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 심리학 에세이 (6)
“홈쇼핑 택배인데요... 네네. 그러면 어머님 연락처 좀 알려주세요. 제가 그쪽으로 전화해볼게요.”
“네 그러시면, 010에.. 아.. 음.. 잠시만요.”
어머니 전화번호도 기억 못 하는 대화 속의 불효자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순간적으로 숫자가 가물가물하여 결국 스마트폰 연락처를 검색해야 했다.
버튼 하나로 전화가 걸리는 문명의 편리함이 손쉽게 불효자를 만들어낸 것이다. 불효의 기준이 어찌 이것뿐이겠냐마는 혼자 몰래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길을 걷다 보면 저마다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한 풍경은 이미 너무나 익숙한 것이 되어버려서 어색함이 전혀 없다. 다만 문명의 이기라는 것이 대부분 그렇듯, 너무 길들여져 있다 보면 그것이 없을 때의 대처가 힘들어진다는 점은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뻔한 얘기지만 스마트폰은 더 이상 전화기가 아니다. 전화를 걸고 받는 용도 외에 인터넷 검색, 영상 시청, 쇼핑, 게임 등 일상의 거의 모든 행위가 스마트폰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없으면 그야말로 큰일이 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스마트폰은 이미 우리 몸의 일부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만화 캐릭터가 있다. 스누피로 유명한 만화 〈피너츠(Peanuts)〉에 등장하는 라이너스이다. 라이너스는 늘 엄지손가락을 빨면서 담요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블랭킷 증후군이란 이처럼 담요(Blanket, 블랭킷)와 같이 소중한 무엇인가가 옆에 없으면 마음이 불안정해지고 계속 안절부절못하는 일종의 의존증을 말한다. 인형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아이들도 이와 같은 현상을 대변한다.
주로 어린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이러한 모습들이 최첨단 시대 어른들에게도 벌어지게 되었다는 점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스마트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정작 문제는 사용 빈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손쉽게 ‘중독’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언제 어디서든 SNS에 접속할 수 있는 편리성은 타인의 반응을 수시로 확인하게 되는 습관을 갖게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습관은 다른 이들의 반응이 기대에 못 미칠 경우 잦은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고, 이는 자칫 인간관계에 대한 집착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있다.
온라인 쇼핑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큰 맘먹고 백화점에서 질러야 겨우 살 수 있던 상품들도 요즘에는 손쉽게 스마트폰으로 주문이 가능하다. 덕분에 불필요한 지출이 많아져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게 된다. 더 큰 문제는 매달 이러한 생활패턴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막 퍼지기 시작할 무렵, 홈쇼핑 방송은 고객들의 모바일 주문 유도를 위해 이런저런 공을 많이 들였다. 고객들이 모바일로 주문을 못하게 된다면 회사가 성장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있었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쇼핑에 중독된 고객들이 많은 것이 쇼핑 업계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재정상태가 건전한 개인이 필요한 상품을 꾸준히 소비하는 것이 모두에게 가장 바람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삶의 의미를 어떤 형태로든 보상받고자 하는 심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경계해야 할 것은 삶의 의미를 타인의 관심으로 보상받으려는 사람은 ‘스마트폰을 통해’ SNS 중독에 걸리기 쉬우며, 쇼핑으로 보상받으려는 사람은 ‘스마트폰을 통해’ 쇼핑 중독에 걸리기 쉽다는 점이다.
각자의 스마트폰을 가지고 그 어딘가에 중독된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삶의 일부를 파괴하고 있지는 않은지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블랭킷 증후군’이 어린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이유는, 엄마라는 애착 대상에게서 떨어지면서 느껴지는 불안감을 담요나 인형처럼 포근한 물건을 통해 얻어지는 안정감으로 해소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현대인은 개인화된 세상에서 외부와 고립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스마트폰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얻어지는 안정감으로 해소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감을 디지털로 해소하고 있는 풍경은 늘 놀라우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다. 영상통화의 화질이 아무리 좋아도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것만 못하다고 여겨서일까. 감성이 이미 젊은 세대와는 거리가 멀어진 탓도 있겠지만, 내게 기술의 발전은 항상 그렇게 따뜻하지만은 않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제 아무리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다 할지라도 어머니의 핸드폰 번호 정도는 외우고 있는 것이 맞는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