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 심리학 에세이 (22)
“좀 전에 내린 사람 봤어?”
“응? 방금 내렸던 선배? 왜?”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명품이잖아..”
“그래?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 부자인가 보네..”
엘리베이터 안에서 여직원들이 나누는 대화를 본의 아니게 듣고 말았다.
쇼핑 회사이다 보니 아무래도 브랜드에 민감한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게 중에는 실제로 값비싼 브랜드의 옷과 액세서리로 무장(?)한 사람들도 더러 있기는 하다.
이런 소위 '명품족'들을 보면 돈이 많거나 과시욕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심지어는 별 것도 없는 사람이 허세를 부리는 것이라며 깎아내리는 시선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살아오면서 명품을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럭셔리한 옷이나 가방을 갖고 싶지만 '고가의' 명품이니까 쉽게 소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명품을 휘감고 있는 사람이 부러움이나 시기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비싸고 좋은 것을 소유하고픈 것이야 다수의 공통된 심리라고 해도 한 가지 의문은 남는다. 럭셔리한 옷과 액세서리로 치장하고자 하는 심리 저변에는 정말로 허세와 과시욕밖에 없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명품을 좋아하지만 그 모든 사람이 과시욕이 넘쳐서 그렇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어쩌면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다른 이유가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PD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다른 직장인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것 중의 하나가 복장일 것이다. 방송 쪽 직군 대부분이 그러하듯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출근하고 업무를 본다. 복장에 규제가 별로 없다는 점은 편한 점 중의 하나일 수 있지만 결혼식 같은 행사에 갑자기 참석해야 할 때는 문제가 된다. 평소에 정장을 입지 않다 보니 그런 특별한 자리에 입을 마땅한 옷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오래간만에 꺼내본 슈트는 유행이 지난 것 같고, 선물 받은 고급 넥타이라도 매 볼까 하면 구두가 세련되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린다. 무언가 행색이 어색하다는 느낌을 잔뜩 가지고 행사에 참석했던 기억이 난다. 다음에는 넥타이에 걸맞은 와이셔츠와 구두를 사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디드로 효과’란 이처럼 ‘하나의 물건을 구입한 후 그 물건과 어울리는 다른 제품들을 계속 구매하는 현상’을 뜻한다.
18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디드로는 친구가 준 세련된 빨간 가운과 자신의 낡은 물건들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가운과 어울리도록 집안의 가구들을 붉은 계열의 새 것으로 바꾸다가 마침내 모든 가구를 바꾸고 말았는데, 결국 낭비만 한 그는 자신이 빨간 가운의 노예가 되었다며 우울해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보통 구매한 물품들 사이의 기능적인 동질성보다는 정서적, 문화적인 측면에서의 동질성(혹은 통일성)을 추구한다고 알려져 있다.
고가의 슈트를 입고서 저가의 구두를 신는 것은 아무래도 정서적인 이질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불만족으로 발전하기 쉽다. 디드로 역시 자신의 낡은 가구들 틈에서 세련된 가운을 입고 있는 본인의 모습이 매우 어색하고 불안정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이러한 정서적인 이질감이 결국 불필요한 과소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경계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아무래도 쇼핑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런 고객의 성향은 매우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정서적인 동질성을 추구하는 심리는 결국 브랜딩이라는 전략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홈쇼핑도 자산화 브랜드를 기획하여 전략적으로 브랜딩 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고객이 어떤 브랜드를 마음에 들어하면 그 브랜드의 다른 상품을 지속적으로 구매할 확률도 매우 높아지는 까닭이다. 브랜딩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 되는 이유이다.
거리에서 특정 스포츠웨어 브랜드로 통일된 복장을 하고 조깅하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리고 트레이닝복과 모자, 헤드폰의 컬러톤을 일치시키는 경우도 자주 보게 된다. 그 사람은 정서적인 동질감을 유지한 채 운동하고 싶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또 다른 안정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좋은 옷을 걸쳤다고 해서 반드시 함께 코디하는 액세서리까지 좋은 것을 갖춰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대책 없이 소비하다가는 디드로처럼 낭비의 벼랑 끝에서 좌절하기 십상이다. '빨간 가운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은 정말 필요하다.
사실 디드로와 같은 사람은 극히 일부일 수 있다. 어지간하면 소비를 하더라도 자신의 능력 내에서 적절하게 타협하면서 소비를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생활을 할 때 정서적, 문화적 통일성의 여부가 크게 작용을 한다는 점이다.
일종의 고정관념일 수 있겠으나 왠지 햄버거는 사이다가 아닌 콜라와 함께 먹어야 어울릴 것 같고, 쿠키는 주스가 아닌 커피와 함께 먹어야 어울릴 것 같지 않은가.
‘어울리다’라는 말속에는 이처럼 정서적 동질감이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니, 어쩌면 명품을 입기 전에 우리가 그에 어울리는 사람인지를 먼저 따져봐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부자인가 보네’보다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가 더 의미심장한 말이 될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