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캉스가 아닌 모캉스를 보내며, 자유의 색깔에 대해서 잠시 생각하다
이발랄씨는 지금 잠시 귀여운 아가와의 육아를 뒤로하고,
이자상씨의 따뜻한 배려로 나홀로 호캉스를 보내는 중이다.
호텔을 예약하기 전, 이발랄씨는 말했다.
"꼭 안가도 괜찮은데..."
하지만 이자상씨는 그녀가 요즘 좀 우울하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발랄씨는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녀는 여행을 가야만 한다. 그녀에게는 자유가 필요하다. 이자상씨는 설거지를 하던 손을 잠시 거두고 말했다.
"아냐, 이건 내가 이발랄씨에게 주는 선물이야. 선택은 내가 한 거라구. 이발랄씨는 그냥 가면 돼!"
이자상씨의 자신만만한 표정이 고맙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서늘하기도 했던 이발랄씨. 그녀의 촉은 항상, 미약한 시그널을 보내지만 꽤나 높은 적중률을 자랑한다는 걸, 그녀는 이번에도 그냥 넘겨버리고 말았다. 왠지 모를 싸함은, 호텔 방문을 열었을 때 알게 되었다. 지방의 소도시에 있는 이름난 호텔은 보통 꽤나 오래되어 호텔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는 것을. 방은 호캉스라기보다는 모캉스에 어울리는 모텔 수준의 방이었다. 이발랄씨를 호텔에 데려다주러 온 이자상씨는 살짝 시무룩해졌다.
"이발랄씨에게 그럴듯한 휴가를 주고 싶었는데...."
"하하하. 이 정도면 그럴듯하지."
이발랄씨는 호텔방 구석에서 찾아낸, 낡아서 줄이 쫙쫙 가 있는 슬리퍼를 까닥거리며 말했다. 그러면서도 슬리퍼를 신을 때에는 절대 양발을 벗지 않아야 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원래의 계획은 그랬다. 호텔방의 기운을 받아, 오자마자 웹소설을 연달아 쭉 쓰고, 잠시 야경을 보다가 푹신한 깃털 이불이 있는 침대에서 우아하게 누워 잠이 들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발랄씨는 더이상 가방만 들쳐메고 떠날 수 있는 혼자가 아니다. 이 곳에 오기까지 넘어야 할 관문이 많았다. 아가를 재우기 위해, 생리통이 심한 상태에서 아가를 업고, 안고 뛰고 한 터라 이발랄씨의 허리와 어깨는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웹소설의 세계관으로 들어가기에는 누적된 피로로 정신이 반쯤 나가있는 상태인 것이었고, 또 호텔방의 상태가- 뭔가를 함부로 열었다가는 이전 투숙객의 양말이나 속옷 같은 것이 튀어나올 것 같아, 그나마 제일 깨끗해 보이는 침대에 옹송거리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서 이발랄씨는 문득- 20대 학생 시절 혼자 유럽과 북미를 여행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땐 그랬다. 유스호스텔에서 전혀 알지 못하는, 포스는 멋있지만 때로 암내가 나는 서양친구들과 도미토리에서 자면서도 하루하루 너무 행복해서 미칠 것 같았다. 런던에서 파리로, 파리에서 깐느로, 로마로, 피렌체로, 바르셀로나로 떠돌 수 있었기에, 잠은 딱딱한 도미토리 침대에서 자든, 야간열차 쿠셋에서 자든 전혀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호스텔 조식에서 말라비틀어진 빵을 먹어도 행복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를 먹었다고 해도, 더 행복했을 것 같지 않다. 그냥 자유롭게 여기저기 쏘다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유럽의 공기를 마신다는 것만으로도 지독하게 행복했던, 뽕맞은 것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그 시간이 끝났다는 걸, 이발랄씨는 서른살이 넘어서 혼자 떠난 파리 여행에서 알아버렸다. 아무 생각없이 호스텔을 예약한 그녀는, 더이상 그녀에게 가진 것 없이도 행복했던, 20대의 뽕빨이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다같이 쓰는 공용 샤워실에서 풍기는 암내에 그녀는 미쳐버릴 것 같았고, 전혀 모르는 친구들과 같은 공간에서 잔다는 것은 불면증으로 향하는 직행 열차를 타고 밤새 달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발랄씨는 그때 이후로 절대로 게스트하우스나 호스텔을 가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깨끗하게 정리된 침구, 호텔 조식,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이 여행의 필수 조건이 되어버린 것이다.
왜 나이가 들면 예전에 좋았던 것이, 더이상 좋아지지 않는 걸까.
이발랄씨는 사실 낡은 호텔방보다 그것에 더 씁쓸함을 느끼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발랄씨는 사실 호텔에 오기 전 일주일 육아를 하며 지칠 때, 잠시 잠깐씩 기대를 했었다. 혼자서 쉴 수 있을 거고, 핸드폰도 마음껏 할 수 있을 거고, 밀린 넷플릭스 드라마도 보고, 웹소설도 몇 편 쓰고... 그런데 막상 이 낡은 호텔방에 누워서 있다보니-
잠이 든 아가 얼굴이 보고 싶다.
어쩌면 이발랄씨는 이제 혼자 여행이 행복한 시기가 지나버린 것은 아닐까-
유럽 여행에서 만났던, 비개인 푸르스름한 회색빛 영국 하늘의 색깔은, 여전히 다시 보고 싶은, 그녀의 버킷 리스트 안에 있는데, 사실 어쩌면 그것도 이미 지나가버린 어제의 날씨 같은 것은 아닐까.
낡은 호텔방에서, 너무나 오랜만에 혼자가 되어, 조금 낯설어진 자유를 누리며, 서먹하고 뻘쭘해진 이발랄씨. 그래도 여기서 이틀을 보내야 한다는 막막함에 지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