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처음부터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니었다.
입사 10년쯤 되었을 때, 회사 여직원들만 모여 외부활동을 하는 날이었는데 업무 중간에 공원에서 모여 도시락을 먹고 2차 활동을 이어가기 전이었다. 불편한 하이힐에 펜슬 스커트 같은 것을 주로 입은 우리들 중 누구도 허리를 숙여 돗자리를 접거나 무릎을 굽혀 도시락을 치우는 사람이 없었다. 빨리 치워야겠다는 생각에 맨 손으로 깍두기 국물이 흥건한 도시락을 조심스레 한 곳에 모아 분리하고 대형 쓰레기봉투에 용기를 담고 돗자리를 돌돌 말고 있었다. 한 선배가, '얘들아, 너희들도 ㅇㅇ처럼 얼른 이거 치워봐.'라고 하자 후배들도 나를 따라 뒷정리를 시작했다.
뒷정리가 끝났을 때, 선배가 나를 따로 불렀다. 굳이 입사 연도를 따지자면 나는 선배의 바로 아래 기수였는데 후배들 보는 앞에서 쓰레기를 혼자 치우는 모습이 보기에 영 아니었단다. 시키기 어려우면 그냥 가만히 있는 편이 나았을 뻔했다는 조언도 잊지 않으셨다.
나를 따로 불러 이와 같은 따끔한 조언을 해준 선배는 이분 말고도 더러 있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든 생각은, '난 남이 보기에 선배답지 못한 선배인가 보다.'였다. 이렇게 사회에서 남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발레에 미치기 시작하면서 이 학원 만으로는 안될 것 같아서 학원 바로 옆 건물에 있는 피트니스센터에 개설된 발레핏, 필라테스, 요가 수업을 들을 때 만난 선생님이 있다.
소위 말하는 발레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선생님이었는데, 발레에 막 입문하기 시작한 나에게 팔다리가 길고 얼굴이 작아서 발레 하기 좋은 체형이라 눈에 띈다는 말씀을 하셨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당연히 신이 나서 몸 상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운동을 마구잡이로 하다가 다치게 되면서 얼마 되지 않아 그 선생님과 아쉬운 작별을 했었다. 부상이 나을 무렵 선생님의 수업을 다시 듣고 싶었는데 그분은 더 이상 그곳에 계시지 않았다.
발레 선생님이라면 푹 빠져버리는 나는 이후로도 이따금씩 선생님이 궁금했다, 티브이에 가끔 나오시는 걸 보면 반가웠고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게 내 방식이었다. 그러다 몇 달 전, 한 발레리노가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에 나왔다는 인터넷 뉴스를 누군가 보여줬는데, 그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의 최신 근황을 뉴스에서 보니 내적 친밀감이 또다시 발동했다. 선생님의 SNS를 기웃거리기도 하고 경연에서 탈락하신 것을 뒤늦게 알고는 마음이 아파오기도 했다.
발레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 발레는 궁중예술이며,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어야만 배울 수도 즐길 수도 있다는 말. 나는, 사실이기도 하지만 일부는 거짓이기도 한 그 두꺼운 장벽이 발레의 대중화를 가로막는다고 생각한다. 발레를 그 장벽 안쪽에 보호하다가 그것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지는 것은 아닌지.
혹시나 장벽 안쪽의 발레 댄서들도, 경연 프로그램에 용기 있게 나간 내 선생님처럼, 그것을 넘어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있지는 않을까. 발레 댄서들도 사회 속의 내 모습처럼 혹시 남의 시선을 신경 쓰며 눈치를 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한 때 출석하던 한인교회 목사님은 언젠가 스님을 주일 설교시간에 초청하셨었다. 당시 나는 어렸고 목사님과 친분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염없이 해맑은 얼굴로 여쭤봤었다. '교회에 스님이라니요 목사님?' 돌아온 대답은 곧 내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스님이 우리 성도님들께 불경을 가르치시든 무슨 말씀을 하시든, 그날의 예배 마무리는 목사인 내가 하는 한 마디로 정리될 텐데 무슨 걱정이야.' 목사님의 그 한 마디를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미소를 띤 눈빛에서 나는 확신을 보았다.
작가에게는 독자가
라디오에게는 청중이
선생에게는 학생이
예술에게는 대중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든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면 그리 대수는 아닐걸.
발레도 이곳저곳에서 여러 사람에게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면 좋겠는걸.
발레와 함께 한 시간은 빠르게 쌓여가고, 발레리나다운 발레는 언제쯤 해낼는지
실력은 그대로인 취미 발레인이 눈치 보며 써보는 속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