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는 예술 중에서도 진입장벽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가요를 배경음악으로 발레 한다면 움직임의 느낌이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한 겨울,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이 부분에 매료되어 반복해서 이 가요를 들으며 발레 연습을 했었다. 집에서 발레 배경음악으로 깔아보니 감정이 잘 실려서 폴드브라가 예쁘게 나온 것 같았다. 고음이 폭발하는 부분에서 내 오른쪽 다리도 데벨로페를 완성하면 환상이었을 테지만 90도를 올리기에도 부족한 내 수준이 안타깝기만 했다. 촬영한 영상으로 복습해보니 내가 생각하던 몸짓과는 영 다른 허우적거리는 날갯짓과 낮은 각도에서도 달달 떨리는 다리가 마치 오줌 누는 강아지처럼 연출되었다, 그래도 시도는 좋았다.
우리 학원에 새로 온 발레리나는 매 수업에 오기 전, 회원들에게 신선한 배경음악을 틀어주기 위해 유튜브를 뒤져서 매 동작마다 음악을 준비한다고 했다. 그 선생님의 발레 루틴은 매트 운동-플리에-탄듀-제떼-론드잠-폰듀-바뜨망-데벨로페-아다지오-센터-점프-레베랑스 순으로 끝난다. 매트 운동을 제외한 동작들은 각각 1분이 채 되지 않지만 10개 넘는 순서에 각각의 음악을 준비한다는 그 노력을 알고 나서 그 선생님의 수업시간이 더 기다려졌고, 더 감사했다.
음악이 중요할 수도,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처음 배운 그날부터 지금까지 같은 음악을 틀어주는 선생님도 좋고 매번 이런 노력을 해주시는 선생님도 좋다. 내 취미 발레에서 배경음악은, 한 상의 반찬과도 같다. 적으면 적은 대로 간편식의 느낌이 나서 좋고, 같은 음악이 반복되면 엄마밥상 같아서 좋고, 매번 색다른 음악이 나오면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나오면 상견례 한정식 같아서 또 좋다.
악뮤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는 플리에를
아이유의 '드라마'로는 탄듀를
회원들 말로는 잔나비가 좋았다는데, 어쨌거나 내가 알지 못하는 신선한 가요로 클래스를 받은 그날은 음악이 나를 착 감싸는 느낌에 아직도 기분이 좋다.
영어 강사 시절, 그 시기에 이 동네 저 동네 팀을 짜서 집집마다 그룹과외를 다녔었다.
나도 새로 온 발레리나처럼 수업 준비를 철저히도 했었지, 참.
가끔 본가에 가서 그분들을 마주치면 아직도 내 수업이 기억에 남는다며 고마웠다는 말씀을 해주신다.
교수자의 입장에서 이것보다 더한 칭찬이 또 있을까.
발레리나는 신기하게도 그 많은 회원들이 갈비뼈를 열고 있는지, 배에 힘을 줬는지, 풀업을 했는지, 왼쪽 다리에 힘이 들어갔는지, 중심이 발가락 전체에 고루 분산되었는지 지뢰 찾기 하듯 잘도 찾아낸다. 그런데 아마도 내가 얼마나 이 수업에 감사하고 있는지는 모를 거다.
배경음악을 수고스럽게 정성을 들여 편집해 오는 이 발레리나는, 오랜 기간 지도했던 분의 후입으로 최근 우리 학원에 왔다. '매트 운동이 짧다, 수업을 제시간에 끝낸다, 순서가 복잡하다, 어렵다, 빠르다.' 등등 온갖 사유들은 기존에 오랜 기간 가르쳐주신 발레리나와 비교해 깎아내리기 좋은 조건을 가졌을 테다. 그럼에도 노력을 기울여주는 새로 온 그분께 알려드려야겠다. 감사하다고.
발레는 예의와 형식을 갖춘 궁중무용이었다. 따라서 이를 움직이는 음악도 클래식 악기 연주이다. '발레'하면 일반적으로 다가가기 어려운 영역, 옷을 갖춰 입어야만 관람할 수 있는 공연, 아무 때나 박수를 쳐서는 안 되는 예술, 비싼 춤, 돈이 많이 드는 무용, 쉽게 접할 수 없는 세계로 알고 있다. 아직도 그 장벽이 높고 경계가 분명하다.
가요를 배경으로 클래스를 듣고 나니 발레도 결국 사람의 몸짓이었다는 걸 느꼈다. 지금까지 발레를 해 본 시간보다, 그 한 시간이 나를 발레에 더 가깝게 이끈 듯했다.
유니버설발레단은 해외 고전, 클래식을 공연하는데서 벗어나 일찌감치 '심청', '춘향' 같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한 전래동화와 고전으로 그 영역을 넓혀 공연해 왔다. 발레 산업이 이런 식으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궁중무용이라고 해서 차이코프스키만을 공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모르파티에 맞춰 이탈리안 훼떼 32바퀴를 돌면 발레의 클래식 성곽을 무너뜨리는 건가?
나는 너무 신날 것 같은데.
발레 클래스도 마찬가지다. 내가 듣는 수업에 회원이 빠져나가 폐강 위기에 놓였던 적이 있었다. 수도권에서 조차 이런 상황이라면 지방이나 농어촌 지역은 상황이 더 열악할 것이다. 클래식이라는 전통과 역사도 결국 관객이 있어야 하고 들어주는 귀가 있어야 다음 세대로의 연명이 가능하다. 대중적인 것 또한 곧 그 시대가 만든 클래식 문화의 한 면이니, 발레가 대중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