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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발랄 Sep 08. 2021

육아휴직 중 웹소설 쓰기는 취미일까 직업일까

한 달 간 1,217원을 벌었다

웹소설 쓰기는 취미일까 직업일까.

이발랄씨는 브런치의 제목을 써 놓고, 문득 직업의 뜻이 궁금해  어학사전을 검색해 본다.


직업: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


위에 제목에 썼듯이, 웹소설을 썼던 약 한 달간 번 돈은 1,217원이다.

음, 이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 직업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아직까지 취미이다. 갑자기 취미의 뜻도 궁금해진다.


취미: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음, 취미라고 하기엔, 조금 억울하다. 이발랄씨는 나름대로 진지하게 이틀에 한 번꼴로 5페이지의 분량의 글을 써서 올리고 있는데 말이다. 육아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틈틈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취미라니, 억울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이발랄씨가 처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웹소설 쓰는 것은 아직 남편과 제일 친한 친구 한 명 빼고는 비밀이다. 뭐랄까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그런 거다. 친정에 가서 엄마한테 아가를 봐달라고 할 때, 바람도 쐴 겸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 마시고 오겠다,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웹소설을 쓰러 가겠다는 말은 하기 어렵다. 70에 가까운 노모에게 웹소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야겠거니와, 고작 웹소설 따위를 쓰려고... 아기를 봐달라고 하는 거니, 라는 시선에 작아지지 않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당장 집어치워라, 라고 말한다면 이발랄씨는 서른아홉이나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흐느껴 울지도 모른다.(...) 이발랄씨가 복직을 해서 매달 생계유지가 가능한 월급을 따박따박 받는 어엿한 직장인으로 돌아간다면, 아마 아가를 봐달라고 말해도 미안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고작 웹소설 따위를 쓰는 데다가- 아직 1,217원 밖에 벌지 못하는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당당해지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조금 서럽기도 하다. (브런치가 언제부터 비밀 일기장이 되어버렸니... 하지만 고작 웹소설을 쓰는데 서럽다고 하소연할 곳이 여기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다.)

나름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글을 쓰려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영감이라는 양반은 그렇게 빨리 찾아오지 않고, 또 ENTP의 타고난 천성인 게으름을 극복한다는 게 녹록지 않다. 그리고 아직까지 직업이 아니기에 뻔뻔하지가 못하다. 여기저기 눈치를 보게 된다. 웹소설을 쓴다고 젖병을 씻지 않는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열탕소독을 안하는 것도 마음에 찔린다. 하지만 직업을 갖고 있는 남편 이자상씨는 늦은 밤시간에 일을 해도 당당하다. 이발랄씨가 웹소설을 쓰고 있는 중에도, 자기 작업물을 읽어봐 달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 (자꾸 악당처럼 등장시켜서 미안한데, 아무튼 그냥 객관적인 사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발랄씨의 웹소설은 취미이고, 아직 직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발랄씨는 억울해서 웹소설 쓰기를 즐겁게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217원이라는 돈이 작고 귀엽긴 하지만, 그래도 정말 솔직히 말해서 직업으로 돈을 벌 때보다 훨씬 더 기쁘고 보람이 있다. 누군가가 돈을 내고 이발랄씨의 글을 읽어준다는 것은 뭔가 말로 할 수 없는 보람이기 때문이다. 이발랄씨의 글이 재밌어서 돈을 내고 읽고 있는 거겠지? 그런 거라고 믿고 싶다.  이 쓰레기같은 글의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자 하는 심정으로 돈을 집어넣고 있는 건 아닐 거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이발랄씨만 알고 있는 소소한 성취는 바로 성실 연재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한 달 동안 백신도 맞았고, 짧은 여행도 갔었고, 기분이 좋지 않은 날도 있었고,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인데 그만 쓰자 싶었던 날도 있었지만, 그래도 성실했다. 그리고 읽고 있는 사람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여름이 되면 생각나는 드라마 <커피프린스>에서 공유가 윤은혜에게 했던 대사 중에, 네가 우주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네가 좋다, 라는 대사가 있었다. (찾아보기 귀찮아서 이 정도 뉘앙스로) 웹소설 쓰기가 직업인지, 취미 인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꽤나 소중한 작업이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그래도 기쁜 마음으로 하려고 한다. 모든 일에 때가 있다고 믿는데, 지금 이렇게 쓰지 않으면 아마도 복직을 하면 정말로 쓰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나중에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일들이 그 할 수 있는 나중에가 되면 하고 싶어지지 않기도 한다. 어떠한 것에도 미혹되지 않는다는 마흔이 되기 전에, 조금 더 마음의 홀림에 집중해 살고 싶은 이발랄씨의 서른아홉의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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