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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발랄 Aug 29. 2021

이건 이발랄씨의 남편 이자상씨에 대한 이야기

이자상씨가 이엄한씨가 되어버린 사정

이발랄씨의 남편 이자상씨.


그는 이름처럼 무척이나 자상한 남자다. 결혼 이후 몇 년 동안 이발랄씨는 스스로 머리를 말려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아침마다 이자상씨가 드라이기로 손수 머리를 말려줬기 때문이다. 유독 덤벙대고 손재주 없는 이발랄씨가 이자상씨의 눈에는 왜 그렇게 예뻐 보였을까? 이자상씨는 아침마다 출근 전에, 이발랄씨의 운동화 끈을 묶어주곤 했다. 끈을 풀지 않고도 발이 운동화에 쏙, 하고 들어가도록 세심하게 배려하는 것은 이자상씨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이발랄씨가 친구들과 약속이 있을 때에는 데려다주고, 근처 카페에서 기다리다가 데리러 갔었다. 프리한 보헤미안의 영혼을 소유한 이발랄씨는 처음에는 이런 배려가 부담스럽기도 했었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지 모른다고, 어느덧 이자상씨의 자상함에 젖어들었고, 그렇게 공주인 줄도 모르고 공주처럼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가가 태어난 후, 이자상씨는 바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는 딸바보가 말이다. 이발랄씨의 머리가 봉두난발이 되어있어도, 이자상씨의 눈에는 이제 보이지 않게 되어버렸다. 이자상씨의 눈에 아예 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발랄씨의 낡은 운동화가 마음이 아파 신발을 사러 가자고 했지만, 이발랄씨는 육아와 코로나로, 사실상 운동화를 신고 나갈 일도 시간도 없게 되었다. (이발랄씨에 따르면, 여름이라 샌들을 신는 것이 편했다고 한다) 사실 문제는 드라이나 운동화가 아니었다.


이발랄씨의 덤벙거림과 손재주 없음이 이자상씨에게는 더이상 사랑스럽지 않았던 것이다.  

이발랄씨는 물건을 사고 매뉴얼을 잘 보지 않고, 사용하면서 익혀가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아기의 물건은 그렇게 마구잡이로 써서는 안되는 것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서, 이발랄씨는 물에 빨면 안되는 아가의 나노필터를 세탁기에 돌려버렸다. 란제리 모드로 빨았다고 이발랄씨가 무안해하며 말했지만, 이자상씨의 눈에는 나노필터가 상해서 미세하게 해진 것이 보였다. 그것 뿐만 아니라, 물건을 잘 떨어뜨리고, 놓치는 부주의함이 이자상씨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아가를 대할 때에 덤벙거리진 않을까 이자상씨는 불안했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더욱더 꼼꼼하게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발랄씨가 놓치는 것이 없는지 챙기는 중, 자신도 모르게 이자상씨의 표정은 엄하게 변했다. 그래도 노력해서 자상한 (= 엄한) 표정으로 이발랄씨가 놓친 것을 알려주었다. 또 이자상씨는 그전까지 좀더 가벼운 마음으로 일을 했다면 가장으로서 더욱 밥벌이에 진지해지게 되었다. 이자상씨의 착한 생각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자상씨가 더욱 이엄한씨가 되게 했다.   


이런 변화들은 이발랄씨도, 이자상씨도 모르는 사이에 진행됐다. 그건 마치 하루하루 흰머리가 늘어나는 것처럼, 통통했던 볼살이 빠져 나이가 들어보이는 것처럼,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어느 날 문득, 이발랄씨는 이자상씨가 이엄한씨가 되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래도 딸에게는, 그리고 대한민국의 평균을 두고 봤을 때 이자상씨는 여전히 자상한 남자였다. 어찌 보면 이자상씨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자상의 대상이 옮겨졌을 뿐이다.


서러웠다고 한다. 왜 나를 (예전처럼) 사랑하지 않느냐, 하고 이발랄씨는 처음에는 화를 내고 싶었다고 한다. 대화를 좀 하자,라고 꼬드겨서 사실은 이자상씨에게 화를 내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이발랄씨는 꾹 참고 거울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알게 됐다. 이엄한씨가 그렇게 된 것에는, 이발랄씨가 아가를 사랑하지만 그래도 꿈이 많고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엄마이기 때문도 있었고, 이발랄씨가 실제로 꼼꼼하지 못하기 때문도 있었다. 이발랄씨는 반성했다. 이발랄씨도 스스로 변화해야 했다. 서른아홉까지 실컷 자유로워지만 다소 공허했던 삶 대신, 이발랄씨는 엄마로서 더 충실한 삶을 살기로 했다. 그건 이자상씨 때문이 아니라, 아가가 점점 예뻐지고 사랑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이자상씨가 변한 것처럼 그녀 역시, 아가를 위해 빛이 나지 않는 엄마처럼 살아보고 싶어졌다. 엄청난 양의 집안일을 하면서도 생색내지 않는, 어쩐지 생각하면 코끝이 찡해지는 친정엄마처럼 살고 싶어졌던 것이다. 세상에서의 성취와 자랑이 사실 그때는 커 보이지만 막상 지나고 보면 결코 생명을 이길 수 없음을, 이발랄씨는 오랜 기다림을 통해 알고 있었다.


이발랄씨와 이자상씨는 더이상 연애하듯 사랑하지 않는다.이발랄씨는 인정해야 한다. 서로의 바뀐 헤어스타일, 새로 산 옷, 최근에 같이 본 영화는 더이상 두 사람에게 인상깊은 화젯거리가 아니라는 걸. 그러면서도 이발랄씨는 추억한다. 이자상씨에게 사랑을 넘치도록 받았고 그 사랑을 당연시했던, 찰랑거리는 긴 머리의 아름다웠던 이발랄씨에 대해서. 그렇다고 그때로 절대 돌아가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이발랄씨는 홀로 아름답고 자유로웠던 서른아홉 해처럼, 지금의 아가와 함께 성장하는 시간도 눈물지게 아름다울 것이라는 것을 안다. 어쩌면 이 시간의 끝에 이자상씨와 이발랄씨는 삶에 찌들어, 남들이 보기엔 전혀 다른 이름의 아저씨 아줌씨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무슨 상관일까. 먼지투성이 초록색 종이라도 결국 초록색이듯, 어깨 위에 쌓인 먼지를 털어주며 서로의 이름을 잊지 않고 불러주면 될 테니. 이 글을 이렇게 맺게 될지는 몰랐는데, (인터넷 일기장에 욕이나 옴팡 써놓고 자려고 했는데)


그래도 사랑한다, 이자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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