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 심리학 에세이 (20)
지금은 월드스타가 된 아이돌 그룹이 무명일 때부터 팬을 자처하던 후배 S가 있었다.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그 후배의 남다른 안목이 떠오르곤 했다.
일찍이 스타성을 꿰뚫어 보게 된 사연이 궁금해져서 마침 지나가는 후배를 붙잡고 말을 붙였다.
"너는 참 좋겠다. 네가 무명일 때부터 좋아하던 그룹이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으니 얼마나 뿌듯할까."
그랬더니 돌아오는 그 후배의 답변은 매우 의외였다.
"저 옛날에 팬 그만뒀는데요."
"엥? 왜?"
"그냥... 너도 나도 다들 좋아하니까... 저까지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하고는 터덜터덜 갈길을 가던 후배를 보면서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팬심을 내려놓게 만든 것일까.
어떤 상품에 대한 사람들의 소비가 증가하면 오히려 그 상품의 수요가 줄어드는 현상을 스노브(snob) 효과라고 한다.
'스노브'는 원래 잘난 체하는 속물을 뜻하지만 '다른 사람과 차별화되기 위해 값비싼 의상을 입거나 진귀한 예술품, 고가의 스포츠카 등을 소유하는 자기 과시적인 사람'을 의미하기도 한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해보면 ‘남과 다른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현상’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나와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 자기도 모르게 낯이 뜨거워진 경험이 있지 않은가? 내가 입고 있는 옷이 대중적인 브랜드라면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마주치게 되는 것은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닌데도 말이다.
사람들이 잘 모르던 나만의 맛집이 어느 날 입소문을 타고 손님이 바글바글해진 것을 보았을 때, 그곳을 더 이상 나만의 맛집이라고 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대변해줄 만한 그 무엇이 타인과 공유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충분히 당혹스러울 수 있다.
이러한 심리를 활용한 대표적인 마케팅으로 VVIP 마케팅이나 리미티드 에디션 마케팅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타인과 차별화될 수 있는 혜택을 부각하면서 고객들로 하여금 VVIP가 되고, 그 등급을 유지하고픈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전략이다.
어떤 상품을 리미티드 에디션이라고 소개하면서 소장 가치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마케팅도 스노브 효과를 활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소장가치는 홈쇼핑에서 고가의 명품 방송을 할 때 쇼핑호스트가 종종 하는 멘트이기도 하다.
"이 가방은 유명 디자이너의 리미티드 에디션으로서, 전 세계적으로 몇백 점밖에 없는 소장가치가 있는 제품이기 때문에..."
어떤가, 이 상품을 구매하면 딴 건 몰라도 남들과 차별되는 나만의 확실한 것 하나는 생길 것 같지 않은가?
그렇다고는 해도 하나 이상한 점이 있기는 하다.
'스노브 효과'가 (남들을 따라 하는 소비 행태를 뜻하는) '밴드웨건 효과'와 반대되는 개념임을 생각해본다면, 인간은 매우 모순된 존재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왜 우리는 남들을 따라 하려고 하면서 동시에 남들을 따라 하지 않으려 할까. 인간은 원래 이중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인 것일까?
나로서는 명확한 정답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추측은 해본다. 우리는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과 동시에 자신만의 소중한 무엇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것. 스스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느낄 수 있는 징표 몇 개는 가지고 살아야 하는 존재 말이다.
어쩌면 남들과 같은 듯 다르게 살아야 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S 후배가 자신의 과시욕 때문에 팬심을 버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남들 앞에 나서기를 꺼려하는 그녀의 성격상 열성적인 팬들 틈에 끼는 것을 포기했을 가능성이 높고, 그래서 대외적으로는 더 이상 팬이 아니라고 얘기했을 것이다.
어떤 대상을 사랑하는 방식이야 저마다 다르기 마련 아닌가. 무대 바로 앞에서 열렬히 고함을 지르는 팬도 있지만, 먼발치에서 조용히 미소 짓고 있는 팬도 있는 것이다. 그녀는 여전히 그 그룹의 활동을 지켜보며 뒤에서 응원하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내일은 S에게 요즘은 어떤 아이돌을 (공식적으로) 좋아하고 있냐고 물어보고 싶다.
그녀는 분명 새로운 맛집을 찾는 식객처럼, 자신의 취향이 잘 드러날 수 있는 ‘잘 알려지지 않은’ 아이돌을 발굴해냈을 것만 같다.
물론 남들에게 소문내지 않겠다는 말은 덧붙여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