, 어떤 만남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 무엇이든,

오늘처럼 다정하고 찬란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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