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처음 발레 학원에 문을 열었을 때를 떠올렸다, 평상복은 물론 운동복마저도 거무튀튀한 것만 고집했던 나에게 전면 거울과 천장의 조명, 큰 창을 통과한 오전 햇살은 그 안을 채운 다른 회원들의 나풀나풀한 발레복을 더 아름답게 했다. 덕분에 내 운동복은 더 무채색으로 보였다.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긴 하지만, 옷에 있어서는 의외의 고집을 고수하던 나는 그로부터 1년 반이나 지나서야 레오타드라는 것, 시폰 스커트, 웜업 팬츠라는 것들을 장만하기 시작했다. 아마 그 시기였던 것 같다, 몸에 밀착되는 발레복을 입기 시작하면서 선생님이 내 몸을 더 잘 봐주셨고 전면 거울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내 몸을 스스로가 교정하며 발레 실력이 조금씩 업그레이드되던 때가.
3년이 되어 간다. 시간만 자꾸 흐르고 데벨로뻬 각도는 처음과 비교했을 때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음에도 나에게는 갈 길이 아주 멀다. 전혀 감을 잡지 못하던 풀업은 바워크를 하다가 종종 칭찬을 듣기도 한다, '회원님, 풀업 아주 좋아요.'. 이때 쁠리에 음악을 끊고 선생님께 묻고 싶은 마음을 눌러 내느라 혼이 났다, '선생님, 제 풀업이 좋아요? 제가 어떻게 했는데요? 힝, 그게 뭔데요 ㅜㅜ'. 어쩌다 얻어걸린 영문도 모르는 칭찬의 근원을 하루빨리 찾아야 하겠다.
여름휴가로 연가를 받아 놓고 휴가지로 떠나기 직전, 두 시간 정도 여유가 생겼다. 이 발치광이는 그 시간의 틈을 참지 못하고 발레 학원으로 향했다. 대학원 수업과 복직 후 스케줄로 시간이 맞지 않아 나를 처음 가르치셨던 선생님 수업을 거의 2년 만에 들으러 갔다. 바뀐 머리 모양과 조금은 정돈된 체형으로 처음에는 나를 못 알아보신 듯했지만, 수업 도중 내 이름을 기억해 내신 선생님은 수업이 끝난 후 다가오셨다. '다리가 많이 교정됐어요, 허벅지 안쪽 근육이 잘 잡혔네요. 포인 플렉스 가동 범위도 넓어졌고, 꾸준히 하셨죠?'
'선생님이 처음에 잘 가르쳐주신 덕분이에요. 감사합니다.' 쑥스럽게 인사하자 '아잉, 그러시면 또 제가 뿌듯하지요.'라고 화답하시는 선생님을 뒤로하고 서둘러 학원을 나와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여름휴가 짐을 다시 챙기러 집으로 왔다.
여름의 막바지, 푹 찌는 더위, 적은 예산으로 소박한 휴가를 보내느라 마음 한 구석이 외로웠던 터였다. 선생님이 해주신 따뜻한 말로 당분간은 풍요롭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래, 오늘 발레 하러 가기를 정말 잘했어.'
스치듯 지나는 말에 의미를 담는다. 이런 내 성격을 보고 주변에서는 별 것도 아닌 일에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훈수를 두기도 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한 것과 내 순간을 아름답게 포장해 준 이에 대한 감사는 분명히 다르다. 그래서 나는 계속 의미를 담고, 곱씹는다. 내 사전에 있어 그렇게 훈수를 둔 사람은, 순간의 보물을 간직하고 있지 않은 한없이 처량하고 불쌍한 사람인 것이다.
입에서 나온 언어일 뿐이지만, 그것이 내 나머지 시간을 호흡하고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 광채 나도록 하는 것을 마음속에 간직한다. 나의 이 방식이 곧 나를 풍요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고 믿는다.
한마디, 한순간, 그때의 기억, 좋았던 시간을 마음에 품는다고 해서 소위 추억 속에 갇혀 있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그 기억으로 늘 깨어 있고, 그것은 언제나 나를 산뜻하게 살도록 하는 주문과도 같다.
그가 꽃다발을 건네주며 나를 설레게 했던 그 순간
벌벌 떨며 합격자 조회를 누르자 내 수험번호가 튀어나왔던 그 짜릿함
조그만 입술로 엄마를 부르며 생긋 웃던 그 미소
누구나 단 하나의 좋은 기억을 붙잡고 산다.
나의 발레일지에도 오늘 그 선생님이 부여한 따뜻한 말 한마디는 '또 하나의 좋은 기억'으로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