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에 진학한다는 것

홈쇼핑 심리학 에세이 (23)

by 홈PD

내가 막 초등학교(그 당시에는 국민학교)를 다니기 시작할 무렵 어머니께서는 나를 앉혀놓고 이런 말씀을 하시곤 했다.


“너 저기 골목 끝에 있는 연탄집 알지? 그 집 형아가 이번에 서울공대에 합격했대. 너도 학교에서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알았지?”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은 분명 자녀들에게 이와 비슷한 말들을 많이 하셨을 것으로 생각된다.


내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머니의 그 말씀이 기억나는 이유는 그 말속에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던 당신의 희망이 고스란히 담겨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어렵게 살던 그 시절 광명시 어느 한 동네에서 있었던 ‘서울공대’ 합격생의 스토리는 인터넷도 없던 시대 어머니들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다가, 마침내 동네 모든 어머니들의 꿈이자 목표로 치환되었던 것 같다.


서울대 합격은 곧 자녀의 출세와 직결되는 시절이었으니, 어머니께서 그런 스토리를 들려주셨던 것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표면적으로는 공부 열심히 하라는 당부셨지만 어머니께서는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일궈낸 성공스토리에 열광하고 계셨음에 틀림없다.


'개천에서 용 났다'는 스토리에서 우리도 계층 이동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셨으리라.


자식의 출세는 집안의 가세로 연결되고 그것은 신분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그것 말고는 품을 수 있는 희망이 특별히 없었던 80년대 초반의 이야기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추구하며 산다.

그 행복이라는 말속에는 최소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으면서 병마에 시달리지 않는 건강한 삶의 이미지가 들어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영위하려면 어느 정도 사회에서 성공을 하는 것이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된다.


하지만 성장해가면서 세상이 그리 녹록지 않으며, 뜻대로 안 되는 일이 매우 많다는 것 또한 알게 됨은 어쩔 수 없다.(서울대는 아무나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 아니던가. 우리는 공부로 출세하는 길이 어렵게 되면 자연스레 다른 길을 찾는다. 다니는 회사에서 승진을 하든 사업을 하든, 아니면 하다못해 로또를 사든.

이런 행위들에 담겨 있는 공통점은 행복을 향한 의지, 즉 신분 상승의 염원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상품 하나를 소비할 때도 계층 이동을 꿈꾸는 소비 행태가 보인다는 사실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파노폴리 효과'는 특정 상품을 사면 동일 상품 소비자로 예상되는 집단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현상을 뜻한다.


명품 가방이나 수입차를 구입하면 그러한 상품을 소비한 사람들의 집단에 자기가 속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상류층이 되고 싶거나 신분 상승을 바라는 마음이 특정 상품의 구매로 이어지는 것이다.


수만 원을 지불하고 명품 브랜드의 쇼핑백만 구입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보면 이러한 욕구는 우리 사회에 매우 크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특정 명품 브랜드의 방송을 했을 때 이를 뒷받침할만한 사례를 겪은 적이 있다.

당시 모 브랜드의 토트백, 호보백, 미니백, 지갑 등을 동시 노출했는데 그중에서 가격이 제일 저렴한 지갑과 미니백이 가장 많이 팔린 것이다. 혜택적인 측면에서는 큰 가방이 더 이득이었지만 많은 고객들은 절대 가격이 낮은 것들을 구매했다. 아마도 고객들의 주요 니즈는 해당 브랜드 자체를 소유하고자 하는 데 있었던 것 같다.

(지갑 없는 사람이 그렇게 많았을 리가 없지 않은가)


신분 상승을 바라는 인간의 욕구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것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일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쉽게 이뤄지는 일이 아닌 만큼 뜻대로 안 풀릴 때 소비를 통해서라도 만족을 얻으려는 현상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과하지 않은 소비여야겠지만.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야 좋은 대학을 나와서 고시에 합격을 하거나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거의 유일한 성공의 코스였지만 지금은 절대 아니다.


벤처를 창업해서 성공할 수도 있고, 훌륭한 셰프가 될 수도 있으며, 1인 방송 진행자로 유명세를 탈 수도 있다. 세상이 정교화되고 복잡해진 만큼 성공의 코스도 엄청나게 다양해진 것이다.


이러한 시대를 살면서 명문대 진학을 고집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시대착오적인 발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명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쓸모없는 일이라는 말도 나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대학 간판이 더 이상 출세의 보증수표가 아니라고 해서 공부를 안 해도 좋다는 뜻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공부와 대학은 출세를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가벼운 사람이다.

무엇이든지 못하는 것보다는 잘하는 것이 좋다. 의외인 곳에서 내가 공부했던 지식이 긴요하게 쓰일 때에는 정말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명문대에 진학한다는 것은 축하할 일이기는 하다. 자기가 우러러보는 집단에 소속되는 일은 상상만 해도 설레는 일이다. 그러나 대학 간판이 더 이상 성공을 의미하지 않는 시대에 살면서도 여전히 그것을 출세의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명품을 소비하되 사치하면 안 되는 것처럼, 출세를 목표로 삼더라도 정당한 방법으로 꿈꾸었으면 좋겠다. 최근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을 하고, 신분 상승을 하고 그것을 영위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들려서 그런지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비록 얼굴도 보지 못했지만, 전설과도 같은 40년 전 연탄집 형의 이야기가 그런 사람들의 소식과 자꾸 오버랩되는 요즘이다.




이 땅의 모든 수험생과 가족들이 원하는 바를 다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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