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도피 #72. 보장암 국제 예술촌 산책하기

36살, 퇴사하고 대만 한 바퀴

by 나나


쑹산문창원구를 둘러본 후, 곧장 우버를 불러서 보장암국제예술촌으로 향했다.


우버 아저씨와 짧은 수다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보장암 근처에 도착했다.

하지만 보장암 입구까지는 차량 진입이 어렵다며, 주차장에서 내려주셨고, 그때부터가 작은 모험의 시작이었다.


보장암 입구를 찾을 수 없어, 한참을 헤매다가, 결국 다른 관광객들의 뒤를 따라가며 겨우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나중에서야 더 쉬운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숲길을 돌아 들어가는 과정도 나쁘지 않았다.


보장암국제예술촌으로 향하는 길
보장암 입구


드디어 도착한 보장암.

보장암국제예술촌

100台北市中正區汀州路三段230巷14弄2號

No. 2, Alley 14, Lane 230, Section 3, Tingzhou Rd, Zhongzheng District, Taipei City, 대만 100


이곳은 타이베이와 신베이의 경계, 신덴천을 따라 자리 잡은 작은 마을이다.

부산의 감천문화마을이나 통영 동피랑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막상 걸어보면, 보장암국제예술촌은 훨씬 더 조용하고, 더 생활에 가까운 온도가 느껴진다.


보장암국제예술촌은 1960년대 ~ 70년대 중국에서 피난온 피난민들이 정착하며 형성된 마을로 무허가 건축물로 가득했던 곳이다.

한때 철거 위기에 놓였지만, 타이베이 시민들과 지식인들의 노력으로 보존되었고, 현재는 예술가들의 작업실과 전시장으로 다시 살아 숨 쉬고 있다.


보장암국제예술촌


오전에는 흐렸던 하늘이, 오후가 되자 거짓말처럼 맑게 개였다.

빛이 골목 사이를 천천히 파고들어, 마을의 표정이 더 또렷하게 드러났다.


사서함


입구 한편에는 마을 사람들의 우편함이 모여 있었다.

이곳은 좁은 골목길에 집들이 촘촘하게 얽혀 있어, 집집마다 우편물을 배달하기 어려운 곳이다. 때문에 우편 업무의 편리성을 위해 아예 마을 입구에 주문들의 우편함을 만들었다고 한다.


사소한 구조지만, 그 안에는 이곳만의 생활 방식이 담겨 있었다.

이런 작은 디테일에서 이상하게 마음이 풀려버렸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감각이, 가장 먼저 와닿았다.

보장암국제예술촌
보장암국제예술


골목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낡은 벽과 오래된 계단, 그 사이에 스며있는 색감 있는 작품들까지...

허름함 위에 덧입혀진 예술이 아니라, 시간 위에서 자연스럽게 겹쳐진 느낌이었다.


관광안내소에서 한국어 지도를 하나 받아 들고, 지도 위에 표시된 카페를 찾아 걸음을 옮겼다.


틈새 셀카
작지만 아기자기한 카페


작지만 아기자기한 공간.

라테 한 잔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을 때,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마을회관 같은 곳에서 주민들이 노래방 기계를 틀어놓고 열창 중이었다.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자, 카페 사장님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시끄럽죠? 내가 다 미안하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오히려 좋아요."


노래의 완성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사람들이 함께 웃고, 목소리를 섞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그 순간, 이곳이 '관광지'가 아니라, 누군가의 일상이 흐르는 장소로 다가왔다.


그 감각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다시 골목을 걸었다.


보장암국제예술촌
보장암국제예술촌


지도를 보며 60~70년대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과정은 마치 보물찾기 같았다.

이곳은 예술과 삶이 같은 공간에서 숨 쉬고 있는 곳이었다.


보장암국제예술촌


여전히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이곳을 작업실 삼아 머무는 예술가들.


그 경계가 모호하게 섞여 있는 풍경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낡고 오래된 공간, 하지만 그 위에 얹힌 현대적인 감각이 묘하게 잘 어울렸다.

시간이 겹쳐진 장소라는 건, 이렇게도 아름다울 수 있구나 싶었다.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저 '나와 잘 맞는' 공간들.

보장암국제예술촌은 나에게 분명 그런 곳이었다.



보장암국제예술촌


보장암국제예술촌은 소박하지만 따뜻했고,

조용하지만 지루하지 않았으며,

과거와 현재가 부드럽게 이어져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의 시간은 유난히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보장암국제예술촌


해가 기울 무렵, 신덴천 쪽으로 내려가 마을 전경을 한번 더 바라보았다.


한때 38 가구가 모여 살던 이곳은, 2000년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으며, 대부분 철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벽과 바닥 곳곳에 남아있는 흔적들은 여전히 이곳의 시간을 증명하고 있었다.


보장암국제예술촌


어느덧 오후 4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햇빛은 한결 부드러워졌고, 바람에는 저녁의 기운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나의 여행도

천천히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9일 전,

대만 환도를 마치고 타이베이에 도착했을 때, 나는 짐을 풀자마자 샹산에 올랐다.


그곳에서 처음 마주한 타이베이 101.



그 순간의 감정은, 단순한 감탄으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오랫동안 버텨온 시간들,

여행 중에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잊히지 않을 풍경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래서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곳에 서 있었다.


그 기억 때문인지, 이번 여행의 마지막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처음의 감정으로,

여행을 닫고 싶었다.


안녕!


공관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다시 타이베이 101로 향했다.


이 여행의 끝을,

하나의 장면으로 남기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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