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키우다, 육아육묘의 서막
아마도 친정 가족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날이었을 것이다. 고양이를 키우기로 결정한 것은. 이발랄씨의 아이폰 사진첩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몇 년 전의 행복한 가족 여행 사진 바로 뒤에는 비쩍 마른 새끼 고양이 사진들이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임신을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것 중에 하나가 가족모임이었다. 형제자매들은 다들 귀여운 아가를 품에 안고 오는데, 이발랄씨와 이자상씨만 몇 년째 여전히 그 둘 뿐이었다. 이발랄씨의 가족도 이런 점을 알고 있어서 알게 모르게 그녀를 배려해왔다. 가족 모임에서는 서로의 안부를 묻기 위해 남자 친척, 여자 친척 이런 식으로 묶어 앉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이발랄씨와 이자상씨는 친척 모임에서 가장 만만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육아라는 공통 화제를 함께 하기 어려웠기에, 남성팀, 여성팀으로 떨어지지 않고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 모임과 여행은 이발랄씨의 마음에 어쩔 수 없는 씁쓸함을 남겼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온전히 기뻐할 수 없고, 공감할 수 없다는 게, 난임이라는 터널 안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었다. 이발랄씨가 나쁘고 옹졸한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 게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하는 것, 초라해지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다. 누구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바로 이발랄씨였다.
이자상씨가 먼저 고양이를 키우자고 했다. 전부터 그런 얘기를 가볍게 나누긴 했지만, 이번에 이자상씨는 진심이었다. 이발랄씨가 점점 우울의 늪으로 걸어가는 것이 이자상씨의 눈에는 보였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키우다니, 이발랄씨는 걱정했다. 아이가 생기게 되면 어쩌지, 고양이가 짐이 될 텐데, 털도 날릴 텐데, 괜찮을까. 그럼에도 이자상씨는 고양이를 키우자고 했다. 고민하던 이발랄씨도 동의했다. 그래서 둘은 양가 부모님 몰래 고양이를 한 마리 데려왔다.
이발랄씨와 이자상씨의 양가 부모님은 고양이를 키운다는 사실을 그로부터 일 년인가 뒤에, 임신 소식을 전한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이발랄씨의 부모님은 어리석은 짓을 했다며 잔소리를 했다. 부모님의 말씀은 거의 대부분 옳다. 아가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고양이까지 데려온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난임의 혹독한 터널을 걸어나오는데, 고양이가 이발랄씨에게 아주 많이 힘이 되었다는 것을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고양이는 때로 자포자기해 누워있는 이발랄씨에게, 모래가 묻은 지저분한 엉덩이를 자랑스럽게 보여주곤 했다. 그러면 이발랄씨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름대로 고양이의 격렬한 애정표현이라고. 정말일까?) 너무 슬픈 날 억지로 껴안으면서 울면 놀라서 도망가버렸지만, 또 어느 순간 옆에 와서 슬쩍 머리를 비비고 지나갔다. 난임의 하루하루를 견디며 지냈던 이발랄씨에게, 고양이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행복의 형태였다. 그건 엄청난 위로였다. 난자 채취와 이식이 성공하든 성공하지 않든 이발랄씨에게도 변하지 않은 행복이 있다는 것은 말이다. 물론, 덕분에 지금은 육아육묘를 빡세게 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아가 위주로 살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해, 고양이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이발랄씨는 고양이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않아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감히, 고양이님의 마음 따윈 물어보지 않은 채 말이다. 자, 잠깐의 낭만은 이제 접어두고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다. 인간 이발랄씨는 이제 마스크를 끼고 고양이 끙아를 캐러 떠난다. 오늘도 감자는 풍년일 것이다.