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의 추억

홈쇼핑 심리학 에세이 (21)

by 홈PD

외국 영화를 보다 보면 스탠딩 파티 장면을 종종 접하게 된다.

잘 차려입은 남자와 여자들이 저마다 칵테일 한잔씩 들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서양문화의 멋스러운 이미지 형성에 일조를 한다.


오래 전의 일이지만 그런 파티에 몇 번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데에서 오는 설렘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데에서 오는 긴장이 알코올을 타고 혈관을 흘렀다.

대화에 집중을 하다 보니 두런두런 테이블 위를 떠다니는 다른 무리의 말소리는 파도처럼 귓가에 밀려왔다 사라지곤 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함께 간 일행이 저쪽에서 내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아차릴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내 이름이 똑똑히 들렸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기 그룹의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기 위해 나를 소재로 삼았던 것이었으리라.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소란함 속에서 어떻게 내 이름만은 귀에 꽂혔던 것일까.




솔직히 내가 남보다 훨씬 예민해서 소란한 와중에 내 이름을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본래 본인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은 잡음이 많은 상황에서도 선택적으로 듣는 능력이 있는 까닭이다.


'칵테일파티 효과'란 이처럼 '시끄러운 파티장의 소음 속에서도 자신에게 의미 있는 정보에 집중하는 현상'을 뜻한다.


이런 현상은 청각에 대한 능력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것을 선택하고 집중하는 능력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시끄러운 술집에서 웨이터가 정확히 주문을 알아듣는 것은 불필요한 소음은 제거하고 본인에게 필요한 정보만 취하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졸다가 내려야 할 정거장에 도착했을 때 눈이 떠지는 것도 본인이 얻어야 할 정보에만 집중했던 탓이다. 카페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유명인의 험담을 할 때 귀가 쫑긋해지는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앞에서 파티에 참석했던 사례를 들긴 했지만 사실 요즘은 온 세상이 거대한 정보의 파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거리에는 각종 전단지들이 바람에 흩어지고 건물 옥외 광고판에는 다양한 CF가 노출되고 있다. 편의점 출입문에는 새로 나온 먹거리 홍보물이 붙어 있고, 주유소 앞에는 입간판이 지나가는 운전자들을 부르고 있다.


이런 정보의 대홍수 속에서 우리는 어떤 것을 선택하고 집중해야 할지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다.

재미있는 점은 사막에 한송이 장미를 틔우듯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정보를 각인시키는 마케터들이 있다는 것이다.


매일 범람하는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의 난리 속에서 그래도 내가 열어보게 되는 메시지는 교묘하게도 내 이름 석자가 제목에 붙은 것들이다. 같은 새해 덕담 문자를 받더라도 내 이름이 앞에 붙은 메시지는 단체로 보내지는 보통의 문자와는 그 느낌이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소위 키워드 마케팅이라는 것도 이런 현상과 관련이 깊다.

관심사와 연관된 단어를 접한 사람은 당연히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어떤 반응을 일으키기 쉬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전략은 꽤 고객에게 잘 통한다는 것을 현업에서 많이 느끼고 있다.


잘 연출된 홈쇼핑 방송을 보면 키워드를 명확히 부각시킴으로써 고객이 상품을 이해하기 쉽게 만든 방송인 경우가 많다. 홈쇼핑 PD들이 방송 준비를 하면서 상품의 핵심 키워드를 뽑아내고, 그것을 자막이나 콘텐츠에 어떻게 녹일 수 있을지 늘 고민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관심 분야가 있다. 그리고 그 말은 누구나 자신만의 키워드를 가지고 있다는 말도 될 것이다.


내 인생의 핵심 키워드는 무엇일까.

나이를 먹으면서 관심사는 분명 더 늘어났을 터인데 어째 주르륵 떠오르지가 않는다. 아무래도 관심사와는 별로 관계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은 나의 관심사를 한번 죽 적어보려 한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말에 귀가 쫑긋 서는 일이 늘어난다면, 적어도 무미건조한 삶을 살게 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키워드가 없는 인생은 칵테일이 없는 파티와도 같지 않겠는가.

keyword
이전 02화그녀는 왜 팬심을 내려놓아야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