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 심리학 에세이 (19)
'안녕. 잘 지내지?'
지인으로부터 오랜만에 문자나 전화 연락이 올 때가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 '잘 지내지'라는 문구가 썩 반갑지만은 않다. 어떤 부탁이 있어서 오는 연락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할 수도 없는 것이, 나 또한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는 탓이다. 급하게 알아봐야 할 무엇이 생겼을 때, 어쩔 수 없이 얼굴에 철판을 깔고 지인에게 연락을 취한다. 그때 숨은 목적은 외면하면서 표면적으로라도 반가워해주는 반응을 접할 때면 감사한 마음마저 생길 지경이다.
오랜만에 연락을 취해오는 지인이 반겨지기는 커녕 오히려 약간의 괘씸한 마음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나'를 필요로 하는 메시지가 아닌 '내가 가진 무엇'을 필요로 하는 메시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즉 순수하게 나라는 존재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닌, 본인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나를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가 느껴지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앞서 말했듯 나도 그런 삶을 살고 있으니까 타인에게 뭐라고 할 자격은 없다. 그냥 그럴 수밖에 없는, 늘 여유 없이 허둥대며 살고 있는 직장인의 삶이 짠할 뿐이다. 누군들 옛 지인들과 꾸준하게 연락을 취하면서 살고 싶지 않겠는가.
이 땅의 모든 직장인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실제로 이러한 현상은 꼭 개인 대 개인의 관계에서만 일어나지는 않는다. 기업과 고객의 관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자주 벌어지곤 한다.
기업이 마케팅 활동의 수단으로 고객에게 어떤 혜택을 제공할 때, 실제 제품은 구매하지 않으면서 이익만 챙기고자 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에 놀랄 때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신용카드 미사용으로 카드사에 수수료 수익을 주지는 않으면서 놀이공원/극장 할인 등의 혜택만 누리는 고객도 많고, 경품을 노리고 무더기 주문을 한 뒤 당첨이 되지 않으면 해당 주문을 취소하는 고객도 많은 것이다.
이렇게 상품이나 서비스의 여러 기능 중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기능이나 혜택만 누리고 매출에는 별로 기여하지 않는 영악한 소비자를 가리켜 '체리피커(cherry picker)'라고 한다.
체리피커 관점에서 보자면 앞에 소개한 예시 정도는 예측이 가능한, 애교 수준에 불과한 사례들이다. 홈쇼핑 방송을 하다 보면 영악하다 못해 괘씸한 체리피커를 접할 때가 종종 있다.
오래전 모 브랜드 두유 방송을 할 때 ‘1팩 무료체험' 행사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1팩 우선 맛보시고 맛없으면 반품하셔도 된다(그만큼 품질에 자신 있다)는 취지의 이벤트였다.
하지만 그 행사는 불행하게도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말았는데, 사유인즉 어떤 고객이 10박스를 주문한 후 1팩씩 빼낸 다음 모두 반품을 했다는 것이다. 10박스에서 무료체험 1팩씩을 빼면 10개들이 1박스를 공짜로 받는 것과 같다는 잔머리(?)를 쓴 것으로 추측된다. 몇 번 그런 일이 벌어지고 나니 업체가 감당을 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물론 이 고객은 체리피커 수준을 넘어선 '블랙컨슈머'(악덕 소비자)라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할 것 같기는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기상천외한 방법을 생각해내는 고객들이 실제로 있다는 것에 경악하게 됨은 어쩔 수 없다. (설사 그런 생각이 들었기로소니 몇만 원을 이득 보기 위해 정말로 실천에 옮긴단 말인가!)
아무래도 이러한 일들을 겪다 보니 홈쇼핑의 마케팅 방향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최근에는 어떻게 하면 체리피커보다 우리 회사의 단골고객과 진성 고객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으며, 홈쇼핑 방송 또한 무분별한 경품이나 이벤트를 남발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회사 입장에서는 의당 VIP 고객들에게 돌아가야 할 혜택이 체리피커들에게 돌아가는 것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주로 쓰는 신용카드가 저마다 다르다는 것으로 미루어보면 우리는 어떤 회사에게는 충실한 소비자로, 어떤 회사에게는 체리피커로 살아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체리피커가 반갑지 않은 고객의 대명사라고 해도 동전의 양면처럼 특정 회사의 VIP 고객일 수 있다는 점은 마케터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A라는 친구의 급한 부탁을 들어주고 B라는 친구에게 급한 부탁을 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인지도 모른다. 나는 누군가의 조력자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조력자를 필요로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인간의 능력은 유한하고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음은 당연한 일이므로.
'The cherry on the cake'는 금상첨화 혹은 화룡점정이라는 뜻의 관용 표현이지만 개인적으로 화룡점정이 더 드라마틱하다는 생각이 든다. 꼭대기에 체리를 얹음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케이크의 모습은 마지막에 눈을 그려넣음으로써 완성되는 용의 모습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cherry picker’는 꽤 끔찍한 칭호인 것 같기도 하다. 케이크의 체리만 홀딱 집어먹는 행위는 용 그림의 눈을 지우는 것과 같은 것이 되어 버리는 탓이다. 기업 입장에서 체리피커 고객은 그 정도로 얄미운 존재였나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누군가의 체리피커가 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도움을 주지는 않으면서 도움만 받으려는 얌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은 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오랜만에 연락해 어떤 부탁을 하는 친구라 할지라도 일단은 반갑게 맞이하는 게 도리에 맞는 일인 듯하다. 그리고 도울 수 있는 일이면 도와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나 역시 얼마 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존재가 될 것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세상은 그렇게 도움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돌고 돌며 만들어가는 곳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